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몰렸던 에르도안은 어떻게 기사회생했나
  • 김종일 아신대 중동연구원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0 10:05
  • 호수 175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튀르키예의 국가적 숙원인 ‘EU 가입 성공’ 후광 누려
‘PKK 옹호 발언’ 등 야권 후보의 실책 덕도

5월14일 치러진 튀르키예공화국(터키) 대통령선거는 올해 치러지는 지구촌 모든 선거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선거로 평가될 만큼 큰 관심을 끌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대통령이 계속 집권하느냐, 물러나느냐 여부가 미국과 러시아, 유럽연합(EU) 등 세계 역학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탓이다. 결과적으로는 집권여당의 에르도안 대통령(49.4%)이나 야권 연합후보인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44.9%) 모두 과반 득표를 달성하지 못함으로써 5월28일 2차 결선투표를 실시하게 됐다.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5월14일 대통령 관저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5월14일 대통령 관저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

에르도안이 불리할 것이란 예상 뒤집어

이번 대선은 선거일 당일까지 누가 당선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만약 에르도안이 이길 경우, 개헌안에 따라 그는 2033년까지 총 30년 장기 집권의 길이 열린다. 사실 이번 대선은 현 에르도안 대통령에게는 매우 불리한 선거였다. 그동안 에르도안 통치 시절의 튀르키예는 이미 국내로 유입된 시리아 난민들로 국가경제가 흔들릴 대로 흔들려왔다. 돈을 가지고 들어온 난민들은 거침없이 부동산을 사들이면서 악성 인플레이션을 만들었다. 아무것도 없이 오직 생명만 부지하며 간신히 들어온 난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각종 범죄에 연루되면서 많은 사회문제를 만들어냈다. 난민 문제는 가뜩이나 물가고로 지쳐 있던 튀르키예 국민에게 극도의 불안감을 더해 주었다.

여기에다 최근 튀르키예 동남부 지역에서 발생한 사상 최대 강진으로 국민의 신망을 잃어버릴 대로 잃어버린 에르도안은 최근 선거유세 도중 갑자기 쓰러지면서 건강 이상설까지 나왔다. 그러나 5·14 대선 결과를 보면, 뜻밖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의 선전과 클르츠다로을루 후보의 패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에르도안이 각종 악재를 딛고 선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다음의 두 가지 요인이 자리한다.  

첫째는 2003년 당시 출범한 새로운 정당 정의발전당(AKP)에 거는 국민적 기대 때문이다. 에르도안이 설립한 AKP는 역대 다른 집권당처럼 쿠데타나 사회적 소요 같은 상황에서 태동한 게 아니었다. 또한 전통과 국가적 이념을 지키기 위해 태동한 당도 아니었다. 단지 국내 경제의 악순환 속에서 기존 정당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더는 선택할 정당이 남아있지 않다고 여겨졌을 때 어부지리로 집권한 당이었다. 물론 기존 의원들에 의해 결성되었지만, 분명 신당이었고 신당 출현이라는 국민의 기대가 실려 있었다.

또한 에르도안의 정치적 지지 세력은 당시 튀르키예에서 보수 이슬람에 뿌리를 두었던 중산층 무역상인들이었다. 에르도안은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서서히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으며, 세속주의 자본주의자들이 세워놓았던 기존 제도를 인정하는 정책 이미지를 보임으로써 상당히 넓은 지지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 그의 장기 집권의 한 원인이 되었다.

둘째는 공화국 초기부터 국가적 숙원이었던 EU 가입을 향한 에르도안의 외교적 성공이다. 튀르키예는 1999년 헬싱키 정상회담 이후 EU 가입에 속도가 붙었으며, 이 과정에서 그때까지 어느 집권당도 하지 못했던 EU 가입 성공으로 장기 집권을 사실상 보장받은 셈이 되었다. 사실 이 부분도 에르도안의 외교적 성공이라기보다는 그 전까지 공들여왔던 다른 집권당이 보인 노력의 결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게 중론이다. 에르도안으로서는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행운을 얻게 된 것이다.

튀르키예 경제는 에르도안 집권 이전부터 이미 악순환을 거듭해 왔다. 이로 인한 당시의 국민적 실망과 새로운 정당에 대한 갈망이 에르도안을 집권하게 해준 것이다. 그러므로 에르도안의 등장과 집권은 이런 국민적 실망과 분노, 새로운 당에 대한 국민적 갈망, 그리고 튀르키예 경제의 돌파구로 인식됐던 EU 가입이란 희망이 모두 한데 어우러지면서 시작된 것이다.

이후 에르도안은 강한 우익 이슬람주의 성향으로 그의 본색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20년 장기 집권은 에르도안에게 거는 국민적 기대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AKP를 향한 이런 국민적 지지를 업고 화폐개혁, 환율 조정, 악성 인플레이션 등의 원만한 조율을 통해 튀르키예 경제를 이끌어갔던 에르도안의 리더십이었지만, 장기 집권 과정에서 어느덧 국민의 반감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에르도안 집권 당시, 이스탄불 게지 공원에서 수많은 국민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시위나 그 외에 크고 작은 반정부 시위를 통해서도 보았듯이, 아직도 많은 국민은 공화국 건립자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튀르키예의 국부로 칭송받는 초대 대통령)의 세속주의 이념이 근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현재 에르도안이 밀고 나가고 있는 ‘탈(脫)세속주의’에 반대하는 여론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클르츠다로을루, 무능한 지도자란 반감 있어

이번 대선에서의 에르도안의 선전은 앞에서 언급한 부정적 민심에도, 늦게나마 이번 지진 피해 주민들을 향한 집중적 지원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더 결정적인 건 야권 후보의 도움 덕분이었다. 클르츠다로을루 후보의 쿠르드반군(PKK) 옹호 발언 등이 부각되면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튀르키예 국민을 다시 에르도안 쪽으로 돌아서게 한 것이다.

야권 연합후보인 클르츠다로을루는 오랜 기간 야당 당수를 지냈지만 수많은 선거를 승리로 이끌지 못한 무능한 지도자라는 국민적 반감이 있었다. 여기에 더해 그는 서구 지향의 세속주의와 민족주의 이념을 저버리고, PKK를 지지하는 녹좌당(YSP) 같은 당을 옹호하며 자신의 지지 세력으로 끌어들인 것이 결정적 패착이었다. 이에 따라 야당의 연합전선은 무너졌고, 또 다른 야당 연합이 만들어지면서 야당 표가 분산돼 버렸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만약 많은 대중의 지지를 받았던 만수르 야바쉬 앙카라 시장이 클르츠다로을루 대신에 야권 대통령 후보로 나왔더라면, 야권이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왜냐하면 야바쉬는 한때 튀르키예군을 이끌었던 합참의장의 아들이고, 아타튀르크의 정신을 가장 뚜렷하게 계승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2차 결선투표는 에르도안 대통령과 클르츠다로을루 후보의 대결로 좁혀졌다. 5·28 대선 결과에 따라 에르도안이 집권을 연장할 경우 지금의 튀르키예에서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만약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그동안 에르도안이 펼쳐온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기회주의처럼 보이는 균형 외교에서 친미·친서구 외교로 방향이 바뀔 것이다. 물론 클르츠다로을루가 승리한다면 튀르키예공화국은 원래의 세속주의로 복귀할 것이 예상된다. 다만 한 가지, 누가 정권을 잡든지 튀르키예와 EU 간 ‘밀당’은 계속될 전망이다. 

김종일 아신대 중동연구원 교수
김종일 아신대 중동연구원 교수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