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라임 사태’ 김봉현 2020년 녹취 “야당(국힘)은 빼고 여당(민주당)만 다 조져 버릴 테니까”
  • 조해수·김현지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3.03.06 07:35
  • 호수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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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단독 보도, 최근 기동민·이수진(비례) 민주당 의원 등 기소로 이어져

1조7000억원 규모의 피해를 야기한 ‘라임자산운용펀드(라임) 사태’의 주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2월9일 징역 30년과 추징금 769억3540만원을 선고받았다. 2주 뒤인 23일에는 김 전 회장에게서 모두 1억6000여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동민·이수진(비례)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영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갑수 전 열린민주당(민주당 전신) 부대변인이 기소됐다. 이로써 라임펀드 환매 중단이 벌어진 2019년 10월 이후 3년여 만에 라임 사태가 일단락됐다.

(왼쪽부터)김영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 김갑수 전 열린민주당 부대변인, 이강세 전 스타모빌리티 대표 ⓒ시사저널 이종현, 박은숙, 최준필·연합뉴스·뉴시스

시사저널, 2020년 11월 ‘정치인 로비 녹취’ 보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김봉현 전 회장은 2020년 10월경 옥중 편지를 통해 “검찰 측으로부터 ‘여당(민주당) 정치인들과 청와대 강기정 수석 정도를 잡아주면 보석 재판을 받게 해주겠다’는 회유를 받았다”면서 “야당(국민의힘) 쪽 로비도 얘기했지만 오직 여당(민주당) 정치인만 수사가 진행됐다. 조국 사건들을 보면서 검찰 개혁은 분명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검찰 개혁을 추진하고 있던 민주당은 라임 사태를 ‘검찰 게이트’로 규정했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하기도 했다. 범죄자의 말 한마디에 대한민국이 휘청거린 셈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서울남부지검은 김봉현 전 회장의 배후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인 이아무개 변호사가 있었다고 보고, 이 변호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 변호사는 김 전 회장의 옥중 편지를 언론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시사저널은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라임 사태가 본격화된 2019년 말부터 탐사보도를 이어왔다. 그러던 중, 시사저널은 김봉현 전 회장이 도주 중이던 2020년 3월20일과 체포되기 3일 전인 4월20일 측근과 나눈 전화통화 녹취파일을 단독 입수했다. 여기에는 이번에 기소된 기동민·이수진(비례) 의원, 김영춘 전 의원, 김갑수 전 부대변인에게 ‘로비를 했다’는 김 전 회장의 육성이 생생히 담겨 있다.

이 녹취파일은 체포 전 김봉현 전 회장의 ‘날것’ 그대로의 생각을 보여준다. 즉, 김 전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치권을 이용하겠다고 마음먹기 전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의 통화 내용은 시사저널TV(https://m.youtube.com/watch?v=WQQvznvnxIQ)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사저널은 이와 같은 내용을 2020년 11월 연속 보도했다. 당시 로비를 받았다고 지목된 정치인들은 물론 김봉현 전 회장 역시 모든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2년여의 세월이 흐르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김봉현 전 회장이 비난했던 검찰의 수장이 대통령이 됐다. 이 때문이었을까, 김 전 회장은 보석을 틈타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했다가 다시 검거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다.

김봉현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 붙잡힌 후 옥중 편지 내용을 번복하고 정치인들에 대한 로비를 모두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이 옥중 편지 발표를 후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과거 자신의 로비 의혹을 수사한 검사에게 미안한 감정을 표현했다”고 전했다.

 

“너무 뜸들이지 말고 던져줘, 시간 싸움이니까”

김봉현 전 회장은 2020년 4월23일 검거됐고, 같은 해 10월 옥중 편지를 통해 “여당(민주당) 정치인에 대한 로비 진술을 검찰 측에서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전 회장 체포 전인 3월20일 통화 녹취에 따르면, 오히려 김 전 회장이 적극적으로 여당(민주당) 정치인에 대한 폭로를 주도했다.

