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없는 진보, 잘못해도 부끄러움 몰라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0 16:05
  • 호수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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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할 줄 모르는 정치인들의 후안무치, 지지자들까지 감염시키며 우리 사회를 야수적 싸움터로 만들어

‘코인(가상화폐) 거래’ 논란의 당사자인 김남국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중요한 시기에 당에 그 어떤 피해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물의를 빚어 당을 떠나는 정치인의 목소리는 여전히 당당했다. “허위사실에 기반한 언론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법적 책임을 철저히 묻고, 단호히 맞서겠다”는 것이다. 평소 구멍 난 운동화를 신는다며 ‘짠돌이’를 자처했던 정치인이 수십억원대 코인 거래를, 그것도 국회 회의 시간에 했던 사실은 국민에게 위선적 행태에 대한 배신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그러나 김 의원은 국민의 그런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위법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마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인사청문회 때 “위법은 없었다”며 국민 정서를 외면한 입장을 고수했던 것과 닮은꼴이었다. 

자신의 코인 거래를 둘러싼 논란을 “정치적 공세이자 이중잣대”라고 규정하던 김 의원이었다. 민주당을 떠났다고는 하지만 그가 잘못을 뉘우쳤기에 탈당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당의 진상조사 작업과 징계를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린 그의 탈당은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꼬리 자르기’ 성격이 강해 보인다. 무슨 일만 생기면 일단 탈당해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온 민주당 의원들의 탈당 메뉴는 더 이상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의례적 이벤트가 되었을 뿐이다. 자신을 향한 논란에 반발해 오다가 당 안팎의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자 뒤늦게야 사과하고 탈당한 김 의원의 행동에서 성찰의 진정성을 읽기는 어렵다.

민주당 지도부에서는 김 의원을 옹호하는 궤변이 이어졌다. “김 의원이 김건희 여사 같은 주가조작 의혹을 받고 있나”(정청래 최고위원), “검찰이 유출했다면 엄청난 범죄가 될 것”(서영교 최고위원)이라고 했다. 손혜원 전 의원은 한술 더 떠서 자신이 김남국 의원을 살리겠다고 나섰다. “정직하고 정의롭고, 그런 친구를 국회에서 다시 만나기 어렵다”고 옹호하며 “김 의원은 내가 살린다, 총선을 기대해 달라”고 했다. 이쯤 되면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다.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송영길 전 대표가 5월2일 서울중앙지검에 자진 출석했으나 검찰 출입을 거부당한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옳고 그름에 대한 상식과 가치가 전복되는 사태

‘김남국 코인’ 덕분에 가리워진 ‘송영길 캠프 돈봉투’ 사건도 있었다. 2021년 전당대회 때 송영길 후보 캠프에서 돈봉투를 살포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은 확산되었다. 특히 당시 송 후보가 돈봉투 살포를 인지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송영길 전 대표의 관련 여부에 관심이 향하게 되었다. 그러나 송 전 대표는 프랑스에서 뒤늦게 사과하고 귀국하면서도 돈봉투 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끝내 함구했다.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지만 돈봉투는 몰랐다는 기조의 대응인 셈인데, 그것이 성찰의 진정성을 가진 태도였는지는 향후 수사를 통해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정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과거의 사건들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들도 이어진다.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이 제작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7월 개봉된다고 한다. 제작위원회 측이 공개한 영화 포스터를 보면 ‘세상을 변론했던 사람. 하지만 그는 떠났고, 이제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를 변호하려 한다’고 돼있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을 부인하고 그를 옹호하는 내용의 것으로 판단된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와 법원의 판결이 나왔고, 무엇보다 피해자로부터 고소당하자 곧바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의미에 대한 상식적 판단이 내려진 사안이다. 그럼에도 “1차 가해에 대한 여러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임을 내세우며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다시 한번 고통스럽게 만드는 영화의 상영은 매우 부적절하다. 

이미 피해자와 관련된 다른 사건의 판결문에 박 전 시장의 차마 글로 옮기기조차 민망한 구체적 행위들이 적시되어 있다. 성추행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 박 전 시장이 존경받는 인물로 자리했던 것은 사실이고, 특정 시기의 성추행 때문에 그의 모든 삶이 부정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존경받던 인물이라고 해서 성추행의 구체적 내용이 드러나도 그럴 리 없다며 막무가내로 부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은 태도다. 그런 강변의 바탕에는 ‘우리 편 사람들은 결코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는 진영의 이분법적 사고가 자리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런 와중에 알려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의 행보 또한 이채롭다. 지난 2월 김어준씨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얼굴을 공개하고 자신은 떳떳하다고 주장한 조씨는 그 후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지자들과의 소통을 늘려왔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5월12일에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유튜브 세계 첫 발걸음, 두둥... 내딛어봅니다. 쪼민의 영상일기’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물론 정치적인 내용의 것은 아니고 “영상일기 같은 거를 남기면 나중에 봤을 때 좋지 않을까, 진짜 내가 소소하게 행복함을 느끼는 콘텐츠를 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입시비리 수혜자로서의 반성이나 자숙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아직 젊은 나이니까 새로운 삶의 길을 찾기를 바라던 마음은 너무도 당당한 젊은이의 모습 앞에서 공연한 연민이었다는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알다시피 조씨의 모친 정경심 전 교수는 자녀 입시비리 등의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 후 조씨는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취소 처분을 받았고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상식을 지키려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고개를 떨구고 근신하는 것이 우리 공동체에 대한 예의다. 오죽하면 당사자의 부인에도 ‘조민 총선 출마론’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겠는가. 만에 하나 그런 광경이 벌어진다면 우리 사회는 옳고 그름에 대한 상식과 가치가 전복되는 사태에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 제공

팬덤들의 맹목적인 지지 속 역사에 대한 고민 없어

‘윤석열 정부의 집권세력이 저 모양인데, 그래도 우리가 낫지 않냐’는 우월적 심리가 다시 발동해 이런 모습들이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진보적 가치를 가진 세력이 ‘구관이 명관’이라며 명예를 되찾고 시대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부활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는 판단들이 공유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진보를 표방했던 진영이 민심 이반으로 정권을 내주게 된 원인에 대한 성찰 없이, 저들이 잘못하니까 우리들이 다시 나서야 한다는 사고에 그친다면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보수가 잘못한다고 ‘그때 그 사람들’이 면죄부를 받고 나서는 것은 답이 아니다. 이는 보수와 진보 두 진영이 돌아가면서 권력을 주고받는 악순환의 무한 연장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니 과거 혹은 현재의 잘못에 대한 뼈아픈 성찰의 과정 없이 팬덤들의 맹목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진행되는 이 모든 광경에서 역사에 대한 고민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강준만 교수는 “보통 사람의 도덕감정을 고수하면서 정치를 한다는 건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후안무치가 시대정신의 반열에 올랐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성찰할 줄 모르는 정치인들의 후안무치가 지지자들까지 감염시키며 우리 사회를 부끄러움을 모르는 야수적 싸움터로 만들고 있다. 세상을 더 나은 길로 이끌 수 있는 것은 몸과 마음을 낮춰 자신을 겸손하게 돌아보는 미덕을 가진 사람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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