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현장 르포] 유럽 ‘테스트 마켓’ 영국을 사로잡은 K푸드 열풍의 비밀
  • 런던=박창민 기자․이택민 JS홀딩스 매니저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3.05.16 07:35
  • 호수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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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에 열광하는 런던…거리엔 ‘분식’ ‘포차’ 한국 간판 즐비
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드라마’ 아닌 ‘한식’ 

영국은 버킹엄 궁전, 웨스트민스터 사원 등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나라다. 박물관과 미술관, 뮤지컬 등 볼거리도 가득해 전 세계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매년 세계 관광도시 순위 10위 안에 들 정도로 전 세계인이 영국을 찾지만, 먹거리만큼은 아쉬움이 남는다. 영국의 대표 음식으로 피시앤칩스(생선튀김과 감자튀김), 선데이로스트(구운 고기)밖에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 틈을 K푸드가 비집고 들어갔다. 최근 몇 년 사이 영국에는 그야말로 한식 열풍이 불고 있다. 어딜 가나 한식당에서 줄을 서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한식, K푸드는 어떻게 영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을까.

영국의 한식 열풍을 직접 보기 위해 4월29일 토요일 저녁 런던에 있는 한 한식당을 찾았다. 런던 중심가인 피카딜리서커스에서 구글맵으로 ‘Korea Restaurant’을 검색했다. 피카딜리서커스뿐만 아니라 코벤트 가든, 윔블던, 케임브리지 등 런던 전역에 한식당이 있었다. 대체로 한식당들은 평점도 높고 리뷰 만족도도 좋았다. 한국 식당 YORI(요리)는 구글 평점 4.5점에 리뷰가 무려 3000여 개에 달했다. 길거리 곳곳에 ‘김치’ ‘홍대’ ‘포차’ ‘비빔밥’ 등 한글 간판이 많았는데, 한식을 먹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이 한식 열풍을 실감 나게 했다. 

도착한 한식당은 운 좋게 크게 기다리지 않고 들어갔지만, 금방 줄이 생겼다. 이 한식당은 라볶이와 김치전, 잡채, 불고기 등을 대표 메뉴로 내걸었다. 식당 내부 풍경이 특별히 한국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영국 현지와 다른 한국 식당 특유의 분위기와 디테일이 돋보였다. 특히 한국과 영국 유명 인사들이 다녀간 사진이 붙어있다는 점에서 한식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국인과 현지인들이 함께 서빙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또 한국인이 많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홀은 영국인과 외국인들로 가득했다. 서툰 젓가락질로 잡채를 먹고, 떡볶이를 맛보고 있었다. 

영국 런던 리젠트 스트리트가 국기 유니언잭으로 장식돼 있다. ⓒAP 연합
영국 런던 리젠트 스트리트가 국기 유니언잭으로 장식돼 있다. ⓒAP 연합

핫도그·떡볶이 먹으려고 줄 서는 영국인들

이날 식당에서 만난 영국인 랄프 플레처는 한식이 입에 맞느냐는 질문에 “서양 음식은 재료 본연의 맛을 가지고 담백하게 요리한다. 하지만 한국 음식은 재료에 마술을 부린 듯 다양한 맛을 내는 것 같아 매우 흥미롭다. 눈과 입이 즐겁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울러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 현지인들 손에는 한인마트에서 장을 본 듯한 장바구니에 불닭볶음면 등 한국 식료품이 가득 담겨 있었다.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음식은 분식이다. 특히 한국식 핫도그는 기존 핫도그와 달리 소시지와 치즈를 반죽에 싸서 빵가루를 입힌 후 튀기는 방식으로 차별화해 현지인들의 인기 메뉴로 자리 잡았다. 아울러 떡볶이, 컵밥 같은 분식을 직접 먹은 후 현지인들이 남긴 SNS 후기들이 널리 공유되고 있으며, 다양한 웹사이트에서 한국 음식 레시피 등을 소개하고 있다. 

영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한식 열풍을 실감하고 있다. 12년째 영국 런던에 거주하고 있는 신륜희씨는 “10년 전만 해도 제대로 된 한식을 먹으려면, 외곽 한인타운에 가야만 했다. 한식 식재료도 구하기 어려워, 한국 음식을 해 먹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어딜 가든 한식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아시안 마트에서도 한식 재료를 취급해 비싸지 않은 가격에 집에서도 한국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 전과 후로 달라진 유럽 내 한류 

영국에 때아닌 한식 열풍이 불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현지인들과 요식업계 관계자들은 세계적으로 한국 콘텐츠들이 잇따라 흥행하면서 영국 현지에서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도가 급증했다고 입을 모았다. 대표적인 게 2021년 세계 83개국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사상 최대 히트작이 된 《오징어 게임》이다. 《오징어 게임》에 등장한 라면, 달고나, 고등어, 양은 도시락 등 한국 음식은 영국 현지에서 큰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영국 내에서 급증한 한국 식품 소비가 이를 방증한다. 영국의 대형마트 막스앤스펜서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 방영 이후 고추장과 한국식 BBQ 장(Peste) 등 한국 식자재 판매율이 200% 이상 상승했다. 아울러 끈적끈적한 한국식 닭다리(Sticky Korean-Style Chicken Thighs)와 한국식 즉석식품 매출은 2020년 대비 250%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당시 한국 음식에 대한 유튜브 조회 수가 급증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식 갈비, 한국식 치킨, 한국식 볶음밥에 대한 검색도 크게 증가했다. 

