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바이든과 트럼프의 운명 ‘총기 규제’가 가른다
  • 김현 뉴스1 워싱턴 특파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1 08:05
  • 호수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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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총기 난사’ 급증에 바이든, ‘총기 규제 강화’ 대선 공약으로
트럼프 “바이든의 총기와의 전쟁 끝내겠다” 맞불

최근 미국 전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잇따르면서 해묵은 총기 규제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 등 민주당은 총기 규제 강화를 주장하고 나섰고,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주(州)에선 속속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들을 도입하고 있다. 반면 공화당은 총기 사건들은 일부 정신질환자 및 범죄자의 문제에 국한된다며 수정헌법 2조에 규정된 총기 소유와 휴대의 권리를 강조하고 있다. 재점화된 총기 규제 논쟁은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간 뜨거운 쟁점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잇따른 총기 사고에 대해 “제발 뭐라도 좀 하라”고 의회에 총기 규제를 강하게 압박했다. ⓒEPA 연합

하루 100명 이상 총기 사고로 목숨 잃어

최근 미국에선 다수의 어린이까지 숨지는 총기 난사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충격을 더하고 있다. 특히 5월6일 텍사스주 댈러스 인근 도시 앨런의 한 아웃렛 쇼핑몰에서 30대 남성이 총기를 난사해 8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는데, 이 중에는 단란한 한인 30대 부부의 가족 3명이 포함돼 미 교포 사회는 물론 한국에도 큰 충격을 던진 바 있다. 

5월16일(현지시간) 비영리단체 ‘총기폭력아카이브(GVA)’에 따르면 올해 1월1일부터 이날까지 미국에서 벌어진 4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총기 난사 사건은 무려 225건이었다. 또한 총기로 인해 사망한 인원은 1만5833명이었다. 하루에 100명 이상이 총기 관련 사건으로 목숨을 잃고 있는 셈이다. 사망자 중 98명이 11세 이하 어린이였고, 12~17세 청소년 사망자도 566명에 달했다. 

미국에서 총기로 인한 사망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GVA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미국 내 총기 관련 사망자는 3만9605명이었는데, 2020년부터는 매년 4만 명(2020년 4만3738명, 2021년 4만5135명, 2022년 4만4357명) 넘게 사망하고 있다. 총기 난사 사건 역시 증가 추세다. 총기 난사 사건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200~400건대를 기록하다가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2020년 이후 600건대로 폭증했다. 2020년 610건, 2021년 690건, 2022년 646건 등이다. 

국제 무기 조사기관인 ‘스몰암스서베이(Small Arms Survey)’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미국에는 전 세계의 약 40%인 3억9330만 정의 총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은 인구(3억3190만 명)보다 민간인 소유 총기가 더 많은 유일한 국가”라고 지적했다. 당국에 등록되지 않은 총기까지 고려하면 실제 훨씬 많은 총기가 유통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미국의 총기 구매가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미국에선 2280만 정의 총기가 새로 팔렸다. 이는 1년 전인 2019년에 비해 65%나 증가한 수치다. 조쉬 호비츠 ‘존스홉킨스 총기폭력 해결센터’ 공동 책임자는 최근 BBC와의 인터뷰에서 총기 판매 증가가 “특히 불확실한 시기에 총이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준다는 생각과 연관이 있다”며, 공공장소에서 총기 사고가 증가하면서 사람들은 더욱 총기를 소지하고 싶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총기 소유 증가와 함께 총기 관련 사고와 희생자 발생이 지속되고 있지만 총기 규제를 놓고 정치권은 물론 국민 여론도 양분돼 있다. 4월24일 보수 성향인 폭스뉴스가 미국 성인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과 공화당 지지층의 응답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민주당 지지층의 84%가 ‘공격용 무기 금지’를 주장한 반면, 공화당 지지층에선 36%만이 이에 동의했다. 공화당 지지층의 61%는 ‘더 많은 시민의 총기 보유’를 지지한 반면, 민주당 지지층에선 해당 응답 비율이 27%에 그쳤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4월14일(현지시간) 미국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전미총기협회 연례 총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

전미총기협회, 의원들 6등급 나눠 로비 펼쳐

미 정치권은 총기 규제를 놓고 해묵은 논쟁을 지속하고 있다. 백악관은 총기 규제법 효력을 강화하기 위한 13개 조치를 발표했다. 그중 하나로 조만간 주의원과 주지사들에게 21세 미만 총기 구매자의 신원을 더 촘촘히 확인하도록 하는 법 제정을 촉구할 계획이다. 그러나 하원 다수당을 점하고 있는 공화당은 총기 소유·휴대 권리를 내세워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추가적인 총기 규제가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공화당은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State)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는 수정헌법 2조를 내세우며 자위권 행사를 위해 총기를 보유하려는 시민의 권리가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거 분석업체인 ‘파이브서티에이트’에 따르면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주를 중심으로 최소 17개 주가 올해 무기 구매는 물론 소유·휴대를 쉽게 하는 법안을 도입했고, 오하이오·미시시피·오클라호마 등은 학교 교사들이 무장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여기엔 총기 옹호단체인 ‘전미총기협회(NRA)’의 로비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4월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 NRA 연례 총회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대사 등 공화당 대권주자가 대거 참여했다. 공화당 내 가장 유력한 주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을 “역대 미 대통령 중 최고의 총기 찬성자이자 수정헌법 제2조 수호자”라고 규정한 후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 “총기 문제가 아니라 정신건강 문제”라고 주장했다. 

NRA는 수천만 달러를 로비와 총기 옹호 정치인들을 지원하는 데 쓰고 있다. 미 비영리 조사단체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NRA는 2012년부터 총기 규제 법안에 반대하기 위해 매년 평균 360만 달러(약 48억원)를 사용했다. NRA는 의원들의 총기권 우호도를 A부터 F등급까지 6단계로 나눠 로비를 벌인다. NRA는 밋 롬니, 마코 루비오, 미치 매코널, 린지 그레이엄 등 공화당 내 총기권 옹호 정치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수천만 달러를 사용했다. 반면 총기 보유를 강하게 반대하는 ‘F’ 등급 후보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낙선 운동도 불사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워런, 척 슈머, 존 오소프, 라파엘 워녹 등 총기 규제를 주장하는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에 대한 낙선운동을 위해 수백만 달러를 지출했다.  

다만 일각에선 NRA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약화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NRA는 2018년 이후 회원이 100만 명 이상 줄어들었다. NRA는 2018년 600만 명의 회원이 있다고 보고했지만, 2021년엔 회원 수가 약 490만 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NRA의 로비 지출도 2021년 490만 달러에서 2022년 260만 달러로 전년 대비 사상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이 같은 미국 내 첨예한 의견 대립이 총기 규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가운데, 총기 규제를 둘러싼 논쟁은 내년 대선으로 옮아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당장 재선 도전에 나선 바이든 대통령은 총기 규제 강화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울 태세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내년 대선에서 자신이 승리하면 “바이든의 (총기) 전쟁을 끝내겠다”고 맞불을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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