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를 위한 한일 관계 개선, 성과일까 굴욕일까 [권상집의 논전(論戰)]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7 15:05
  • 호수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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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용·고위험 분야 기술의 공동 개발로 시너지 전망
일본의 정책 방향성도 잘 살펴야

윤석열 정부는 취임 초부터 한일 관계 개선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과의 관계 경색을 풀고 적극적으로 경제안보 교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 일환으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문제에 관해 ‘제3자 변제’ 해법을 제시했다. 제3자 변제란 일본 기업이 아닌 우리나라 기업이 조성한 기금으로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불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대통령은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며 어려운 결단임을 호소했다.

여론의 반응은 냉담하다. 3월10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9%는 “제3자 변제안을 반대한다”고 답했으며 응답자의 64%는 “일본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서둘러 한일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없다”고 답변했다. 대통령실은 1분 미만의 짧은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하며 김대중-오부치 정신 계승과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경제와 안보가 위기인 상황에서 한일 관계 개선은 필수라는 것이다.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서자 일본 정부도 우호적인 자세로 나왔다. 일본 정부의 초청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은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해 기사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12년간 이런저런 이유로 중단됐던 한일 정상 간 교류가 재개된 순간이다.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경제를 중심으로 안보, 사회·문화 등의 협력 확대를 양국은 약속하고 있다. 경제는 역사보다 중요해졌다.

ⓒ연합뉴스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3월16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의장대 사열을 마친 후 일본 측 인사를 만나기 위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안내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경제가 갖고 있는 ‘갈라파고스적 특성’

과반 이상의 국민이 일본의 반성 없는 한일 관계 개선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정부가 관계 정상화를 적극 추진한 이유는 경제적 효과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일 관계가 개선되면 고비용·고위험 분야의 공동기술 개발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수출 품목의 대일 수출이 확대돼 K팝과 국내 영상 콘텐츠 등이 일본에서 본격적인 한류붐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한일 협력이 경제 성과를 얼마나 높일 수 있을지는 일단 미지수에 가깝다. 올해 3월 ‘한일 경제협력의 새로운 도약의 필요성과 방향’이란 주제로 열린 산업 경쟁력 포럼에서도 한일 관계 개선은 필요하지만, 경제적 효과 측면에서 정량적 숫자로 도출될 만큼의 성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변이나 결과가 도출되지 못했다. 이는 일본 경제가 갈라파고스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하반기,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를 강화한 사건은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급속도로 냉각시켰다. ‘일본의 경제침략’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두 국가의 관계를 악화시킨 사건은 오히려 일본 기업에 많은 피해를 줬고, 국내 기업의 경제적 자립도를 높이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협력보다 폐쇄적이고 독자적인 방향성을 갖는 일본 경제의 갈라파고스적 특성이 관계 단절 이후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 것이다.

수출 경합 측면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산업 대부분에서 중복된 제품이나 서비스로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다. 필자가 2020년 국내 핵심 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 바이오·헬스, 무선통신, 철강, 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이미 주요 산업에서 일본과 대등하거나 일본을 넘어섰고 협력을 토대로 긍정적 파급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은 유의미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항이 있다. 일본은 경제와 안보를 정책 수단으로 입법화한 최초의 국가다. 기시다 총리 출범 이후 일본은 경제·안보를 중심에 두고 중요 기술 우위성 확보를 강조하고 있다. 일본이 말하는 중요 기술이란, ‘다른 나라가 독점할 경우 국가 및 국민의 안전을 위협할 우려가 있는 기술’을 뜻한다. 일본은 20개 품목을 중요 기술로 지정, 경쟁국에 유출되지 않도록 정부가 직접 관리하겠다고 선언했다.

ⓒ시사저널 박정훈
3월11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과 더불어민주당 등 주최로 ‘강제동원 굴욕해법 강행 규탄 2차 범국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일본 정부, 중요 기술 직접 관리

일본이 직접 관리하겠다고 선언한 중요 기술은 운송·이송(극초음속), 컴퓨터(인공지능, 기계학습, 양자정보), 인체(의료, 뇌컴퓨터), 영역(우주, 해양), 공학(바이오, 첨단엔지니어링, 제조, 로봇공학, 첨단재료), 네트워크(사이버보안, 첨단감시, 데이터과학), 에너지(화학, 생물, 방사성물질, 첨단에너지) 등이다. 굳이 길게 일부 항목을 열거한 이유는 일본이 해당 기술과 관련해서는 한국과 협력할 가능성이 적다는 의미다.

일본은 산업정책 측면에선 공급망 강인화, 외교안보 측면에선 대중국 견제, 미국과의 강인한 파트너십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이 내세우는 강인성은 안정적 확고함을 뜻한다. 우리는 배터리, 원자재(희토류) 등 탄소중립 산업, 항공우주, 차세대 반도체에서 양국의 협력 여지가 많다고 얘기하지만 이 중 일부는 일본의 중요 기술 항목에도 포함돼 있다. 관계 개선이 우리 뜻대로 흘러갈지 항상 예의주시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우호적인 스탠스를 취했음에도 일본 외무상은 “강제동원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며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이미 해결된 일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경제·안보를 입법화하며 자국의 경제와 기술을 지키겠다고 한 상황에서 성급한 화해의 손길은 일본에 저자세로 비칠 수 있다. 절대 다수의 국민이 굴욕외교를 할 필요가 절대 없다고 항변하는 이유다.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로 우리에게 특히 유명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2014년 일본 NHK 프로그램에서 한·중·일 대학생과 토론하며 과거사 문제 등을 이슈로 꺼냈다. 당시 샌델 교수는 “실존하는 갈등을 없는 척하면 갈등은 오히려 더욱 커진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정책적 방향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우리가 먼저 손을 내민 건 여전히 아쉽다. 굴욕외교를 떠나 경제적 성과도 사실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일본은 지금도 우리에게 경제·안보·외교 등에서 고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과거 성찰 역시 턱없이 부족하다. 학폭의 가해자도 용납이 안 되는 시대에 우리가 모호한 경제적 미래를 위해 역사의 가해자를 너무 빨리 용납한 건 아닌지 생각해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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