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돈’부터 ‘마약’까지…전두환家 끊이지 않는 비극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6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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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SNS·유튜브 통해 폭로전…“할아버지는 학살자, 아빠는 사기꾼”
‘全씨 일가 은닉 재산’ 문제 재부상…가족 “사실무근” 주장

미국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 회계법인을 다니던 한 수재. 남부러울 것 없어보였던 그가 어느 날 SNS를 통해 가족의 치부(恥部)를 드러냈다. 할아버지의 은닉 재산과 아버지의 사기 행각을 주장한 뒤, 형과 친구의 마약 범죄까지 폭로했다. 이 영화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씨다.

전우원씨가 고발을 시작한 건 지난 3월13일부터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친형, 친구들, 심지어 ‘전우원’ 본인까지 그의 ‘폭로 리스트’에 올랐다. 전우원씨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그는 가장 내밀한 부분을 드러낸 내부고발자일까, 허구 속을 살아가는 안타까운 영혼일까. 그 실체와는 무관하게 전우원씨의 발언을 도화선으로 사회가 들끓기 시작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수면 아래 가라앉았던 ‘비자금 의혹’, 나아가 전씨 일가의 복잡한 가정사까지 재조명되는 모습이다.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오른쪽)씨가 SNS에 올린 ‘가족 부정부패 폭로’의 이유 ⓒ전우원씨 인스타그램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오른쪽)씨가 SNS에 올린 ‘가족 부정부패 폭로’의 이유 ⓒ전우원씨 인스타그램

전우원, SNS‧유튜브 통해 ‘전방위 폭로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입니다. 가족과 주변인들의 범죄행각을 밝힙니다. 저도 범죄자이고, 처벌받겠습니다.”

지난 13일, 인스타그램 한 계정에 이 같은 글이 올라왔다. 글뿐만이 아니었다. 하얀색 셔츠를 입은 전우원씨는 영상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직접 공개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직장, 근무 부서, 거주지까지 밝혔다. 일부 네티즌들이 ‘가짜 계정’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신분증과 대학졸업증명서, 그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까지 공개했다.

그날부터 전우원씨는 매일 30분~1시간 단위로 각종 글과 영상을 연이어 게시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막대한 비자금이 숨겨져 있으며 ▲그 ‘검은 돈’으로 가족들이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고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신분 세탁‧차명 계좌 등을 통해 법망을 피해가고 있다는 게 폭로의 요지다.

이 과정에서 구체적인 ‘비자금의 흐름’까지 공개했다. 전우원씨의 폭로에 따르면, 비자금은 우선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원에 전달돼 ‘웨어밸리’라는 회사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후 회사의 비상장 주식과 자산이 전씨 본인과 친형인 전우성씨에게로 양도됐다고 한다. 이어 해당 주식과 자산은 자신의 새어머니인 박상아씨에게로 양도됐다는 것이다. 지난 2016년 전재용씨가 노역을 하고 나와 돈이 없다면서 양도를 요구했다는 게 전우원씨의 주장이다.

전우원씨는 자신의 부친인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용씨를 향해 “현재 미국 시민권자가 되기 위해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 법 감시망을 벗어나기 위해 현재 한국에서 전도사라는 사기행각을 벌이며 지내고 있다”면서 “이 자가 미국에 와서 숨겨져 있는 비자금을 사용해서 겉으로는 선한 척하고 뒤에 가서는 악마의 짓을 못 하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전우원씨는 작은 아버지이자 전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인 전재만씨도 할아버지의 ‘검은 돈’을 유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의심했다. 그는 “(전재만씨가) 현재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와이너리는 정말 천문학적 돈을 가진 자가 아니고서는 들어갈 수 없는 사업 분야”라며 “검은 돈의 냄새가 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친모인 최아무개씨와 관련해 전우원씨는 “제 친모 최ㅇㅇ씨는 주변 지인들과 가족들을 이용해 비자금 세탁을 해왔다”며 “주변 지인들을 철저히 조사하면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모친은) 암 수술을 여러 번 받았다.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돈세탁은 금융범죄”라며 “전두환 일가가 어떻게 돈을 세탁하는지 제 어머니만큼 잘 아시는 분이 없다. 공범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일가 전체를 비난하는 폭로성 게시물을 잇달아 올려 파장이 일고 있다. 15일 전우원씨 SNS에 따르면 전씨는 지난 13일부터 이날까지 해당 SNS에 자신이 발언하는 동영상과 그동안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던 가족사진, 지인 신상정보를 담은 게시물을 연달아 공개했다. 전씨는 전 전 대통령의 차남인 전재용씨의 아들로 확인됐다. ⓒ연합뉴스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일가 전체를 비난하는 폭로성 게시물을 잇달아 올려 파장이 일고 있다. 15일 전우원씨 SNS에 따르면 전씨는 지난 13일부터 이날까지 해당 SNS에 자신이 발언하는 동영상과 그동안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던 가족사진, 지인 신상정보를 담은 게시물을 연달아 공개했다. 전씨는 전 전 대통령의 차남인 전재용씨의 아들로 확인됐다. ⓒ연합뉴스

