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후계구도 대해부 ⑥BGF그룹] 9부 능선 넘은 BGF ‘형제 경영’의 미래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2.12.27 10:05
  • 호수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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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인사에서 장남 홍정국·차남 홍정혁 사장 투톱 체제 완성
‘新성장동력’ 소재 사업 성공 여부에 이목 쏠려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그룹은 지금 역대급 호황기를 맞고 있다. BGF리테일의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연결 기준)은 지난 2분기에 20.6%, 3분기에 31.7% 증가했다. 통상적으로 편의점 매출이 저조한 4분기도 2022년에는 ‘월드컵 특수’가 있어 걱정 없다. 전신인 보광훼미리마트가 출범한 1994년 이후 사상 최대의 연간 실적이 예상된다. 새해 실적 전망도 밝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BGF는 최근 임직원들에게 인센티브와 연봉 인상률을 대폭 높이겠다고 예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종의 포상 개념이다. 특히 고민거리인 주니어 직원 퇴사율 상승 문제가 호실적과 성과 공유로 상당 부분 완화될 것으로 BGF는 관측한다. 

ⓒBGF그룹 제공
왼쪽부터 홍석조 BGF 회장, 홍정국 BGF 대표이사 사장, 홍정혁 BGF 신사업담당 사장ⓒBGF그룹 제공

홍석조 회장, 호실적 속 2세 승계에 박차 

하지만 BGF의 주된 관심사는 따로 있다. 바로 경영권 승계다. 좋은 경영 상황에서 홍석조 BGF 회장(69)은 2세 승계 작업의 가속 페달을 꾹 밟았다. 그는 지난 11월30일 보유 중이던 BGF 주식 5105만9215주(53.54%) 중 2005만190주(21.14%)를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두 아들에게 똑같이 1002만5095주씩 넘겼다. 이에 따라 장남인 홍정국 BGF 대표이사 사장(40)의 지분율은 10.29%에서 20.77%로, 차남인 홍정혁 BGF 신사업담당 사장 겸 BGF에코머티리얼즈 대표이사(39)의 지분율은 0.03%에서 10.47%로 높아졌다. 

2세들의 지분율 상승에 대해 BGF 측은 “책임경영 강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책임경영 강화’는 재벌 기업들이 오너의 리더십에 힘을 실을 때 꺼내 드는 단골 키워드다. BGF의 오너십이 2세들에게 거의 다 옮겨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홍석조 회장의 지분율은 32.40%, 두 아들의 지분율 합은 31.24%로 단 1.16%포인트 차이다. 

BGF 사정에 밝은 재계 관계자는 “홍 회장이 아직 건강적으로나 능력으로나 건재하지만, 전략적이고 치밀한 성격답게 할 수 있을 때 미리 경영권 승계 작업을 대폭 진전시켜 놓으려는 뜻이 강한 듯하다”며 “두 아들을 일찍이 사장으로 만든 데 이어 이번에 지분율도 높여줌으로써 2세 승계의 9부 능선을 넘었다”고 평가했다. 홍 회장은 2020년 11월 장남을, 딱 2년 뒤인 지난 11월 차남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둘 다 40대가 되기 전에 사장 자리에 올랐다. 

장남은 편의점, 차남은 소재

2세 승계가 명확해지자 시장이 먼저 반응했다. 홍 회장이 두 아들에게 지분을 증여한 날 BGF 주가는 전일 대비 18.29% 올랐다. 박종렬 흥국증권 연구원은 “블록딜은 제3자를 대상으로 이뤄지면 주가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으나, 가족에게 지분을 넘기는 경우 오히려 승계 불확실성이 줄어든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재료”라고 분석했다. 남성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BGF의 2세 경영이 본격화한다는 의미”라며 “편의점 사업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성장이 이뤄지는 가운데 신사업 부문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된다”고 말했다. 

승계구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남은 본업인 편의점, 차남은 신사업’이란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장남 홍정국 사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학사와 산업공학 석사를 마쳤다. 2010년 보스턴컨설팅그룹코리아 컨설턴트로 근무하다 201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MBA 과정을 마치고 BGF에 들어왔다. 경영혁신실장, 전략혁신부문장 등을 맡으며 충실히 경영수업을 받다가 2019년 BGF 대표이사에 오름으로써 경영 최일선에 나섰다.

홍정국 사장은 그동안 경영 효율화, CU 해외 진출 등을 통해 성장을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7년 이란, 2019년 베트남 등에 진출했다가 실패의 쓴맛을 봤던 그는 2018년 몽골과 2021년 말레이시아에서 기어코 괄목할 성과를 냈다. 지난 11월말 현재 CU는 몽골에 280여 점포를 운영 중인데, 국내 유통기업이 해외에서 200호점을 돌파한 사례는 CU가 처음이다. 말레이시아엔 130여 점포를 두고 있다. 

