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몰입도 Commitment 가 M&A 성패 좌우한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2.07 10:05
  • 호수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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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SK와 두산그룹의 엇갈린 행보 주목할 필요”

포스트 코로나로 산업 대전환기에 돌입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사업 포트폴리오 재구성에 나섰다. 이럴 때 기업들이 가장 손쉽게 선택하는 것이 M&A(인수합병)다. 기술이나 노하우가 있는 기업을 인수해 시장 지배력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기도 한다. 무리하게 M&A에 뛰어들었다가 그룹이 공중분해 위기에 빠진 사례가 그동안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획 단계부터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원칙 없이 M&A에 뛰어든 기업들은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2월1일 세종대 광개토관에서 만난 황용식 교수가 2023년 M&A 시장 트렌드와 기업 M&A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오너의 몰입도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비관련 다각화가 경계 1순위

황 교수는 이런 행위를 경영학 용어로 ‘비관련 다각화(Unrelated diversification)’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 시너지를 고려하지 않은 문어발 확장을 M&A의 가장 경계 요소로 꼽았다. 2021년 11월 이스타항공을 인수해 재계의 주목을 받은 성정이 대표적이다. 당시 매출 59억원 규모인 성정이 이스타항공 인수에 투입한 돈은 1200억원에 이른다. 재계에서는 당장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말이 나왔다.

파산 위기에 몰렸던 이스타항공은 회생에 성공했지만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골프장 관리와 토공사업을 하는 성정이 항공사를 인수해 시너지 효과가 있겠냐”는 지적이었다. 우려는 곧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이스타항공은 성정에 인수된 후에도 ‘개점휴업’ 상태가 지속됐다. 재무 부담이 가중된 성정은 결국 올해 초 이스타항공을 400억원에 사모펀드에 재매각했다. 항공기 한 대 띄워보지 못하고 1년여 만에 800억원의 손해를 본 것이다. 황 교수는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입찰에 참여할 때 최고평가액을 정하고, 거기서 20% 뺀 후 단 1센트도 더하지 말라’고 했다. 피인수 기업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모르는 만큼 인수가를 적을 때뿐 아니라 실사 때도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성정의 경우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면서 제대로 실사조차 하지 않았다. ‘비관련 다각화’의 전형적인 실패 사례다”라고 지적했다.

그만큼 M&A 때는 재무적인 판단도 중요하지만 전략적 판단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승자의 저주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 ‘프리딜(Pre-deal)’과 ‘포스트딜(Post-deal) 전략을 마련할 것을 조언한다. M&A 전인 기획 및 실사 단계에서 살펴보는 것이 ‘프리딜’이다. 이 프리딜 단계부터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기업 인수 이후 추진하는 것이 ‘포스트딜’이다. 하드웨어적 통합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융합시켜 이른바 ‘원팀’을 만드는 것이 포스트딜의 목적이다. 황 교수는 “다국적 회계법인 PwC는 얼마 전 전 세계 M&A 사례를 조사한 적이 있다”면서 “M&A 실패 사유의 35%가 프리딜(실사 단계)에서, 나머지 65%는 ‘포스트 전략’ 부재에서 나오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의사 결정권자인 오너의 경영적 판단과 리더십, 업무 몰입도(Commitment) 역시 중요하다. 재계에서 유명한 절친 사이인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교해 보자.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다. 전·현직 대한상의 회장인 데다, SNS를 즐겨 한다. 두산과 SK그룹 역시 적극적인 M&A를 통해 사세를 키웠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최 회장이 이끄는 SK그룹은 최근 현대차그룹을 제치고 재계 서열 2위에 올랐다. 하지만 박 전 회장은 최근 두산인프라코어를 HD현대그룹에 매각하고, 회장직에서도 물러났다. 도대체 어떤 요인이 두 총수의 운명을 바꿔놓았을까.

SK그룹의 주력인 SK이노베이션(옛 유공)과 SK텔레콤(옛 한국이동통신), SK하이닉스(옛 하이닉스) 등은 모두 M&A로 편입됐다. 그럼에도 큰 불협화음이 없었던 이유는 SK그룹의 독특한 기업문화인 ‘따로 또 같이’ 때문이다. 최고 의사협의 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에는 계열사 CEO뿐 아니라 외부 전문가 출신들도 포함돼 있다. 오너가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소통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에 성공이 가능했다는 게 황 교수의 설명이다.

“SK하이닉스는 국내 M&A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다. 최태원 회장이 직접 하이닉스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으면서 하이닉스 국내외 공장을 수시로 방문했다. 직원들과도 자주 식사를 하거나 대화를 하며 자연스럽게 SK그룹의 기업문화에 스며들게 했다. 이 때문에 하이닉스는 SK그룹에 편입된 후에도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지난해 4분기 글로벌 경기 침체 부작용으로 적자가 났지만 일시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 전까지 사상 최대 매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두산그룹 역시 맥주를 파는 소비재 기업에서 중공업 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처음처럼 같은 식음료 회사를 매각하고, 한국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대우종합기계(현 현대두산인프라코어), 밥캣(현 두산밥캣)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하지만 무리한 M&A의 후유증은 컸다. 의욕적으로 인수한 밥캣이나 두산건설의 실적 악화와 차입금 증가로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두산그룹은 2020년 채권단 관리체제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두산인프라코어 등 알짜 회사를 되팔아야 했다. 박용만 전 회장은 두산그룹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초 두산그룹은 채권단 관리체제를 졸업했지만 우려는 여전한 상황이다. 황 교수는 “M&A가 기업 성장의 자양분인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의존해도 안 된다”면서 “두 그룹의 차이는 프리딜·포스트딜 전략 마련과 오너의 몰입도 차이로 본다”고 말했다.

 

“올해 플랫폼 기업 옥석 가리기 본격화”

올해도 대형 M&A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예탁결제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법인 가운데 기업 M&A를 완료했거나 진행 중인 회사는 140여 곳에 이른다. 삼성이나 SK, 현대차, LG, 롯데, 한화 등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중소기업들도 미래 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M&A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우려스러운 점은 최근 들어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대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황 교수는 “2000년 초 닷컴버블 때와 지금 상황이 비슷하다”면서 “M&A를 통해 몸집을 불린 플랫폼 기업의 옥석 가리기가 조만간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에 따르면 IT버블 당시 수많은 기업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네이버와 카카오(옛 다음), 엔씨소프트 등은 당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은 업체들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이던 지난 몇 년간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됐다. 플랫폼 업체들이 최대 수혜주였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이들 기업의 거품이 걷히면서 옥석 가리기가 시작될 것으로 황 교수는 전망한다. 그는 “특히 스타트업의 경우 미래 가치는 있지만 흑자 전환을 아직 달성하지 못한 기업이 많다”면서 “이들 기업 중에서 시장에 매물로 나온 기업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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