김봉현 전 회장 : 야당은 빼고 여당만 다 조져 버릴 테니까. 일단 여러 개가 있다 하면서 기자한테 던져줘.

측근 A씨 : 예.

김 전 회장 : 그래갖고 그 빨리 얘기하라고 해. 너무 뜸 들이지 말고. 밥 타니까. 아끼다 똥 된다.

A씨 : 알겠습니다, 예.

김 전 회장 : 응, 기자가 그럼 스토리 만들 거 아니냐. 그러면 이제 지 ○○○ 걔가 지네 팀이 만들어졌으니까 팀이 돼갖고 파트를 나눌 거 아니냐? 취재파트를. 그러니까 너무 뜸 들이지 말고 던져주라 하라 이 말이야, 형 얘기는. 지금 시간 싸움이니까.

김봉현 전 회장은 여당(민주당) 정치인들과 관련한 로비를 폭로해 자신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돌리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회장은 ‘로비 주범’으로 광주MBC 사장 출신인 이강세 전 스타모빌리티 대표를 지목했다.

이강세 전 대표는 김봉현 전 회장과 공모해 스타모빌리티 자금 192억원을 회사 업무와 무관하게 재향군인회 상조회 인수 대금으로 사용하는 등 횡령한 혐의로 징역 5년을 최종 선고받았다. 또한 이번 정치인 로비 사건에서도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로 김 전 회장과 함께 기소됐다.

김봉현 전 회장이 입장을 뒤집든 말든, 실체가 무엇이든 당시 정치권에서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만 활용했다. 김 전 회장은 옥중 편지를 통해 “검사장 출신 야당 유력 정치인(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에게 수억원을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당시 추미애 장관은 “검찰총장이 검사장 출신 유력 야권 정치인에 대한 구체적 비위 사실을 직접 보고받고도 여권 인사와는 달리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했다. 이와 관련해 윤갑근 전 고검장은 1심 징역 3년을 깨고, 2021년 12월경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갑수·기동민·이수진, 필리핀 폰타나 모임이라고 있어”

기동민 의원은 20대 총선을 앞둔 2016년 2월부터 4월까지 서울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 관련 인허가 알선과 선거자금 등의 명목으로 김봉현 전 회장 측으로부터 정치자금 1억원과 200만원 상당의 양복 등을 수수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알선수재)를 받고 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녹취파일에는 이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다.

김봉현 전 회장 : 그리고 저 기동민이한테는 두 차례에 걸쳐서 거의 억대 갔어. 한 세 차례 갔겠구나. 그 선거, 선거할 때.

기동민 의원은 즉각 반발했다. 기 의원은 2월23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법원 판결을 통해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겠지만, 하도 기가 막혀서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오늘의 공소장은 곧 휴지조각이 될 것”이라면서 “검찰이 주장하는 그날 그 시각, 저는 다른 곳에서 주어진 일을 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수진 의원(비례)은 2016년 2월 500만원을, 김갑수 전 부대변인은 2016년 2월 5000만원을 김봉현 전 회장에게서 수수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김봉현 전 회장 : 그리고 이들이 누구냐 하면 저 이강세 플러스 김갑수, 기동민, 이수진. 이수진이라고 저 뭐냐 의료연맹위원장 있어. 걔. 그리고 금융노조위원장 또 있어. 그것들 이제 야인일 때 만들어진 폰타나 모임이라고 있어. 필리핀 모임. 거기에 또 이강세가 주축이야. 필리핀 폰타나 리조트. 그 비행기 탄 근거들이 다 있어. 뭔 말인지 아냐?

A씨 : 예, 예, 예.

