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후폭풍 가셨지만…“남 일 아니다” 소리 나오는 이유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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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먼데이’ 우려 불식했지만 금융시장 불안감은 지속
“국내 영향 제한적” 평가 속 ‘선제대응’ 주문 한 목소리

‘블랙먼데이’는 없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2008 글로벌 금융위기’에 준하는 공황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13일(현지 시각) 개장한 글로벌 증시는 일부 상승 흐름을 보였다. 미국 금융당국의 발 빠른 대처가 불안감을 잠재웠기 때문이란 게 증권가의 주된 평가다.

한국 정부도 “SVB 파산 영향력은 제한적”이라며 한숨 돌린 분위기다. 그러나 ‘안심하긴 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직까지 전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이는 흐름이라 SVB 파산 후폭풍을 예단할 수 없는 데다, 국내에 SVB 사태에 준하는 위기가 닥쳤을 때 보호 조치가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금융 당국은 SVB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관련법을 정비하고 선행 조치를 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13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딜링룸 모니터에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 연합뉴스
13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딜링룸 모니터에 코스피와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 연합뉴스

美 금융당국 발 빠른 대처에도 피어나는 ‘불안감’

14일 확인된 글로벌 증시 성적표는 ‘예상 밖 선전’이라는 게 증권가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13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증시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0.15% 소폭 하락 마감했으며,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오히려 0.45% 올랐다. 이번 SVB 파산 배경으로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이 꼽히면서, 미 연준(연방준비제도‧Fed)이 긴축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진 결과로 풀이된다.

시장에 불안감 대신 기대감이 번지게 된 주요 이유로는 미국 금융 당국의 발 빠른 대응 조치가 꼽힌다. 미 금융당국은 SVB 파산 이후 48시간 만에 전액 예금 보호 조치를 발표했다. 자유시장경제체제를 표방하는 미국 정부로선 이례적인 적극적 개입 조치라는 평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직접 대국민 연설을 통해 “미국 은행 시스템은 안전하다. 은행 파산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관련 규제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불안의 씨앗은 남아있다. 미국 정부의 발 빠른 대응이 오히려 사태의 심각성을 방증한 것이란 지적 때문이다. 한지영 키음증권 연구원은 “미국 금융당국의 대응에도 불구하고 일부 시장참여자들 사이에선 그만큼 사안이 심각하다는 우려의 시각이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중형은행이나 지방은행의 추가적 폐쇄 사태 우려는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증권가에선 1984년 5월 발생한 콘티넨탈 일리노이 은행 파산 사태가 소환된다. 당시 미 금융당국은 콘티넨탈 일리노이 은행이 파산하자 이번 SVB 사태와 같이 예금 보장 대응책을 이례적으로 발표했는데, 뱅크런 사태는 멈추지 않았다. 이를 두고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콘티넨탈 일리노이 사태에서 알 수 있듯 정부 지원으로 안정을 찾는다 해도 부실한 은행들의 뱅크런 이슈는 지속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14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참석자들이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왼쪽부터 최상목 경제수석, 김주현 금융위원장, 추경호 경제부총리 및 기획재정부 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 연합뉴스
14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참석자들이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왼쪽부터 최상목 경제수석, 김주현 금융위원장, 추경호 경제부총리 및 기획재정부 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연합뉴스

SVB 사태에 도마 오른 5000만원 예보한도

한국 금융시장에서도 후폭풍이 감지된다. SVB 파산 직후 첫 거래일인 13일엔 코스피가 2400대 강보합세에서 출발했으나, 이날 장중엔 코스피와 코스닥지수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특히 은행주 중심 약세가 관측된다. KB금융과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은 2~4% 내외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정부의 개입 이후에도 뱅크런이 지속됨에 따라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고조된 것으로 분석된다.

SVB가 벤처‧스타트업 특화 은행이었던 만큼,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스타트업 업계에선 ‘남 일이 아니다’라는 자조가 나온다. 국내 모빌리티 업계 스타트업 관계자는 “SVB 사태로 눈 깜짝할 사이에 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했다. 미국 금융당국의 100% 예금 보호 조치 덕에 줄도산은 피하게 됐지만, 한국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떤 조치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관련 법안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은 “높은 경각심을 갖고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 등과 함께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어 SVB 사태 관련 비상대응을 약속했다. 추 부총리는 “현재까지는 국내 금융시장 영향이 제한적인 양상”이라면서도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지 못한 상황에서 금융시스템 불안 요인까지 겹치면서 향후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당면한 시장 불확실성에 대응해 금융시장 안정 유지를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현재 5000만원 한도인 예금자 보호 한도가 도마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금융당국은 이번 SVB 사태와 관련해 기존 3억3000만원 상당의 보호 한도를 초과하는 예금 전액에 대해 보전해주기로 했다. 이에 국내에서도 예금 보호 한도를 상향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예금자 보호 한도는 지난 2001년 이후 22년째 5000만원에 머물러있어서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호공사는 오는 8월 예금 보호 한도를 최대 1억원까지 상향하는 개선안 등을 두루 고려해 예금자보호 개선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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