요즘처럼 세계적으로 한류 열풍이 불기 전부터 영국인들에게 한국 음식을 소개했던 유튜버 ‘영국남자’도 한식 유행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영국인 조쉬와 올리가 운영하는 영국남자는 현재 구독자 수 545만 명을 자랑하는 초대형 유튜브 채널이다. 2013년부터 영국남자 채널을 개설해 한국 음식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2014년 불닭볶음면 챌린지 영상은 조회 수 1800만 명을 돌파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영국 내 한식 인기에 대해 “코로나19로 외출이 어려워지면서 다양한 현지 유튜버의 SNS 채널을 통해 한식을 접하고 있다”면서 “특히 라면을 ‘먹방’하는 콘텐츠가 확산되면서 한국 라면 소비가 급증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특히 한식은 ‘건강한 음식’으로 인식되면서, 최근 웰빙 다이어트식으로도 인식되는 추세다”고 분석했다. 

사실 영국에서 한식의 인기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대단하다. 2021년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한국 음식을 상징하는 반찬, 먹방, 불고기, 동치미, 갈비, 잡채, 김밥, 삼겹살, 치맥 등 한국어에서 유래한 단어를 새롭게 추가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영국의 옥스퍼드대학 출판부에서 출간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어사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2013년까지만 해도 21만8600여 표제어 중 한국어 유래 단어는 10여 개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깜짝 놀랄 변화다. 이는 국뽕(국가와 필로폰의 합성어로 국가에 대한 자긍심에 과도하게 도취돼 있다는 의미)도 아니고 과장도 아니다. 

영국 런던 홀본역 인근에 있는 한식당 치맥 앞에서 현지인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 이택민 JS홀딩스 매니저
영국 런던 홀본역 인근에 있는 한식당 치맥 앞에서 현지인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이택민 JS홀딩스 매니저

한국 프랜차이즈 기업, 영국 진출 가속화 

날로 한식 인기가 커지면서, 한국 프랜차이즈 기업들의 영국 진출도 가속화하고 있다. 파리바게트, 명랑핫도그, 페리카나 등이다. 지난해 10월 런던 배터시 파워스테이션에 1호점을 오픈한 파리바게트는 성공적인 로컬화로 향후 공격적인 지점 확장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명랑핫도그(2개 지점), 페리카나 등도 영국에 진출해 글로벌 사업을 확대 중이다. 한국 유명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인 BBQ 또한 한류 인기에 힘입어 영국 시장 진출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특히 영국 전역에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JS홀딩스는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요식 기업 중 하나다. 김종순 JS홀딩스 대표는 2016년 처음으로 런던에 한식당 YORI(요리)를 오픈했고, 현재 12호점까지 확장했다. 런던뿐만 아니라 케임브리지, 브라이튼 등 영국 지방 도시에서도 인기 있는 레스토랑으로 자리 잡았다. 김종순 대표는 YORI의 성공 비결에 대해 “한식 메뉴는 다른 요리보다 레시피화가 까다롭지만, YORI는 어느 지점에 가도 똑같은 맛이 난다. 또 한국적인 서비스 방식이 영국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인터뷰 기사 참조) 

영국에서 한식이 통할 것이라는 생각은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미 중식과 일식 그리고 인도 음식 등이 대표적인 아시안 푸드로 자리 잡아서다. 영국 현지에서 한식 열풍이 남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영국은 유럽으로 가는 ‘테스트 마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런던에서 1시간 거리 안에 공항이 5개나 있을 정도로 영국은 세계적으로 유동인구가 많다. 특히 유럽인들이 영국으로 자주 여행을 오기 때문에 영국에서 인기를 얻은 음식은 전체 유럽으로 시장 확대를 노릴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국내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유럽 진출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테스트 마켓으로 런던을 선택한다. 

영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한식 열풍이 거세다. 일본 도쿄에 있는 신오쿠보 거리에 있는 한국 음식점은 일본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 음식점은 물론 한국 화장품, 과자류, 한국 소품, 한국 아이돌 노래까지 들을 수 있다. 베트남의 경우 코로나19 때 현지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식당들이 문을 닫고, 베트남 현지인들을 타깃으로 하는 한국 식당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 문화 저변이 급속도로 세계 문화권 중심으로 진입한 결과다. 특히 한식은 한국을 상징하는 킬러 콘텐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26개국 2만5000명을 대상으로 한국 문화 콘텐츠 이용 및 확산 수준에 대해 조사한 ‘2023년 해외 한류 실태조사’에 이 같은 내용이 잘 나타난다. 

조사 결과,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K팝(14.3%)에 이어 한식(13.2%)이었다. K콘텐츠의 인기와 잠재력을 보여주는 브랜드파워 지수는 58.8점으로 나타났는데, 음식이 66점을 기록하면서 가장 높았다. 아울러 한국 문화 콘텐츠 경험률은 음식(72.3%), 영화(67.7%), 음악(63.2%), 드라마(61.2%) 순이었다. 과거 삼성과 LG 같은 IT 제품·브랜드가 대표하던 한국의 이미지가 한식으로 채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상훈 창업통TV 대표는 “세계적으로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크게 유행하면서, 외국에 있는 한국 식당들도 많은 수혜를 보고 있다. 특히 SNS에 익숙한 신세대들이 한국 문화에 큰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음식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도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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