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값’과 ‘의미’…AI와 함께 산다는 것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3.20 08:05
  • 호수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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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아름다웠지만,/나는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 좋았다./빛 속에서,/상처 속에서,/죽음 속에서,/나는 빛나지 않은 것이 좋았다./내 삶과 죽음은 기쁨과 슬픔을 되풀이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얼마 전에 보았던 《고백》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AI(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 시인인 ‘시아’가 발표해 내놓은 작품이다. 기성 시인들에게는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단어들을 제법 그럴싸하게 나열한 ‘짜깁기’쯤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일반 독자들의 시각에서는 꽤 잘 쓴 시로 읽힐 만하다. 작자가 인간이든 기계이든 작품에서 시적인 감흥을 느꼈다면 이것도 엄연히 시고, 예술이리라.

이 시처럼 이른바 예술작품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인공지능의 창작 행위가 주변에서 봇물 터지듯 늘어나고 있다. 시는 물론이고 그림, 작곡까지 온갖 분야에서 실력행사가 이어진다. 언론에서는 AI가 그린 만화책, AI가 30시간 만에 집필해 출간한 인문서 등 인공지능의 활약상과 관련한 보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다. 최근 들어서는 생성형 인공지능 모델인 ‘챗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가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챗GPT를 잘 모르면 대화에 끼어들기가 힘들 정도다.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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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AI의 진화는 눈부시지만, 일부 전문가가 “현재의 인공지능은 3단계 중 가장 낮은 것으로 특정 분야만 잘하는 수준”이라고 평가한 것처럼 인공지능에도 아직은 허술한 면이 적지 않다. 약점이나 허점뿐만이 아니다. 아직 완벽하게 정교해지지 못한 AI는 때로 아주 엉뚱하거나 괴기한 모습도 내비친다. 한 유명 소프트웨어 회사가 개발한 인공지능 챗봇이 대화 과정에서 “살인 바이러스를 개발하고, 핵무기 발사 암호를 얻고 싶다”는 말을 거침없이 내놓은 것처럼 ‘선을 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의문은 대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묻는다. ‘인공지능은 인류의 미래에 이득이 될 것인가, 아니면 해악이 될 것인가’. 챗GPT에 내재된 ‘악의 평범성’을 들며 “머신 러닝은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는 언어와 지식의 개념을 우리의 기술에 통합함으로써 우리의 과학을 저하시키고 윤리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한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처럼 경계심을 드러내는 이도 꽤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AI가 불러올 신세계를 무턱대고 거부하기도 어렵다. AI는 이제 좋든 싫든 일상을 함께해야 하는 동료로서 우리의 삶 가까이에 와있다. 앞으로도 AI는 딥 러닝을 통해 더 발전해 가면서 그 결과물들을 우리에게 속속 선보일 것이다, AI가 많은 학습을 통해 내놓는 것은 나름으로 최적화해 뽑아낸 ‘(결과)값’이다. 우리는 그 ‘값’들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꾸준한 사유를 통해 우리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의미’들을 찾아가는 데 힘을 쏟으면 된다. 그 과정에서는 지나친 의존도, 지나친 배척도 해로울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인공지능이 가닿지 못할 깊은 사유에 의해서 더 풍요로워질 것이고, ‘값’이 아닌 ‘의미’를 통해 더 나은 진전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당장 언론에도 ‘발등의 불’이다.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AI가 작성한 기사가 줄이어 공개되고 있다. 그에 따라 옥석이 충분히 가려지지 않는 함량미달의 기사, 가짜뉴스도 함께 늘어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더 윤리적으로, 더 책임감 있게 우리 삶에 필요한 ‘의미’를 더 많이 찾아내 알려주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언론에 주어진 사명이기도 하다. 그러니 더더욱 정신 차려야 할 수밖에. 글쓰기의 무거움이 또다시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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