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구 열기에 도전하는 지구촌 또 하나의 축제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3 16:00
  • 호수 17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야구 월드컵’ WBC, 메이저리그 스타들 총출동
한국은 호주·일본에 연패하며 3개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

2019년 10월 미국 여론조사기관 ‘유고브(YouGov)’는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내놨다. 미국 시민을 상대로 몇몇 프로 스포츠 선수의 인지도를 물었는데, 미국 메이저리그(MLB) 최고 인기 스타인 마이크 트라우트(LA 에인절스)에 대한 인지도가 43%에 그쳤다. 미국인 둘 중 하나는 그를 몰랐다는 얘기다. 트라우트에 대한 인지도는 미국프로농구(NBA) 르브론 제임스(LA 레이커스, 91%), 미국프로풋볼(NFL) 쿼터백 톰 브래디(은퇴, 88%)의 그것과 비교해 한참 떨어진다. 뉴욕타임스는 이에 대해 “야구는 지역 기반의 스포츠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연고 지역 내에서는 최고 인기 스포츠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아니라는 뜻이다. 

‘메이저리그는 로컬(지역)’이라는 이 같은 해석은 전 세계적으로 대입해 봐도 얼추 들어맞는다. 야구는 북중미와 일본·한국·대만 정도에서만 높은 인기를 누린다. 유럽에서는 축구에 밀려 프로 리그조차 없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다. ‘로컬’은 곧 ‘제한적’이라는 말이다. ‘야구 월드컵’을 표방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의 탄생도 야구의 제한적 인기에서 기인한다. 야구가 올림픽에서 퇴출당한 것을 계기로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야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축구 월드컵과 같은 국제적인 대형 이벤트가 필요했다. 

3월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본선 1라운드 한국과 호주의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이 8대7로 진 후 경기장으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3월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본선 1라운드 한국과 호주의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이 8대7로 진 후 경기장으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야구의 올림픽 종목 퇴출 위기가 만든 WBC 대회

야구는 1904년 세인트루이스올림픽 때 처음 시범종목으로 채택됐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때는 미국만 참가해 7이닝 청백전 형식으로 치러졌는데, 당시 경기장을 찾은 독일인만 9만 명 이상일 정도로 유럽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1940년 도쿄올림픽 때 야구는 정식종목 채택을 노렸지만 세계대전으로 대회가 취소되면서 무산됐다. 1956년 멜버른올림픽 때는 무려 11만4000명이 야구를 보기 위해 멜버른 크리켓파크에 모였다. 

야구에 대한 관심은 서서히 높아졌고 1984년 LA올림픽,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시범종목이었던 야구는 드디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 처음 정식종목이 됐다. 1992년과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는 아마추어 선수들만 참가가 허용됐다가 2000년부터 프로 선수에게 문을 개방했다. ‘아마추어’지만 ‘프로’ 같은 쿠바가 1992년, 1996년 올림픽 금메달을 연달아 차지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조처였다. 

하지만 프로 선수 참가가 허용됐는데도 메이저리거들이 나서지 않으면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불만을 표출했다. 한국·일본·대만은 자국 리그까지 중단하며 올림픽에 참가한 반면 미국은 계속 마이너리그 선수 위주로 대표팀을 꾸렸기 때문이다. 올림픽이 7~8월에 열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시즌 중에 올림픽에 나서기는 어려웠다. 올림픽 기간 휴지기를 맞는 축구·농구와는 사정이 달랐다. 메이저리그 스타들이 전혀 참여하지 않으니 올림픽 야구가 흥행할 리 없었다. 더군다나 야구장 건설은 올림픽 개최도시에도 큰 부담이었다.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대회 이후 야구장이 철거된 것이 한 예다. 흥행도 안 되는데 건설비만 들어가니 IOC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본격적으로 올림픽에서 야구가 퇴출당할 기미가 보이자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다른 성격의 세계대회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정규 시즌 중간이 아닌 시작 전인 3월에 개최하면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참여할 수 있고 정규 리그 개막 전 흥행몰이도 될 수 있다는 노림수가 있었다. 무엇보다 메이저리거를 포함해 전 세계 프로 선수들이 모여 자웅을 겨루는 최초의 국가 대항 대회였기에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 야구 챔피언을 가린다! 뭔가 그럴듯하지 않은가.

