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의 과제는 경영진이 기꺼이 권력 내려 놓는 것”
  • 대담=서용구 숙명여대 교수/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1 16:05
  • 호수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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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컨퍼런스G 2023 기조강연 나선 경영 구루 게리 하멜
“엔데믹 시대, 일·리더십·경영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만 집착했다. 테슬라와 위챗, 에어비앤비 등 혁신 비즈니스 모델이 산업을 변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비즈니스 모델뿐 아니라 새로운 경영관리 모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때가 됐다.”

게리 하멜(Gary Hamel) 런던비즈니스스쿨 전략 및 국제경영 담당 교수가 5월10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던진 첫마디다. 그는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월스트리트저널과 이코노미스트, 포천 등은 21세기 최고의 경영 구루(Guru)로 그를 선정했다. 현대 기업 경영의 주요 전략인 ‘전략적 의도(Strategic Intent)’와 ‘핵심역량(Core Competence)’ 등 용어 역시 그가 창시했다.

시사저널은 5월24일 남산 그랜드 하얏트호텔 그랜드살롱에서 제11회 ‘컨퍼런스G 2023’을 개최한다. 올해 주제는 ‘R(Recession)의 공포 R(Rebuilding·Recovery·Relief)로 넘자’다. 세계적인 경영 석학과 비즈니스 리더들이 스피커로 참석한다. 게리 하멜 교수 역시 이날 기조강연 스피커로 참석해 ‘R의 공포’를 이겨낼 위기 극복 전략을 제시할 예정이다. 5월10일 줌 인터뷰를 통해 게리 하멜 교수를 미리 만나봤다. 대담은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가 맡았다.

컨퍼런스G 2023의 강연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달라.

“일, 리더십, 경영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테슬라와 위챗, 에어비앤비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산업 지형을 변화시켰다. 이제는 비즈니스 모델뿐 아니라 새로운 경영관리 모델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다. 경쟁사보다 빠르게 경영 모델을 발전시켜 탄력적이고 혁신적인 일터를 만드는 기업만이 앞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위계적, 관료적, 하향식 구조를 버리고 수평적이고,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조직으로 변해야 한다. 제 강연에서 새로운 조직 모델을 제시하고, 단계별 실천 전략을 설명할 예정이다.”

한국에 많이 오셔서 잘 알 것이다. 아시아계 기업, 특히 한국계 기업은 유교문화 때문에 수평적 조직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많다.

“과거 한국의 한 선도기업에 초청받아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제 주제는 혁신이었는데, 400명의 사람을 군대 대열로 줄 세워 강당에서 행진하게 하더라. 당황스러웠다. 저는 삼성이나 LG와 경쟁 관계인 하이얼과 오랜 기간 일했다. 확실히 하이얼은 전형적인 중국 회사가 아니었다. 관리 계층은 두 개뿐이었다. 거대한 회사를 4000개 이상의 소기업으로 나누고, 독립적인 비즈니스가 새로운 기회 창출을 위해 협력하도록 하는 매우 정교한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 기업도 마찬가지로 수평적 조직문화 창조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리더십이다. 회사 경영진이 기꺼이 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 회사를 수직적으로 지휘하는 방식은 경영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지금 세상에서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하향식 전략 설정보다는 조직원 모두가 기여하고 혁신할 수 있는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이 한국 기업의 근본적인 과제다.”

교수님께서는 평소 효율적 조직은 5개 이상의 계층이 있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솔직히 말해 한국 기업에는 10개 이상의 관리 계층이 있다.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에도 10개 이상의 관리 계층이 있다. 모든 리더는 사다리를 오르고 싶어 한다.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해 거대 기업으로 키우기를 희망한다. 그런 종류의 관료적 구조는 시간이 지나면서 암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문제는 조직이 10개 계층을 가질 경우 빠르게 변화할 수 없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난 3년간 전 세계가 많은 고통을 겪었다. 코로나19가 우리 조직과 경영 전반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비즈니스 측면에서 제시할 수 있는 영향은 세 가지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하향식 지시 없이도 위기에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리더들이 목격했을 것이다. 직원들이 그동안 사용하지 않은 많은 능력이 있고, 지금도 있다는 것을 이해했기를 희망한다. 리더들이 다시 관료적이고 통제 지향적인 관리 관행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게 첫 번째 변화다.

직업에서 얻게 되는 감정 투자수익(Return on emotional investment)에 대해 직장인들이 비판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많은 사람이 자기 일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향후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찾아 이직하는 직장인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엔데믹 이후 많은 기업이 재택근무를 끝내고 오프라인 업무 복귀를 서둘렀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더 많은 유연성을 요구하는 것은 이제 트렌드가 됐다.”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이란 용어를 처음 만들었고, 다양한 기고와 인터뷰, 저서 등에서 이 핵심 역량에 대해 강조했다. 핵심 역량은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나. 

“아주 좋은 사례가 있다. 테슬라는 배터리, 자율주행차, 이를 관리하는 데 필요한 소프트웨어의 세계적인 역량을 가지고 있다. 마스터하기 정말 어려운 기술과 스킬이다. 지난 12년 동안 애플은 칩 설계의 핵심 역량을 구축하기로 결정했다. 마찬가지로 마스터하기 어려운 스킬이다. 이제 그들은 칩에 시스템을 모아놓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선도적인 설계 기업 중 하나가 됐다. 이들 기업처럼 고객을 위한 진정한 가치를 창출하고, 특정 영역에서 세계적 수준의 역량을 구축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마케팅 용어로 핵심 역량을 차별화 포인트라고 한다. 전략의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은 마케팅 용어 POD(Point of Difference)와 유사한 것 같다.

“똑같을 수도 있지만, 종종 마케팅에서 다소 작거나 사소한 차이를 강조하는 오류를 범한다. 많은 소비자 제품은 광고와 브랜딩에 의해서만 차별화될 수 있다.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모방하기 매우 어렵고 창출하는 가치 측면에서 피상적이지 않은 기능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오늘날 상시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생존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장기적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좋은 질문이다. 우리는 현재 전례 없고 광범위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세계경제의 붕괴, 소득 불평등 심화, 지역 간 갈등, 기관에 대한 신뢰 상실, 생산성 감소 등을 목격하고 있다. 이 변화는 개인뿐 아니라 기관, 사회의 회복력을 시험할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고, 신속하게 재구성하고, 자원을 재할당하고, 항상 긍정적이고, 열심히 변화하는 조직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를 위해서는 조직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는 경제를 발전시킨 놀라운 기업이 여럿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 경제는 극소수 기업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 글로벌 챔피언인 수십 개 기업이 필요하다. 다른 분야에 쏟는 것과 같은 에너지를 경영이나 조직 혁신에 쏟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도 새로운 경영 원칙을 수용하기 시작한 기업에 당근을 줘야 한다. 제 관점에서 그것은 일종의 ‘메타 도전’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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