이수진 의원(비례)은 검찰의 기소에 대해 “검찰은 거짓 진술, 오락가락 진술에만 의존해 저를 기소했다”면서 “검찰의 공소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법정에서 진실이 명백하게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춘한테 직접 형이랑 가갔고 돈 주고 왔단 말이야”

김봉현 전 회장은 김영춘 전 의원과 관련해 돈을 준 장소까지 언급했다. 검찰은 김 전 의원이 김 전 회장에게서 2016년 3월 5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김봉현 전 회장 : 2016년도 선거 때도 민주당 김, 김모 의원, 장관 인사. 부산에 모 유력 의원. ○○○식당 가갔고(가서) 돈 준 것들 있다고 얘기해.

A씨 : 알겠습니다.

김 전 회장 : 실제로 형이 돈을 줬다고 그때 그거.

A씨 : 네, 네.

김 전 회장 : 형은 2억5000(만원) 출발이었으니까. 뭔 말인지 알았냐?

A씨 : 예.

김 전 회장 : 누구냐면 부산, 그 해수부 (해양수산부) 장관 김영춘이야. 그때 당시는 완전히 XX이었거든. 선거 동원돼서, 그 돼버렸잖아, 그때 부산에서 김영춘한테 직접 형이랑 가갔고(가서) 돈 주고 왔단 말이야.

김영춘 전 의원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부산진구 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김 전 의원은 2020년 10월30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봉현이라는 사람을 모르며, 돈을 받은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알선수재와 정치자금법 위반의 공소시효는 각각 7년이다. 검찰은 공소시효 완성이 임박하자, 기동민 의원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고 재판에 넘겼다. 노웅래·이재명 의원 경우에서 보듯 169석을 보유한 민주당이 소속 의원에 대한 국회 체포동의안을 통과시켜줄 리 없다는 계산도 작용했다.

신주호 국민의힘 부대변인은 “이들의 혐의는 2020년 말에 알려졌으나 제대로 수사되지 않았고, 정치자금법 공소시효 7년을 앞둔 지금에 와서야 불구속 기소됐다”면서 “문재인 정권에서 라임펀드 사기 사건 수사 방해는 노골적이었다. 친문 검사 일색으로 구성된 수사팀은 정권을 향한 비리 혐의에는 눈을 감고, 수사를 중단했다. 도리어 민주당 정권의 로비를 수사하던 검사들이 역으로 수사의 대상이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심지어 옵티머스 펀드 사건 수사에서는 청와대와 민주당 인사들의 실명이 나오는 자료와 진술을 확보하고도 수사를 뭉갰다. 이때도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 지시가 이뤄졌으니 수사가 진행됐을 리 만무하다”면서 “정치권 로비 의혹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는 이제 시작이다. 더는 사건을 외면하거나 흐지부지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연합뉴스

“언론과 검찰보다 김봉현 더 믿는다는 말에 충격”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녹취파일을 제보한 A씨는 2020년 11월경 시사저널에 편지를 보내왔다. A씨는 제보 이유에 대해 “누군가의 말처럼 모든 것이 정치로 뒤덮여 버렸다. ‘언론과 검찰보다 김봉현의 말이 더 믿을 만하다’는 댓글에 충격을 받았다”면서 “이 녹취가 다시 사건에 집중하게 하는 단초가 되길 소원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편지 전문이다.

“녹취를 공개하면서 두 가지 부분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녹취를 방정현 변호사를 통해 ‘익명으로’ 공개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녹취 공개가 제보자 또는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오해를 사고 싶지 않습니다. 그 어떤 이익도 바라지 않음과 동시에 녹취 공개로 인한 피해도 원하지 않습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취를 공개하는 이유입니다. 진상 규명과 책임이 있는 사람에 대한 처벌,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수립과 같은 것들은 요원해 보이고, 누군가의 말처럼 모든 것이 정치로 뒤덮여 버렸습니다. ‘언론과 검찰보다 김봉현의 말이 더 믿을 만하다’는 댓글에 충격을 받습니다. 오늘 공개되는 이 녹취가 누군가의 사사롭고 불순한 의도를 모두 걷어내고, 다시 사건 자체에 집중하게 하는 단초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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