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적 청년 정치학교 ‘반전’, 김성식 이끌고 김황식·윤여준·김부겸 등 지원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2 10:05
  • 호수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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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주 126시간, 정치판의 ‘반전’ 꿈꾸며 모인 청년들…박지현·권지웅 등 첫 수료생 28명 배출

젊은이들의 거리인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경의선 철길 공원길을 지나 서교동 한 골목에 들어서면 감각적으로 지어진 건물에 정치학교 ‘반전’이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6개월간 매주 토요일 이곳에 청년 정치인들이 모여들었다.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하루 여섯 시간, 정규 시간이 다 끝나고 이어지는 식사 자리까지도 배움과 뜨거운 토론이 벌어졌다. 당도 이념도 다르지만, 이들이 바라보는 목표는 같았다. 이분법적 체제, 진영 논리에 갇혀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인 정치판에 반전을 가져오는 것. 누구도 시킨 적 없지만, 20여 명의 청년 정치인이 매주 주말을 반납하고 모였던 이유다. 

정치학교 반전의 1기 수강생들과 운영진 ⓒ반전 제공

김부겸 전 총리와의 대담, 언론 주목받기도

지난해 10월 본격적으로 문을 연 반전은 기후위기와 미·중 갈등, 불평등 심화와 정치 위기 등 대전환기 속에서 반성적 성찰과 미래 비전을 갖춘 선출직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이름도 ‘반전’(반성과 비전)이다. 합리적 중도 성향의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김성식 전 의원을 중심으로 유수의 정치 전문가들이 반전을 이끌고 있다. 김 전 의원이 운영위원장을 맡았고,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이진순 와글 이사장, 안희철 법무법인 디라이트 변호사가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제대로 된 미래세대 정치인 양성의 부재라는 공통된 문제의식 속에 각자 현업이 있음에도 주저하지 않고 반전을 함께 세우고 운영에 뛰어들었다.

고문단과 멘토단, 자문위원 등 청년 정치인들을 뒷받침할 ‘뒷배’도 든든하다. 진영을 넘어 우리 정치권에서 손꼽히는 합리적 성향의 중진급 인사가 대거 참여하고 있다. 김황식 전 총리,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정성헌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등이 고문을 맡았고, 멘토단엔 김부겸 전 총리,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유경준·최형두 국민의힘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 권영진 전 대구시장, 김세연·김해영·정태근·채이배 전 의원 등이 속해 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 등도 자문위원으로 함께하고 있다. 

정치학교가 진행되는 건물과 미래 비전을 세우기 위한 청년 정치 프로젝트 등을 통틀어 ‘스튜디오 반전’이라 부른다. 반전에 공간은 매우 중요한 의미다. 공간은 청년 정치인들이 한데 모여 토론하고, 네트워킹할 수 있는 기회, 더 나아가 소속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스튜디오 반전은 강의와 토론이 이뤄지는 강의실뿐만 아니라 카페, 강연장, 라운지, 루프톱 등의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정치학교를 수강한 청년이라면 누구나 수료 이후에도 이 공간들을 사용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진다. 운영위원이자 기획실장인 유승찬 대표는 “커리큘럼이나 다른 어떤 것보다 공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지식은 어디서나 얻을 수 있지만, 청년들이 모여 네트워킹하고 정치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공간은 반전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스튜디오 반전 건물 ⓒ반전 제공
스튜디오 반전 지하에 위치한 강연장 ⓒ반전 제공
스튜디오 반전 지하에 위치한 강연장 ⓒ반전 제공

