전쟁 10개월, 우크라이나 난민 올가는 ‘살기 위해’ 전쟁에 적응했다
  • 구민주·김종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2.12.18 12:05
  • 호수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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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참상 그린 《전쟁일기》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 인터뷰…6월 이어 두 번째
혹독한 겨울…"전력 끊겨 가족과 통화마저 안 될까 걱정"
"전쟁 끝나는 날? 고향 돌아가 가족들 껴안고 싶다"

35년 인생의 터전을 송두리째 버리는 데 허락된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하루하루 가까워지던 폭격이 기어이 집 앞마당에 내리꽂힌 그날, 올가 그레벤니크는 어린 두 자녀의 손을 잡고 목적지 없는 피란길에 올랐다. 2022년 3월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9일째 되는 날이었다. 계엄령이 떨어진 남편, 노쇠한 조부모를 모셔야 하는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에 남느라 그 길로 생이별했다. “아빠도 곧 따라올 거야!” 피란열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건넨 이 약속은 세 번의 계절이 지난 지금까지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색색이 가득한 그림을 그리던 우크라이나 동화작가 올가는 첫 폭발음이 들린 2월24일부터 약 한 달간, 자신이 몸으로 겪은 전쟁의 참상을 연필 한 자루로 쓰고 그렸다. 그는 집에서 지하실로, 다시 국경 바깥으로 내몰리면서도 연필을 놓지 않았다.

잿빛의 글과 그림이 담긴 이 기록은 국내 출판사 ‘이야기장수’에 의해 4월 《전쟁일기》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됐다. 시사저널은 올가가 불가리아에서 난민으로 머무르기 시작한 지난 6월15일, 그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시 올가는 그 무엇보다 세상으로부터 우크라이나가 잊히지 않기를 기원했다. 무관심이야말로 전쟁을 지속하고자 하는 이들이 가장 바라는 바이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12월14일, 다시 올가와 화면으로 마주했다. 그의 간절한 바람에도 전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세상의 관심은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 무너트린 일상을 다시 세우기 위한 올가의 사투는 단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치열한 ‘생존일기’를 써내려가는 동안 올가는 분명 단단해졌다. 더는 바깥의 소음에 놀라지 않게 되었고, 그가 그리는 그림에도 조금씩 다시 색색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전쟁에서 끝내 살아남기 위해 그는 전쟁에 적응하는 길을 택했다.

시사저널은 12월14일, 불가리아에 머물고 있는 올가 그레벤니크 작가와 80여 분간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전쟁일기》 출판사 ‘이야기장수’ 이연실 대표와 정소은 번역가의 도움을 받았다. ⓒ시사저널 이종현

6월 인터뷰 때와 비교했을 때 일상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몸도 마음도 이곳에 좀 더 적응했다. 일도 좀 더 많이 하고 있다. 특히 시를 쓰기 시작했다. 마음이 괴로울 때 그 감정에 그저 휩쓸리기보다 시에 쏟아내려 노력하고 있다. 그림도 계속 그리고 있다.”

생계는 어떻게 이어가고 있나.

“지난 3월 피란길에 올랐을 때부터 현지의 많은 분이 SNS 등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는 연락을 하셨다. 그 도움 가운데 그림을 계속 업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해주신 분들도 계셨다. 덕분에 불가리아에 머물기 시작한 이후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여러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 처음 출간했던 책 《전쟁일기》도 그사이 이탈리아·루마니아·일본·독일 등 6개국에 선보였다. 물론 전쟁 이전보다는 생계가 많이 힘들어졌지만 쉼 없이 일할 수 있는 것만도 제겐 기적 같은 일이다.”

(그림 ①)전쟁 첫날, 올가 그레벤니크 작가는 자신과 어린 두 아이의 팔에 각각 이름과 생년월일, 연락처 등을 적었다. 죽음 후 신분을 식별하기 위해, 아이들이 고아가 되었을 때 최소한의 정보를 남기기 위해서다.ⓒ출판사 이야기장수 제공

“트라우마 겪은 아이들, 포탄 터지던 우크라 집 돌아가기 싫어해”

폭격을 피해 서둘러 피란을 택했던 것도, 낯선 땅에서 일을 멈추지 않는 것도 모두 그가 ‘엄마’이기 때문이었다. 전쟁 첫날, 올가는 두 아이 팔에 생년월일과 비상연락처 등 인적 사항을 적어주었다.(그림 ①) 전쟁에선 흔하디흔한 이별과 죽음에 대한 대비였다. 지난 6월 인터뷰 당시 아이들은 여전히 전쟁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마당 앞 꽃잎을 따며 ‘전쟁이 빨리 끝나길’ 빌었고, 창문 근처에 가길 두려워하기도 했다.