미국 카네기멜론대를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기주쿠대에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마친 차남 홍정혁 사장은 넥슨과 일본 미쓰비시, 싱가포르 KPMG 아세안 지역 전략컨설팅 매니저 등을 거쳐 2018년 BGF에 입사했다. 입사와 동시에 편의점이 아닌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는 신사업개발실장을 맡았다. 이듬해 BGF에코바이오 대표이사, 2021년 코프라 대표이사, 올해 에코머티리얼즈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그룹 신사업담당 직함도 겸해 ‘신사업=차남’ 등식을 더욱 명확히 했다. 

서울 강남구의 BGF 사옥 전경ⓒ
서울 강남구의 BGF 사옥 전경ⓒ시사저널 박정훈

신사업 성과에 따라 승계 작업 좌우될 듯 

BGF가 처음 신성장동력으로 내세운 사업은 화이트 바이오다. 화이트 바이오는 식물 등 생물자원을 원료로 산업용 소재나 바이오 연료 등의 물질을 생산하는 것이다. BGF는 2019년 6월 BGF에코바이오를 설립하고, 한 달여 후 친환경 플라스틱 제조사 KBF를 인수했다. 점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강화되는 추세에서 화이트 바이오는 가치와 수익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매력적인 신사업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화이트 바이오는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생소한 분야인 데다 사업의 경쟁력, 성장 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다보니 모멘텀을 마련하기 쉽지 않았다. 이에 BGF는 2021년 12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제조업체 코프라를 인수해 신사업 범위를 소재 전반으로 확대했다. BGF에코바이오를 코프라 자회사로 편입하는 등 소재 부문 간 지배구조 개편도 단행했다. 결국 지난 11월 코프라와 BGF에코바이오를 합병하고 사명을 BGF에코머티리얼즈로 바꿨다. 

BGF 승계의 다음 스텝은 BGF에코머티리얼즈의 실적에 따라 좌우될 전망이다. 재계에서는 BGF에코머티리얼즈가 견조한 실적을 낼 경우 계열 분리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BGF의 ‘형제 경영’ 체제를 이끄는 홍정국·홍정혁 사장은 각기 다른 사업 분야처럼 성격도 상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정국 사장이 임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릴 정도로 활달한 반면 홍정혁 사장은 내향적이고 말수가 적다. 이들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검사 출신 홍석조 회장 체제 15년…매출 5배 성장 

홍석조 BGF 회장은 홍진기 보광그룹 창업자의 차남이다. 홍진기 창업자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의 오랜 동지이자 사돈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여사가 바로 홍석조 회장의 누나다. 다른 형제로는 형인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남동생 홍석준 보광창업투자 회장, 남동생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 여동생 홍라영 전 삼성미술관 리움 총괄부관장 등이 있다. BGF의 모태인 보광훼미리마트는 보광그룹이 1989년 편의점 사업을 발족한 이후 1994년 12월에 출범했다. 

홍석조 회장은 2007년 보광훼미리마트 회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법조인 생활을 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7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30년 가까이 검사직을 수행했다. 검찰의 요직을 두루 거친 후 검사장 자리에 오르고, 검찰총장 후보로도 거론됐다. 그러다 2005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삼성 X파일 사건’에서 검사들의 떡값 수수 의혹에 휘말리며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을 끝으로 법조계를 떠났다. 2006년 1월 검찰에 사의를 밝히고 1년여 만인 2007년 3월 가업인 보광에 몸담으며 경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보광훼미리마트 측이 “홍 회장이 경영 경험은 없지만 그간 주주총회 등을 통해 경영 현황에 대해 보고를 받아왔으므로 회사에 대해서도 충분히 파악하고 있다”고 따로 설명해야 했을 만큼 홍 회장의 경영 능력에 의문부호가 따라붙었다. 홍 회장은 담담히 “급변하는 유통 환경에서 가맹점과 소비자의 신뢰를 굳건히 하는 한편 훼미리마트만의 차별성을 바탕으로 한국 편의점 업계를 선도해 가겠다”고 공언했다. 

이후 홍 회장은 ‘초보 오너’란 핸디캡을 딛고 보란 듯이 목표를 달성해 나갔다. 2008년 4000호점을, 2011년 6000호점을 편의점 업계 최초로 열었고 2012년 6월에는 사업 체질을 완전히 바꿨다. 일본 훼미리마트 본사와의 라이선스 계약이 종료된 후 BGF리테일로 사명을 변경하고 독자 브랜드 CU를 론칭한 것이다. CU는 일본식 편의점을 모방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소비자의 소비 패턴에 맞는 한국형 편의점을 표방했다. 

홍 회장은 대내외적으로 얼굴을 드러내는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대신 불시에 자사와 경쟁사 매장을 둘러보는 등 현장 밀착형 경영을 선호한다. 매주 한 차례씩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으며 품질을 직접 챙기기도 했다. 

그는 2012년 독자 브랜드 론칭을 알리며 “2020년 매출 10조원대 종합유통서비스 회사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다. 2016년에는 회사를 모기업인 보광그룹에서 분리시켰다. 아직 매출이 10조원을 넘지는 못했으나(2021년 BGF리테일 기준 6조7812억원), 취임 직전인 2006년(매출 1조3700억원)에 비해선 5배가량 늘어났다. CU의 점포 수는 1만6000여 곳에 달하며 국내 1위를 수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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