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흘렀지만…‘5‧18의 강’ 건너지 못한 정치 [오월의 광주]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5.1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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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지도부 광주 총집결…尹대통령 “오월 아래 우린 하나”
‘5·18 정신 헌법 수록’ 두고 갈등 여전…유족 “우린 5월 지나면 잊혀“

“오월의 정신 아래 우리는 하나다.” (윤석열 대통령)

“당의 진심 퇴색되는 일 없도록 하겠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사죄와 반성은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거칠게 대립하던 여야가 잠시 ‘5월의 휴전’에 들어간 모습이다. ‘5·18 민주화운동 43주년’을 맞아 여야 지도부가 광주에 총집결, 일제히 추모와 위로의 메시지를 밝히면서다. 다만 5‧18 정신의 헌법 수록 여부, 시기, 방법 등을 두고 여전히 선명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이에 오월어머니 등 유족들 일각에선 “5월이 지나면 광주의 현실은 바뀌는 게 없다”는 불신과 불만의 목소리가 세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년 연속 광주 찾은 尹…“우리는 하나”

윤석열 대통령은 18일 오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개최된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다. 지난해에 이은 2년 연속 기념식 참석이다. 윤 대통령은 국립5·18민주묘지 정문인 ‘민주의 문’에서 ‘오월어머니’들을 직접 맞이한 뒤 함께 입장했다. ‘오월어머니’는 5·18 민주화 운동에서 가족이 희생됐거나 피해를 당한 가족인 여성들의 모임이다.

윤 대통령은 기념사를 통해 43년 전 ‘광주의 아픔’을 추모하고, 위로했다. 그러면서 “오월의 정신 아래 우리는 하나”라는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오늘 우리는 43년 전,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피로써 지켜낸 오월의 항거를 기억하고, 민주 영령들을 기리기 위해 함께 이 자리에 섰다”며 “민주 영령들의 희생과 용기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오월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이고, 우리가 반드시 계승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리며 “우리를 하나로 묶는 구심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오월의 정신을 잊지 않고 계승한다면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과 도전에 당당히 맞서 싸워야 하고 그런 실천적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우리는 모두 오월의 정신으로 위협과 도전에 직면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실천하며 창의와 혁신의 정신으로 산업의 고도화와 경제의 번영을 이루어 내야 한다”며 “그것이 오월의 정신을 구현하는 길”이라고 힘줘 말했다.

윤 대통령은 “오월의 정신으로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었다. 오월의 정신 아래 우리는 하나”라며 “민주 영령들의 안식을 기원한다”며 기념사를 맺었다.

17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이정덕 오월어머니집 사무총장이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17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이정덕 오월어머니집 사무총장이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5월에도 갈라진 與野…한숨 쉬는 오월어머니

다만 ‘우리는 하나’라는 윤 대통령의 공언과 달리 여야는 이날마저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이 최근 논란이 된 ‘김재원 극우 논란’ 등을 언급하며 국민의힘의 ‘진심’을 의심한 가운데, 5·18 정신 헌법 수록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을 두고는 야당과 대통령실이 충돌했다.

이재명 대표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43주년인 이날 페이스북에 윤 대통령을 향해 “5·18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망언을 일삼은 정부여당 측 인사들에 대한 엄정한 조치부터 이뤄져야 한다”며 “사죄와 반성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를 직시하는 용기만이 또 다른 비극을 막을 수 있다”며 “43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보수 정부는 ‘학살의 후예’임을 입증하듯 끝내 ‘5.18 부정 DNA’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윤석열 정권도 마찬가지다. 보수 정부의 5·18 부정과 단절하고 5·18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앞장서 망언을 쏟아내며 국민과 광주 시민의 가슴에 또 한 번 대못을 박았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또 “‘오월 정신은 헌법정신 그 자체’라던 윤석열 대통령의 말대로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면서 “여야 모두의 공약인 만큼 망설일 이유가 없다. 내년 총선에 맞춰 ‘5·18 정신 원포인트 개헌’을 반드시 이뤄내자”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반발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8일 복수 언론을 통해 “이번 원포인트 개헌 제안은 비리에 얼룩진 정치인들의 국면 전환용 꼼수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규범 질서의 근본을 고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는 국민적 합의와 절차가 중요하다”며 원포인트 개헌에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에 동의하고는 있지만 법으로 정해진 정당한 과정을 거쳐 헌법을 고칠 것”이라 강조했다.

여당도 대통령실과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광주에서 열린 최고위원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5.18 정신 헌법 수록에 대해 “이미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는 것은 대통령의 공약이고 당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구체적 시기와 방식을 묻는 질문에는 ”시점을 잘 찾아 가겠다“고 짧게 답했다.

이 같은 정치권의 갑론을박에 유족들은 참담한 심정을 밝혔다. 정치권이 5‧18을 ‘표심’을 의식해 정략적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의심에서다. 그러면서도 변화의 희망을 놓지 않았다.

5·18 민주화운동 유족들을 상징하는 ‘오월어머니집’의 이정덕 사무총장은 17일 시사저널과 만나 “나라에서 선거 등 이슈 때만 5·18에 집중하고 그친다. 여당도 5.18을 앞두고서야 이러니저러니 말(위로)을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 어머니들은 5월만 되면 가슴이 정말 아리다”고 토로했다. 이어 “43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내년은 더 달라진 5.18을 맞고 싶은 것이 우리 어머니들의 심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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