3월9일 한국과 호주의 경기 9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한국의 에드먼이 도루를 시도, 태그아웃되고 있다. ⓒ연합뉴스
3월9일 한국과 호주의 경기 9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한국의 에드먼이 도루를 시도, 태그아웃되고 있다. ⓒ연합뉴스

직전 2017년 대회 때 ‘흥행 대박’ 터뜨려

WBC 초대 대회는 원래 2005년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준비 문제로 1년 늦은 2006년 3월 개최됐다.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노조가 야심 차게 준비한 만큼 참가 선수들 면면도 아주 화려했다. 로저 클레멘스, 데릭 지터, 알렉스 로드리게스, 맷 홀리데이, 치퍼 존스, 스즈키 이치로, 마쓰자카 다이스케 등 당대 최고 야구 스타들이 총출동했다. 한국 또한 박찬호·서재응·이승엽 등 미국·일본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이 대표팀에 합류했다.  

WBC는 대회 흥행을 위해 참가 자격에도 유연성을 뒀다. 본인의 국적 외에도 부모의 국적 또는 출생지, 본인의 영주권 중 원하는 곳을 택해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했다. 본인 국적만으로 한정할 경우 미국 대표팀 쏠림 현상이 발생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이런 점을 이용해 1회 대회 때는 미국 대표팀으로, 2회 대회 때는 부모의 나라인 도미니카공화국 대표팀으로 출전하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 토미 현수 에드먼(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한국 대표팀으로 출전할 수 있는 것도 어머니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억에는 2006년과 2009년 1·2회 대회의 환희와 감격이 강하게 남아있다. 4강과 준우승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기 때문이다. 반면 3·4회 대회인 2013년과 2017년에는 한국 대표팀이 1라운드에서 조기 탈락하며 WBC에 대한 관심이 식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는 아니다. 대회를 거듭할수록 시행착오를 줄이고 시스템이 안정되면서 직전 대회인 2017년의 경우 소위 흥행 ‘만루홈런’을 터뜨렸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대회 전체 시청률은 2013년 대회 결승전과 비교해 32%나 증가했다. 

특히 미국과 푸에르토리코가 맞붙은 결승전의 경우 MLB네트워크(MLB 생중계 사이트)에만 230만 명의 시청자가 몰렸다. 2016년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와 시카고 컵스 간 내셔널리그 디비전 시리즈(NLDS) 2차전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MLB네트워크에서 많이 본 경기였다. 미국과 일본의 준결승전 시청률은 일본 내에서 25.4%를 기록했다. 해당 주 방송 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이었다. 대회 총관중 또한 역대 최초로 100만 명을 넘어섰고(108만6720명), 상품 판매는 2013년에 비해 50%나 증가했다.

올해 5회 WBC 대회가 출전국을 확대(16개국→20개국)한 것도 1~4회 대회를 치르면서 얻은 자신감과 무관치 않다. 대회 방식 또한 과거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이번 대회부터는 축구 월드컵처럼 조별리그 뒤 8강부터 토너먼트 방식으로 바꿨다. 한국과 일본이 무려 5차례나 맞붙어 논란이 됐던 2009년과 같은 기형적 대회 방식은 이제 없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과 일본은 최대 두 차례(조별리그 후 결승전)만 붙는다. 2023년 대회에서 ‘꿈의 대결’로 첫손 꼽히는 매치업은 오타니 쇼헤이(일본)와 마이크 트라우트(미국)의 투타 대결이다. LA 에인절스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이들이 4강에서 투수와 타자로 맞붙게 된다면 어떤 승부가 펼쳐질까. WBC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가장 극적인 장면이 될 수 있다.

한편 대한민국 대표팀은 3월9일 호주와의 첫 경기에서 7대8로 아쉬운 패배를 당한데 이어, 10일 숙적 일본과의 대결에서 4대13으로 참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12일 체코에 7대3으로 승리했으나, 13일 호주가 체코를 8대3으로 이기면서 한국은 1라운드 탈락이 확정됐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