지금 두 아이의 일상은 어떤지 궁금하다.

“아들은 이곳 불가리아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저보다도 훨씬 적응을 잘하고 있다. 아침마다 학교에 가는 걸 행복해한다. 이곳 자원봉사자들이 주말마다 우크라이나 난민 아이들을 위해 휴일캠프를 진행해 준다. 여기에 참여해 문화체험도 하고 견학도 다닌다. 아이들이 다시 밝아져 한시름 덜었다. 가끔 우크라이나 집 이야기를 하면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한다. 집에 대한 아이들의 마지막 기억은 춥고 위험하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 딸은 안전하고 따뜻한 이곳에서 계속 살면 안 되냐고 얘기한다.”

아이들이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 같다.

“며칠 전 아이들과 함께 집에 있는데 갑자기 바깥에서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자동차가 고장 나서 난 소리 같았는데 아이들이 곧장 궁금해하며 발코니로 향했다. 그 순간 저는 너무 기뻤다. 지난봄이었다면 아주 무서워하며 어디론가 바로 숨어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치 보통의 아이들처럼 호기심을 가져주어서 그 순간 정말 감사했다.”

불가리아에서의 생활이 안정을 찾아갈수록 우크라이나에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생각은 더욱 차오른다. 특히 남편은 18~62세 남성은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한 계엄령 탓에 홀로 그곳에 남아야 했다. 올가는 《전쟁일기》 그림들 중 남편과 기차역에서 헤어지는 장면을 그릴 때 ‘두 손이 절단되는 것 같은’ 슬픔을 느꼈다고 말했다(그림 ②). 다행히 이별 후 지금까지 서로 전화통화는 나눌 수 있는 상황이지만, 러시아에 의해 올겨울 우크라이나의 전력 공급이 끊겨버릴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올가는 남편과 기차역에서 생이별하던 순간을 그릴 때가 가장 슬펐다고 말한다. 전쟁 9일 차에 헤어진 이들은 9개월이 넘도록 재회하지 못하고 있다.ⓒ출판사 이야기장수 제공
(그림 ②)올가는 남편과 기차역에서 생이별하던 순간을 그릴 때가 가장 슬펐다고 말한다. 전쟁 9일 차에 헤어진 이들은 9개월이 넘도록 재회하지 못하고 있다.ⓒ출판사 이야기장수 제공

현지에 남은 남편, 그리고 어머니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어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는 도시 근교 시골에서 지내고 계신다. 남편은 서부 도시 르비우에 머무르고 있다. 두 곳 모두 다행히 전선에서 조금 멀어 현재로선 폭격으로부터의 위험이 크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체에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특히 전기 공급이 불안정해 자주 정전이 발생하는 등 생활 속 어려움은 계속되고 있다. 발전기를 구입해 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머니가 우크라이나를 벗어나거나, 혹 올가 작가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 가능한 상황인가.

“성인 남성을 제외하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국경 이동은 가능하다. 따라서 어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는 원칙적으로 제가 있는 곳에 오실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을 피란시키기 위해 정말 많은 방법을 알아봤다. 하지만 노쇠하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험난한 피란의 여정을 견뎌낼 수 없을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어머니도 당연히 두 분을 두고 오실 수 없어 피란을 포기하신 상태다. 저 또한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길은 열려 있다. 하지만 두 아이를 데리고 국경을 넘어 폴란드를 거쳐 이곳 불가리아로 오는 길이 정말 위험했고 또 육체적·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웠다. 다시 아이들을 그 길 위에서 위험하게 만들 수 없다. 아이들을 맡아줄 지인도 없어 혼자 다녀올 수 없다. 그래서 가족이 너무 그립지만 전쟁이 끝날 때까진 이곳에 남기로 했다.”

