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재현되는 뱅크런에 투자자들 ‘패닉’
  • 배현기 웰스가이드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3.25 12:05
  • 호수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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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B 파산과 CS 매각으로 뱅크런 논란 수면 위로
예금보험 한도 올린다고 문제 사라질까

‘뱅크런’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국 16위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뱅크런으로 무너지며 가교 은행이 설립됐다. 투자 실패와 스캔들, 뱅크런에 시달리던 스위스 2위 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는 유비에스(UBS)에 매각됐다. 미국과 스위스 금융 당국이 시스템 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뱅크런 우려는 여전히 시장에 팽배한 상황이다. 

사실 뱅크런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금본위제의 유물 정도로 인식됐다. 금 대신 은행권이 유통되는 시기에 은행권이 과잉 발행되고 금으로의 태환을 우려한 은행권 보유자들이 일시에 몰리면서 금을 내어주지 못하는 ‘은행 패닉’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부실, 유동성 부족, 소문 등 여러 원인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최종 결제수단인 금의 부족이 문제였다.

ⓒAP 연합
3월17일(현지시간) 파산 보호 신청을 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의 매사추세츠주 웰즐리 지점 앞에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AP 연합

뱅크런에 무너진 미국 16위 은행

중앙은행이 설립되고 은행권이 하나로 집중돼도 뱅크런은 사라지지 않았다. 은행들은 중앙은행권을 지급준비금으로 하는 예금화폐를 발행하는데, 인출이 일시에 몰리는 경우 예금의 일부만 준비금을 보유하는 부분준비제도 아래서는 감당할 수 없었고, 중앙은행의 금태환 의무가 있는 상태에서 최종대부자(LLR)로서 무제한 대출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국 제3자인 정부 또는 공적기관이 예금의 지급을 보장하는 예금보험제도가 도입된 후에야 뱅크런이 억제될 수 있었다. 뱅크런은 한번 시작되면 예금부채를 충분히 지급할 수 있는 은행도 금방 파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예금자에게 언제라도 예금을 찾을 수 있다는 신뢰를 심어주는 제도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물론 예금보험제도가 예금자의 모든 예금을 지급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일정 금액을 초과하는 예금 원금과 이자는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 모든 예금의 지급을 보장할 경우 예금자의 은행 선별이라는 시장 기능이 무력화될 수 있고, 은행 주주와 경영진의 과도한 위험 추구라는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예금보호제도가 도입된 이후 뱅크런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특히 브레튼우즈 체제 아래서 이렇다 할 경제위기나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 은행 시스템도 매우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금달러본위제가 무너지고, 자본 자유화와 금융 규제 완화가 시작되면서 은행 시스템이나 국제 금융 시스템에 위기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뱅크런도 재발했다. 남미 금융위기, 동아시아 금융위기 등 국제 금융위기가 일어났고, 2008년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정점을 찍었다. 특히 리먼 사태로 “어떤 금융기관도 믿을 수 없다”는 거래상대방 위험(counterparty risk)은 미국을 넘어 유럽과 전 세계로 뱅크런 위험을 확산시켰다. 멀쩡한 은행도 뱅크런으로 무너졌는데, 2007년 영국 노던락(Northern Rock) 은행이 대표적 사례다.

은행 위기와 뱅크런이 재발하자 금융 당국은 극약 처방을 내놓았다. 뱅크런을 막기 위해 예금 전액의 지급을 보장하거나 보장금액을 높였고 은행 자산을 매입해 줬다. 무너진 은행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바젤Ⅲ 규제, 즉 은행의 유동성, 자본 적정성, 자산 건전성 등 측면에서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거나 기준을 높이는 조치를 실시했다. 이런 조치는 효과를 발휘했고 초저금리정책 및 확대 재정으로 인해 시장 위험과 신용 위험이 줄어들면서 은행 시스템은 안정을 되찾았다. 예금보험제도의 경우 미국은 2008년 10월 10만 달러에서 25만 달러로 상향 조정한 보장한도를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는 반면, 예금 전액을 보장했던 나라들은 위기에서 벗어난 이후 부분 보장으로 회귀했다. 그러나 최근 뱅크런으로 SVB가 무너지고 CS도 매각되는 등 금융위기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미국은 해당 은행의 예금 전액을 지급 보장했다.

우리나라도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 11월 예금을 전액 보장한 적이 있었다. 위기에서 벗어난 2001년 부분 보장으로 전환한 후 현재까지 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뱅크런 우려가 확산되자 정부와 여야는 예금 전액보호를 검토하거나 예금자보호법 개정을 통해 보험한도 상향을 추진하고 있다. 법 제32조 제2항에 따르면 1인당 국내총생산액, 보호예금 등의 규모를 고려해 시행령으로 보험금 한도를 정하도록 돼있는데, 제18조 제7항은 이를 5000만원으로 하고 있다.

ⓒAP 연합
악셀 레만 크레디트스위스 이사회 의장(왼쪽)이 3월19일(현지시간) 스위스 베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콜름 켈러허 UBS 회장을 바라보며 발언하고 있다. ⓒAP 연합

금융규제 강화만이 능사일까

하지만 뱅크런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며, 예금보험한도를 상향한다고 뱅크런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 소득 수준과 예금 규모에 맞춰 보험한도는 당연히 높여야 하지만, 앞서 언급한 이유로 인해 위기와 같이 예외적인 시기나 특정 대상이 아니라면 언제나 모든 예금을 보호할 수는 없다. 결국 전액보호는 불가능하고, 부분보호 아래서는 뱅크런을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금융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할까. SVB의 경우 스타트업 기업고객들의 예금이 단기간에 급증함에 따라 대출 대신 장기 국채와 MBS로 운용했다. 금리 상승으로 인해 평가손을 기록했고 손실이 알려지고 뱅크런이 발생하며 투매로 인해 손실이 가속화됐고, 자본확충 실패와 영업정지로 이어졌다. 이는 유동성 관리에 실패한 결과로, 관련 규제 역시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단기유동성비율(LCR) 규제가 있다. 30일간의 유동성 스트레스 시나리오 아래서 유동성 부족을 충당할 수 있도록 빠르게 현금화가 가능한 고유동성 자산을 적정 규모(비율)로 보유해야 하는 규제다. 예금 인출이 일시에 몰려도 은행이 큰 손실 없이 대응하도록 한 것이다. 미국은 그 대상을 2018년 자산 규모 2500억 달러가 넘는 은행으로 완화했는데, SVB는 작년 말 기준 여기에 해당되지 않았다.

은행이나 금융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만기친람’식 규제 강화 논의가 등장한다. 과연 그게 바람직한가. 가능하기는 한가. 전액보호가 아니라면 뱅크런을 막을 수 없고, 금융규제를 아무리 강화해도 모든 문제를 방지할 수는 없다. 한 은행도 망해서는 안 된다기보다 망하더라도 시스템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제도와 정책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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