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련 노동자 이탈로 위협받는 ‘조선업 대국’ 지위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3 10:05
  • 호수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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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떠나는 핵심 인력 탓에 미래 경쟁력도 ‘기우뚱’
일본·싱가포르 외국인 노동자 확보 정책 눈여겨봐야

대한민국은 조선업 대국이다. 1970년 이래 조선업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자 대규모 일자리를 제공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2023년 대한민국의 조선업은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규모 수주 역시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조선업 관계자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배를 만들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경제활동인구 감소에 따른 전체 노동력 부족이 본격화한 것도 이유지만, 기존 노동자들이 조선소를 떠나는 만큼 새로 유입되는 노동자들이 턱없이 부족한 게 더 큰 원인으로 꼽힌다.

ⓒ연합뉴스
2022년 9월26일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서문으로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업 침체로 임금 수준 정체가 원인

과거 조선업은 힘들고 위험하지만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업종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어렵지 않게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 지속된 조선업 침체로 조선업의 임금 수준이 정체됐다. 현재는 타 업종에 비해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아지면서 노동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지방에 위치할 수밖에 없는 조선업 특성으로 인해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 청년 노동력 확보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조선업은 업종 특성상 작업 공정 자동화와 표준화에 한계가 있다. 노동집약적이고 숙련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업종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력 부족과 이탈은 대한민국 조선업의 강점으로 꼽히던 기술력을 취약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업종 자체의 존속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수주 산업 특성상 필요한 인력 규모 변화에 따른 어려움을 덜기 위해 채용하기 시작한 조선업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상시적 노동력 제공자로 변화했다. 합법·비합법을 합할 경우 조선업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50%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조선업의 존속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변화한 것이다.

정부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2022년부터 조선업의 노동력 확보를 위한 대책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핵심은 조선업 분야에 종사할 수 있는 더 많은 외국인을 빠르게 국내로 들여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기존 조선업에 종사하고 있는 숙련 외국인 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선업 그리고 조선소가 소재한 지역에 정착시킬 것인가이다. 비숙련 단순직종에 종사할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외국인 노동자 상당수가 용접을 비롯한 핵심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이 한 단계 더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하고 지속적으로 조선업 및 연관 업종에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조선업의 미래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핵심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고민은 과거 조선업 세계 1위 국가였던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조선업은 현재 한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으로 하락했다. 기술적인 측면의 경쟁력 약화라기보다는 인건비 등 비용 부문에서 약점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섬나라로서 조선업을 포기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지방에서 대규모 일자리를 공급하는 조선 산업은 지방 소멸에 직면한 일본으로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산업이기도 하다. 일본 역시 조선업의 외국인 고용 확대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1989년 6월 제6차 고용대책기본계획부터 외국인 노동자 관련 정책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1990년 남미 일본계 외국인에게 3년간 정주 체류 자격을 발급하기 시작했고, 1993년 기능연수생과 실습생 제도를 도입했다. 명목상으로는 선진국인 일본이 개도국 노동자들을 교육시켜 본국으로 귀환시킴으로써 개도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중소기업 노동력 확보를 위한 편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선업을 포함한 제조업, 건설업 그리고 농어업을 대상으로 한 기능실습제도는 정부 간 송출협정을 체결한 14개국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기능실습생의 경우 체류기간이 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증가하는 외국인 노동자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일본 정부는 2018년 12월 입국관리법 개정을 통해 2019년 4월부터 특정기능제도를 신설, 조선업을 포함한 14개 업종에 대해 비숙련 단순노동자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1호와 2호로 구분되는 특정기능제도는 일정 수준의 일본어 능력시험과 해당 분야의 기능시험에 합격하면 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특징적인 것은 일정 기간을 채운 2호 대상자들이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1호로 전환해 준다는 점이다. 이들은 체류기간 제한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가족 동반도 가능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일본에서 거주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처음에 기능실습생으로 입국해 3년을 지낸 후 특정기능 1호로 전환해 다시 5년이 경과해야 한다. 8년이라는 기간을 거쳐야 가족과 지낼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안정적으로 거주하면서 기술과 노하우 축적을 통해 본격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일본 조선업체 입장에서 보면 용접, 도장, 철공, 마무리 작업, 기계가공, 전기기기 조립 등 6개 직종에서 최대 1만3000명의 특정기능 1호 인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 가운데 숙련도가 가장 요구되는 용접의 경우 특정기능 2호 직종으로 지정돼 있어 장기적으로 인력 수급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선업 쇠퇴는 국가 안보와도 직결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싱가포르는 조선업 강국이다. 일반 선박보다는 해양플랜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싱가포르 역시 외국인 노동자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는 인접한 말레이시아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우수한 기능 인력이 많은 한국과 대만 등의 인력에 대해 좋은 조건을 제공하는 지역 간 차등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조선업의 경우 외국인 노동자를 14~26년간 고용할 수 있게 하면서 충분한 노하우 축적·활용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특히 한국·대만 출신에 대해서는 고용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도록 함으로써 안정적인 장기근무를 지원하고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급여를 받는 자국 노동자 숫자에 비례해 외국인 노동자 고용 상한선을 설정함으로써 외국인 노동자 확보와 국내 노동자 보호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기도 하다.

세계화 쇠퇴와 가치동맹 부상에 따라 우리나라 조선업의 중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해상운송의 기반이 되는 선박 제조를 잠재적 경쟁 세력인 중국에 의존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군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충분한 건조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업계가 직면하고 있는 노동력 부족 해결은 단순히 특정 업종의 지원을 넘어 가치동맹 강화 그리고 국가 안보로 이어지는 중요한 핵심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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