‘러시아가 추운 겨울을 무기로 삼으려 하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올겨울 특히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우크라이나 안에선 전기 공급이 언젠가 완전히 차단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인터넷과 통신이 다 끊겨 그나마 이어오던 전화통화도 할 수 없게 될까 걱정이 크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위험 속에 그들이 적응해 가며 생존 방법을 익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발전기를 사고 난로를 때는 등 그들은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몸으로 익히고 있다. 얼마 전 피란을 떠났던 남편의 누나가 우크라이나로 다시 돌아갔다. 오랜만에 공습 경보음을 듣고 정말 까무러치게 놀랐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놀라지 않고 태연했다고 한다. 그만큼 전쟁의 위험에 모두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8월23일 올가의 고향 ‘하르키우의 날’을 맞아 “멀리 있지만 하르키우는 내 안에 있다”는 글과 함께 도시를 지켜주는 수호 천사를 그려 SNS에 올렸다(왼쪽 그림). 오른쪽 그림은 올가가 현재 ‘집’을 주인공으로 작업하고 있는 새 동화의 한 장면ⓒ올가 그레벤니크 인스타그램

“미움과 증오에 잡아먹히지 않으려 하루하루 안간힘”

전쟁은 필연적으로 개인의 마음에 깊은 분노와 증오를 심는다. 전쟁이 주는 또 하나의 비극이다. 올가 역시 틈만 나면 일상을 엄습하는 부정적인 감정들에 스스로를 내어주지 않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당장 총성의 위협에선 멀어졌지만 여전히 마음속 전쟁은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들을 어떻게 떨쳐내고 있나.

“어느 순간 미움과 증오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를 죽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정작 증오의 상대에겐 아무런 타격도 가해지지 않는데 말이다. 전쟁을 겪으며 인생은 정말 짧고 또 언제 어떻게 끝마쳐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게 됐다. 따라서 그 하루하루를 안 좋은 감정들로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규칙적으로 일하고 더 집중해서 그림을 그려 나갔다. 그렇게 부정적인 감정들에 나를 내어줄 시간을 조금도 남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부정적인 감정들과 여전히 싸우고 있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 무엇보다 인격을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나쁜 사람들이 정치적 야망이나 이익을 위해 다른 이들의 생명과 인격을 너무 쉽게 짓밟고 있지만, 나 자신만큼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하루하루를 허비하지 않으며 살아내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삶을 망가트릴 자격이 없다.”

전쟁 전, 행복한 여우 가족의 일상을 그려 출판했던 올가는 자신의 다음 작품이 흑백의 《전쟁일기》가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전쟁은 올가의 삶만큼이나 그의 작품세계에도 지대한 변화를 줬다. 다시 연필 대신 붓을 들고 따뜻한 그림을 그려내지만, 그 안엔 전쟁의 잔상들이 깊게 서려 있다. 지금 올가는 지난 10개월간 눌러둔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들을 담은 새 작품을 마무리하고 있다.

새 이야기의 주제는 무엇인가.

“새 동화의 주인공은 ‘집’이다. 항상 그 집에선 많은 사람이 지지고 볶으며 생활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집이 더 이상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며 희생하고 싶지 않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집 안에 있던 모두를 내쫓아버린다. 하지만 자유롭고 싶고, 나만을 위해 살고 싶어 했던 그 집도 결국 혼자가 되었을 때 더 외로워지고 버거워진다는 이야기다. 당장 내 삶이 힘들지만 더 이상 남을 위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 내게 역효과가 난다는 걸, 누군가의 손길을 뿌리칠 때 나 자신이 무너져 간다는 걸 전쟁을 겪고 있거나 지켜보고 있는 많은 이에게 전하고 싶다.”

‘(국적과 민족을 불문하고 도움을 건네는) 사람들에겐 ‘힘’이 있다. 전쟁은 끝날 것이며, 힘이 센 이들은 분명 살아남을 것이다.’ 《전쟁일기》의 이 마무리 메시지와도 맥이 닿는 내용이다. 결국 극한 상황일수록 반목보다 연대, 미움보다 사랑이라는 걸 올가는 작품을 통해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 잔혹한 전쟁이 가장 먼저 빼앗아가는 가치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끝나 집으로 돌아간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6개월 만에 다시 그에게 건넸다. 이번에도 올가는 주저 없이 “가족들을 힘껏 껴안는 것”이라고 말했다. 6월의 올가는 고향으로 돌아가 남편과 어머니를 부둥켜안는 상상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낸다고 이야기했다. 12월의 올가 역시 여전히 그 상상을 동력으로 살아가고 있다. 수차례 반복한 이 상상이 비로소 현실이 될 때 올가의 마음에도 진정한 종전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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