기수당 모집인원은 36명 내외로 소규모 인원의 집중 관리를 목표로 하는 정치학교 반전은 지난해 11월 서류전형과 면접심사를 거쳐 34명의 1기 수강생을 선발했다. 민주당·국민의힘·정의당·녹색당·무소속 등 서로 다른 소속과 이념을 가진 청년들로, 박지현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과 권지웅 전 민주당 비대위원 등 중앙정치에서 활약한 정당인뿐만 아니라 지방 정치인, 기업인, 대학원생, 시민단체·국회보좌진 출신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청년들이 모였다. 운영위원이면서 수강생으로도 참여한 안희철 변호사는 “수강생 중엔 먹고살기 어렵고, 당장 끼니를 때우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면서 “현 정당과 정치의 몰락에 분노한 사람들, 극단적 사고에 저항하고 우리 삶 그 자체를 풍요롭게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사회를 바꾸고자 한데 모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1기 수강생들은 지난해 12월3일부터 올해 5월20일까지 약 6개월간 매주 토요일에, 연말과 명절만 제외하고 21주 동안 모였다.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6시간씩 하루 최소 2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내로라하는 강사들에 의해 대전환 시대에 맞는 정치를 하기 위한 다양한 주제의 강의 등이 진행됐다. 이뿐만 아니라 대담과 간담회, 현장 방문, 수강생 기획 세션 등 수강생들이 직접 참여하고 준비하는 다채로운 시간도 이뤄졌다.

지난 1월 반전의 멘토단 중 한 명인 김부겸 전 총리와의 대담은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김 전 총리는 수강생들과의 대담에서 정치를 하면서 느낀 솔직한 속내를 터놓으며 최근의 정치 상황에 대해 ‘정서적 내전 상태’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한 수강생은 시사저널에 “김 전 총리 등 선배 정치인들과의 대담에서 정치 개혁과 세대 교체의 중요성을 알지만 자신들이 변화시키지 못했던 점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대화 통해 타협과 조정이 가능함을 느껴”

절정은 매주 이뤄지는 수강생 간 토론이었다. 현 정치권의 가장 큰 문제는 김부겸 전 총리도 지적했듯 토론조차 이뤄지지 않는 극단적 대립 상태다. 반전에선 서로 다른 이념과 생각을 가진 청년들 사이에 정치 현안 등에 대해 치열한 토론이 가능했고, 그 끝엔 타협과 이해가 자리했다. 수강생인 이태우 전 국민의당 최고위원은 “평소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던 다양한 정당의 청년들과 매주 토론하다 보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충분한 대화를 통해 정치가 극단적 대립이 아닌 타협과 조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전했다.

정치학교 반전 1기 수강생들이 강의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모습 ⓒ반전 제공
정치학교 반전 1기 수강생들이 강의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모습 ⓒ반전 제공

수강생으로 뽑혔다고 해서 저절로 수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일단 반드시 70% 이상 출석해야 한다. 1기 수강생 중엔 대구·광주 등 먼 지방에서 매주 올라오는 이들도 있었다. 자신 있는 정치적 어젠다와 관련한 정책보고서 작성과 자신이 왜 정치를 하고, 어떻게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지에 대한 동영상을 제작하는 과제도 제출해야 한다. 본업을 병행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만만치 않은 기준이기에 운영진도 대거 중도하차를 걱정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1기 수강생 34명 중 28명이 수료하게 됐다. 80%넘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과정을 마친 것이다.

이들이 얻은 것은 수료증만이 아니다. 진영을 넘어 함께 고민하며 정치를 바꿔갈 동료들이다. 반전을 수료한 권지웅 전 비대위원은 “무엇보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료들의 생각과 그 생각의 변화 또한 볼 수 있었다”면서 “함께 새벽까지 선언문을 만드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참여한 동료들과 고민을 나눴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기쁨과 좌절, 기대와 기다림의 감정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제 반전을 수료한 청년들의 행보는 어떻게 될까. 각각 다르겠지만, 당장 내년 총선 출마 의사를 가진 이도 10명가량 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드시 선출직이 아니더라도 다른 형태로 좋은 정치가 이뤄지는 데 헌신하겠다고 다짐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물론 밖에선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청년 정치인들이 뭘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런 시선 덕분에 28명의 수료생에게 더욱 기대감이 쏠리기도 한다. 빤히 보이는 결말은 반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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