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IPO 앞둔 스타트업들도 ‘몸 사리기’
  • 염현아 시사저널e. 기자 (yeom@sisajournal-e.com)
  • 승인 2023.01.08 10:05
  • 호수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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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배송 업계 1위 컬리의 상장 철회 ‘후폭풍’
기업 가치 하락 도미노에 “밸류 조정 불가피” 전망도

복합 경제위기가 계속되면서 올해 기업공개(IPO)를 앞둔 스타트업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금리 인상에 따른 불확실성 증가로 투자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상장 문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번 1월까지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했던 컬리는 상장 철회를 결정했다. 올해 최대 기대주였던 컬리의 ‘깜짝 선언’으로 업계엔 긴장감이 팽배해졌다. 상장 일정을 미루며 시장 회복을 기다려온 기업들은 이제 몸값을 낮추는 밸류 조정 절차에 돌입한 상태다.

국내 새벽배송 업계 1·2위인 컬리와 오아시스가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한 지난해 8월과는 대조적인 분위기다. 당시만 해도 ‘이커머스 1호’ 상장사 타이틀의 향방에 스타트업 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불과 몇 개월 만에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상장예심을 통과한 컬리는 6개월 후인 오는 2월23일까지 상장을 완료해야 한다. 업계에선 수월한 일정 소화를 위해 늦어도 1월까지 증권신고서를 제출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컬리는 ‘상장 철회’를 선택했다. 시장의 반등 시기를 기다려 왔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후퇴’를 택한 것이다. 컬리 측은 향후 시장 상황에 따라 상장을 재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컬리 관계자는 “지난해 이커머스 업계 평균을 크게 뛰어넘는 성장을 이뤘다”면서도 “투자심리 위축을 고려해 상장을 잠시 연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가 2022년 5월2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新)기업가정신 선포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익성 악화 따른 기업 가치 하락 탓”

하지만 컬리 안팎의 시각은 다르다. 컬리가 상장 철회를 결정한 가장 큰 요인은 수익성 악화로 인한 기업 가치 하락이라는 지적이다. 컬리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매출과 영업손실이 함께 늘었다. 특히 영업적자의 경우 2017년 124억원에서 2021년 2177억원까지 불어났다. 기업 가치도 크게 떨어졌다. 2021년 12월 프리IPO 당시 4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현재 가치는 4분의 1 토막이 났다. 장외주식거래 플랫폼 서울거래 비상장에 따르면, 최근 컬리의 기업 가치는 1조764억원 수준이다. 물론 컬리 측은 “향후 기업 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는 최적의 시점에 상장을 재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 유일하게 설립 이래 흑자를 내고 있는 오아시스 역시 기업 가치 하락을 피하지는 못했다. 지난해 6월 이랜드리테일로부터 33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1조1000억원 규모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현재는 7900억원대로 떨어진 상태다. 이와 관련해서도 오아시스 관계자는 “기업 가치가 지금보다 몇천억씩 떨어진다면 상장 추진은 어렵겠지만, 그런 상황은 아니다. 공모가를 높게 책정할 계획도 없다”면서 “현재 주간사와 소통하며 기업 가치 측면에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이커머스 1호’ 타이틀이 탐나긴 하지만, 이걸 위해 일정을 앞당길 필요는 전혀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11번가의 경우 늦어도 올해까지는 상장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2018년 SK텔레콤에서 분사할 당시 국민연금과 사모펀드 운용사 H&Q코리아로부터 5000억원을 유치하면서 5년 내 IPO 추진을 계약 조건에 포함시킨 바 있다. 그러나 11번가는 지난해 3분기까지 10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냈다. 올해도 흑자 전환은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분사 당시 2조7000억원 규모로 인정받은 기업 가치도 3분의 1 토막이 났다. 주요 서비스의 성과 부진으로 수익성 개선에 차질이 생기면서 11번가도 고민에 빠졌다.

국내 1호 액셀러에이터(AC)로 상장사에 도전한 블루포인트파트너스는 지난해 12월28일 증권신고서를 제출해 속도가 가장 빠르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피어그룹(이미 상장한 비교 기업)의 주가가 반 토막이 나면서 블루포인트의 공모가 산정에도 영향을 줄 것이란 평가 때문이다. 블루포인트는 증권신고서를 통해 희망공모가 밴드를 주당 8500~1만원, 목표 시가총액은 1068억~1257억원으로 잡았다. 2020년 프리IPO 당시 100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약 2년 전 기업 가치를 희망공모가 하단 기준으로 삼은 만큼 자체적인 밸류 조정이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블루포인트의 기업 가치 선정 방식이 일반 금융회사와 다르다는 지적도 나왔다. 통상 벤처캐피털(VC) 기업은 주가수익비율(PER)을 기업 가치 산정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들 기업에 일반 금융사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을 적용하면 기업 가치가 기존보다 70% 이상 떨어질 것이란 내용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PER을 적용한 기업 가치도 유의미하다는 의견이다. 한 투자업계 전문가는 “PER과 PBR 모두 각 회사의 수익구조, 자산현황 등을 고려해 적합한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금융회사 중에서도 PBR을 적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AC의 경우 자기자본을 통한 투자가 많아 PER을 통한 기업 가치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희망공모가 산정 시 피어그룹의 기업 가치 등을 반영하고 있어 고평가 논란은 여전하다. 블루포인트는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 252억원, 영업이익 124억원, 당기순이익 109억원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실적을 냈지만, 최근 VC 기업들의 주가 급락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익성 나쁘면 몸값 낮춰도 IPO 어려워”

블루포인트와 순이익 규모가 비슷한 스톤브릿지벤처스는 지난해 2월 상장 당시 공모가를 8000원으로 잡았지만, 최근 주가가 반 토막이 났고, 시가총액은 1430억원 규모에서 815억원으로 떨어졌다. 블루포인트 관계자는 “다양한 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고,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다”며 “앞으로의 수익성과 시장 상황을 고려해 희망공모가를 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 눈치를 보며 일정을 미룰 수 없다면, 몸값을 낮춰서라도 증시에 입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내 한 대형 증권사 IPO 담당자는 “시장이 급격하게 상승 모드로 갈지는 불투명하고, IB업계 전문가도 전망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라도 증시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장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기준 역시 수익성이 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증권업계 전문가는 “수익성이 기반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몸값을 낮춰도 공모 자체가 안 될 수 있다”며 “만년 적자인 컬리의 경우도 투자자들이 공모 가능성을 보수적으로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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