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국은 정부 부채 한도를 경직적으로 운용할까
  • 배현기 웰스가이드 대표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0 12:05
  • 호수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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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이슈 불거질 때마다 세계경제도 동반 불안
합의돼도 채권 금리·주가·달러 가치 움직임 ‘제각각’ 전망

미국 정부의 부채 한도가 시장과 경제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5월16일 기준 부채 잔액을 31조4600억 달러로 공시하고 있다. 의회가 2021년 12월 설정한 한도인 31조4000억 달러를 지난 1월 이미 초과한 상태다. 현재 특별조치로 연명하고 있으며, 6월(정부) 또는 7~9월(CBO) 이전에 합의가 없으면, 채무불이행이나 정부 폐쇄가 불가피하다. 어떻게 될 것인가.

ⓒEPA 연합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5월11일 일본 니가타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미국 부채 한도 상향 협상 실패 시 연방정부가 디폴트 (채무불이행)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PA 연합

1차 세계대전 이래로 100차례 한도 확대

먼저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 한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미국은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며 전비 조달을 위한 입법이 필요했는데, 이때 부채 한도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채무 수준을 제한하지 않을 경우 과다 차입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을 야기하고 재정 건전성을 위협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정부 재정의 책임성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의회가 설정한 한도는 지켜지지 않았고, 도입 이후 최근까지 모두 100차례 이상 한도가 확대되거나 적용이 유예되곤 했다. 정부 수입은 일정치 않았던 반면, 지출이 지속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부채가 누적됐기 때문이다. 복지 지출 외에도 예상치 못한 상황들, 즉 전쟁이나 경제위기, 금융위기, 팬데믹 등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 생겨났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한도가 수차례 증액됐던 경우와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도 적용이 유예됐던 것이 정부와 의회 합의에 의해 적절한 법적 조치를 취했던 대표적인 사례다. 만약 증액이나 유예 조치가 없었다면, 정부는 추가 자금을 빌릴 수 없었을 것이며 채무불이행이나 정부 폐쇄 같은 극단적 상황에 직면했을 것이다.

부채 한도는 GDP 대비 일정 비율과 같은 상대치가 아니라 일정한 금액이라는 절대치로 설정되므로 언제나 정부의 운신을 제약할 수밖에 없다. 정부를 견제하는 의회로서는 확실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셈이다. 특히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중시하는 민주당이 집권하고, 감세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한 경우, 그 대립과 갈등이 극대화된다. 가장 심했던 것이 2011년 미국 정부의 신용등급 강등 사례다. 당시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부 수반이었고, 하원은 공화당이, 상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이었다. 부채 한도는 14조3000억 달러로 그해 봄부터 협상이 시작됐는데, 2010년 중간선거를 통해 하원 다수당을 되찾은 공화당은 부채 한도 이슈를 정부 지출과 부채 감축을 위한 레버리지로 활용하고자 했다.

민주당과 백악관은 이에 반대했다. 지출 감축과 수입 증대를 포함한 균형적 해결을 주장했다. 협상은 수개월간 진전이 없었으며 부채 한도 이슈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정치의 문제점과 불확실성은 미국과 세계경제, 그리고 시장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8월1일 데드라인 극적 합의에도 S&P에 의한 초유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이어졌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자. 합의 내용은 부채 한도 2조1000억 달러 증액과 정부 지출 2조4000억 달러 감축이었는데, S&P는 이로 인해 재정 건전성이 개선되기 어렵고 정치 리스크가 크다는 점을 강등 이유로 들었다. 반면, 무디스와 피치는 기존 등급(AAA)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미국 국채와 주식, 달러 가치에는 악재였는데 당시 시장 반응은 어땠을까.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1월말 3.65%를 단기 정점으로 합의 이전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강등 이후 그해 말 1.87%까지 1.78%포인트나 떨어졌다. S&P500지수는 4월25일 1364포인트를 단기 정점으로 8월15일 1124포인트까지 17.6% 하락했다. 달러 가치(인덱스)는 1월3일 81을 단기 정점으로 4월25일 73까지 하락했다가 그해 말 80을 회복했다.

미국 주가만 부정적 반응을 보였을 뿐, 채권 금리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달러 가치도 별 반응이 없었거나 반대로 움직였다. 왜 그랬을까.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시기로 제로금리 외에 대규모 양적완화(QE)로 인해 금융시장, 특히 채권시장에 대규모 유동성이 공급됐기 때문이다. 미국 국채를 대체할 상품도 없었다. 

이번에는 어떨까.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FY2022 기준 정부 부채(내부 보유 제외)는 GDP 대비 107%이고, 정부 지출 중 이자 비용은 13% 비중을 차지한다. 의회예산국(CBO)은 부채비율이 2050년 195%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자 비용이 증가하고 인플레이션과 차입 비용 상승의 악순환을 가져오며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재정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봤다. 이런 관점에서는 단기적으로 부채 한도를 확대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정부 수입 증대 및 지출 감축 방안을 만들고, 이를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의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공화당은 한도 확대에 합의하는 대신 지출 감축을 요구하는 반면, 민주당과 백악관은 어떠한 조건도 없이 한도 확대에 동의해줄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일종의 교착상태다.

 

부채 한도가 정치 리스크로 확대

지금은 내년 11월 대선과 양원 동시 선거를 앞두고 미국 정치의 진영 간 대립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때다. 그만큼 부채 한도를 둘러싼 정치 리스크가 경제와 시장의 불안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2011년과 달리 정부 정책은 확장이 아니고 통화정책은 초긴축이다. 언제 어떻게든 합의에 이르겠지만 채권 금리, 주가, 달러 가치의 움직임은 다를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근본적 의문에 직면하게 된다. 왜 미국은 정부의 부채 한도를 경직적으로 운용해 주기적으로 정치, 경제, 시장의 불안을 야기할까. 미국에서는 ‘연방정부의 모든 채무는 준수돼야 한다’는 수정헌법 제14조를 적용해 채무불이행을 막아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의회 승인이 없어도 된다는 해석이다.

대다수 국가는 이런 한도가 없으며, 한도가 있는 덴마크의 경우 매우 높은 수준이라 문제가 되지 않는다. 폴란드는 부채 금액이 아니라 GDP 대비 일정 비율(60%) 이내로 설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 비율을 법으로 정하고 지키도록 하는 재정건전화법을 추진한 적이 있다.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법이 들어오면 정치 리스크도 그만큼 커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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