비리 폭로 이면, ‘가족 원망’ 도화선 됐나

전우원씨의 폭로가 일파만파 확산하는 가운데, 전씨 일가는 ‘쑥대밭’이 된 상황이다. ‘할아버지의 사망-손자의 폭로’가 2년 사이 연이어 벌어진 탓이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2021년 11월23일 혈액암 투병 끝에 향년 90세를 끝으로 사망했다. 전 전 대통령은 내란죄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국립묘지 안장 대상에서 제외됐다. 전씨 일가는 이후 마땅한 장지(葬地)를 찾지 못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 전 전 대통령 유골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버지 죽음, 아들의 ‘저격’을 연달아 겪은 전재용씨는 참담한 심정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아들의 ‘우울증’을 폭로 배경으로 언급했다. 전재용씨는 지난 15일 ‘조선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아들이 우울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매주 안부 묻고 잘 지냈는데, 13일 월요일부터 갑자기 돌변했다. 갑자기 나보고 악마라 하더라. 그래서 ‘그냥 아빠와 둘이 살자’고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는 가족이니까 괜찮은데 지인분들이 피해보셔서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예고된 폭로’라는 해석도 나온다. 전우원씨뿐 아니라 전씨 일가 전반의 사이가 원만치 못했다는 것이다. 전 전 대통령 집안 사정에 능통하다는 한 관계자는 “민주화 시대부터 전두환 가문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 했다”며 “가족들의 왕래도, 교류도 쉽지 않다보니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실제 전우원씨는 폭로 과정에서 가정의 불화를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전우원씨는 아버지 전재용씨가 바람을 피운 탓에 자신의 어머니가 무척 힘들어했고 결국 암까지 걸렸다고 주장했다. 전우원씨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10년 가까이 ‘해외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박상아씨와 바람을 피웠고 유흥업소에서 이 여자 저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며 외도를 했다”고 주장했다. 전우원씨는 전재용씨 두 번째 부인과 낳은 두 명의 아들 중 차남이다. 전재용씨는 이후 배우 박상아씨와 세 번째 결혼을 통해 두 명의 딸을 두고 있다.

전우원씨는 15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할머니 이순자씨에 대한 불신도 드러냈다. 그는 “할머니(이순자씨)가 연락해 ‘돌아와라 제발, 니 할미 품으로’라고 했다. ‘할미가 얼마나 살지 모른다’라고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할머니에게) 답을 하지 않았다. 소름이 끼쳤다”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지난해 말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해 열흘간 입원했을 때에도 “안부 문자 하나 없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전우원씨는 친형과도 사이가 좋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우원씨는 친형이 성매매 등 일탈을 상습적으로 저질렀다고 폭로했다. 지난 13일에도 친형의 신고로 경찰관 10여 명이 자신의 자택으로 출동했다는 게 전우원씨의 전언이다.

 

‘마약 수사’로 번질 가능성…‘전두환 추징 3법’도 재부상

전우원씨의 폭로가 실제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전우원씨는 주변 지인들이 성범죄와 마약 등 범죄 행각을 일삼고 있다며 실명과 사진, SNS 대화 내용을 캡처해 올렸다. 여기에 본인도 마약을 투약했다고 고백했다. 지난 15일 전우원씨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우울증 약이 아니라 마약을 했다. LSD라는 마약을 했고, 2C-E라는 마약, 대마초를 흡연했다”며 구체적으로 마약 투약 경험을 털어놨다.

다만 전우원씨가 폭로한 ‘전두환 일가의 비자금’이 재수사선상에 오르기는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있다. 전우원씨가 구체적인 정황을 언급하고 있지만 이를 증명할 증거는 없는 상태여서다. 일례로 전우원씨는 비자금이 경호원에게 전달된 부분과 새어머니인 박상아씨에게 양도된 주식과 자산이 아버지인 전재용씨로 넘어간 부분은 증명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전 전 대통령이 사망한 것 역시 변수다. 국회에서는 당사자가 숨져도 재산을 추징할 수 있도록 한 ‘전두환 재산 추징법 3법’이 2020년 발의된 바 있다. 하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전두환 재산 추징 3법은 ▲몰수의 대상을 물건으로 한정하지 않고 금전과 범죄수익, 그밖의 재산으로 확대하는 ‘형법 개정안’ ▲추징금을 미납한 자가 사망한 경우에도 그 상속재산에 대하여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형사소송법 개정안’ ▲범인 외의 자가 정황을 알면서 불법재산을 취득한 경우와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취득한 경우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을 포함한다.

‘전두환 추징 3법’ 대표 발의자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사위 소위에 한차례 상정된 바 있으나 법원행정처와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여전히 계류 중이고,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은 단 한 차례의 심사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 법사위는 전두환 일가가 사용하고 있는 ‘검은돈’을 환수하기 위해 소위에 계류 중인 ‘전두환 추징 3법’을 신속히 심사,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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