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의 위기, 팬덤이 구원투수 될 수 있을까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0 15:05
  • 호수 175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극장 찾는 관객 수 늘어도 팬데믹 이전의 54% 수준…한국 영화와 극장의 위기, 어떻게 봐야 할까

엔데믹이 도래했지만 극장가엔 여전히 위기설이 나돈다. 관객 수는 분명 늘었지만 과거만큼의 회복세를 보여주진 못하고 있고, 그나마 성과들도 대부분 외화들이 가져감으로써 한국 영화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위기는 무얼 말해 주는 걸까. 

박서준, 아이유와 함께 《극한직업》으로 16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이병헌 감독까지, 영화 《드림》에 대한 기대감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지금껏 100만 관객을 가까스로 넘긴 채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부진은 《드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화를 배경으로 장항준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농구 영화 《리바운드》 역시 69만 관객에 머물렀다. 그나마 상반기에 체면치레를 한 한국 영화로는 170만 관객을 동원한 《교섭》이 거의 유일하다. 조진웅에 이성민까지 열연한 《대외비》 같은 작품도 75만 관객에 머무르는 아쉬운 결과를 냈다. 원인은 어디에 있었을까. 

코로나19 여파를 먼저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비대면 시기를 겪으며 대안처럼 등장한 OTT가 영화 소비의 대안으로 자리했고 그래서 엔데믹으로 어느 정도 관객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이 소비 패턴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다. 5월15일 영화진흥위원회의 ‘4월 한국 영화산업 결산 발표’ 자료에 의하면, 지난달 전체 극장 관객 수는 697만 명으로 작년 4월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러한 증가세도 팬데믹 이전 관객 수의 54%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만큼 극장을 찾는 관객이 전반적으로 줄었다는 이야기다. 

영화 《드림》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드림》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부진은 이른바 창고영화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 영화의 침체가 코로나19 여파만을 그 원인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늘어난 관객은 대부분 한국 영화보다 외화를 찾은 관객들이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460만, 《스즈메의 문단속》이 530만 관객을 끌어모았고, 비교적 최근 개봉돼 대중적 성공을 거두고 있는 작품들도 《존윅4》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같은 외화들이었다. 즉 이건 단지 코로나19 여파만이 아니라,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그만한 매력을 선사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지난해 5월 《범죄도시2》가 개봉해 1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이제 엔데믹 분위기에 한국 영화가 기지개를 켤 것이라고 낙관하던 분위기는 약 1년 만에 수그러들었다. 그래서 5월31일 개봉하는 《범죄도시3》가 침체된 한국 영화를 구원할 작품으로 얘기되는 상황이 어딘가 엇나간 느낌이다. 시즌2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 작품 하나가 성공한다고 해서 한국 영화 전체가 되살아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보는 게 우선일 듯싶다. 

영화 《범죄도시3》 포스터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영화 《범죄도시3》 포스터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항간에는 최근의 한국 영화 부진이 이른바 ‘창고영화’가 엔데믹 분위기 속에 대거 쏟아져 나와 생기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들이 개봉하지 못한 채 쌓여 있다가 이제 개봉했는데 시기를 놓쳐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창고영화가 90편에 이른다는 진위를 알 수 없는 기사들도 나오고 있고, 이러한 위기 상황을 빌미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영화계의 이야기도 솔솔 피어나고 있다. 

물론 실제로 개봉 시기가 한참 늦어진 《비상선언》이나 《멍뭉이》 《킬링 로맨스》 같은 작품들이 있고, 실제로 늦춰진 개봉 시기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 면도 분명히 있지만 그것보다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나 대중성 부족 또한 원인의 하나로 빼놓을 수는 없다. 확실히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마음은 과거와 달라졌다. 과거에는 영화는 당연히 극장이라는 등식이 존재했고, 그래서 굉장한 대중성을 가진 작품이 아니어도 극장에 걸리기만 하면 어느 정도 관객을 동원한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사라졌다. 이제 관객들은 극장에 가기 전에 생각한다. 과연 이 영화는 꼭 극장에서 봐야 할 만한 작품인가 아닌가. 

영화 《킬링 로맨스》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킬링 로맨스》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러니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고 만드는 작품이라면 이렇게 달라진 관객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조건들을 갖춰야 하는 게 맞다. 여기에 관객이 줄면서 올라버린 영화 티켓 가격은 더더욱 관객들을 깐깐하게 만들었다. 작품성을 떠나 그 돈을 내고 극장을 찾아 시간을 보낼 만한 가치가 있어야 주머니를 연다는 것이다. 이른바 창고영화들은 이렇게 관객들이 변화하기 이전에 제작됐다는 점에서 불리한 점이 분명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러한 달라진 관객의 소비 방식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어낸 작품이라면 바로 극장에 걸린다 해도 성과를 내긴 어려울 것이다. 

4월9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 설치돼 있는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홍보물 ⓒ연합뉴스
4월9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 설치돼 있는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홍보물 ⓒ연합뉴스

올 상반기 흥행한 외화들의 키워드는 ‘팬덤’ 

그렇다면 달라진 관객들을 극장까지 오게 하는 영화들은 도대체 뭘까. 그 단서들은 이 시기에 선전한 외화들에서 일면을 찾을 수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 《존윅4》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등 올 상반기에 우리네 관객들이 찾은 외화들을 보면 하나의 키워드가 포착된다. 그건 바로 ‘팬덤’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9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만화 《슬램덩크》를 추억하는 중장년 세대를 주력 팬덤으로 하고 젊은 세대들까지 그 명작의 즐거움에 빠뜨리면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전체 관객 수는 줄었지만 ‘N차 관람’이 흥행을 이끌었는데 거기에는 바로 팬덤이 지대한 힘을 발휘했다. 《스즈메의 문단속》도 마찬가지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작품을 더 이상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그 자리를 차지한 재패니메이션 스타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 팬덤이 그 흥행의 중심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시즌4까지 제작된 《존윅4》나 그간의 부진의 늪을 벗어나게 해줄 마블의 구원작으로 떠올랐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모두 팬덤을 가진 작품들이었고, 중장년부터 Z세대까지 아케이드 게임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역시 팬덤의 힘이 흥행을 이끈 작품이었다. 이들 영화는 충분히 극장에서 즐길 만한 완성도와 볼거리를 갖춘 작품이면서 동시에 팬덤이 이미 존재했던 작품들이다. 이것은 거꾸로 팬심을 건드릴 정도의 강력한 유인을 가진 작품이 아니면 극장을 찾지 않게 된 관객들의 변화를 말해 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극장만이 영화가 갈 유일한 선택지이던 시절은 지났다. 따라서 OTT에 어울리는 작품들이라면 그것 또한 영화가 갈 수 있는 길이다. 다만 극장을 여전히 ‘영화의 전당’으로 여기는 현실에서 영화들 또한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변화를 읽어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한국 영화는 적어도 흥행 면에서는 헛발질을 할 우려가 있다. 또한 꼭 극장이어야 한다는 선입견도 바뀌어야 하고, 극장이어야 한다면 멀티플렉스가 아닌 시네마테크 같은 새로운 공간들 또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극장은 극장 나름대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영화만이 아니라 팬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서, 또 강연장이나 플레이존 같은 이벤트 공간으로서도 활용을 생각하고 있다. 팬데믹 전후로 바뀐 극장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영화에도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꼭 극장이어야 한다면 거기에 맞는 요건들을 제시해야 하고, 그게 아니라면 꼭 극장일 필요는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