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정근 게이트’에 등장하는 실명 28명…얽히고설킨 ‘내부자들’
  • 조해수·김현지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6 10:05
  • 호수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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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돈 받은 의원도 10여 명 이를 듯

이쯤 되면 ‘이정근 게이트’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으로부터 촉발된 사건이 정계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해 9월말 이 전 사무부총장의 ‘10억원 수수 사건’이 터지더니, 곧이어 CJ대한통운 자회사인 한국복합물류에 대한 ‘취업 청탁 의혹’이 나왔다. 해가 바뀌자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이 여의도를 덮쳤다. 모두의 관심이 이 전 사무부총장의 ‘입’에 쏠렸다. 아니나 다를까, 이 전 사무부총장이 구술하고 지인이 육필로 정리한 ‘이정근 노트’가 시사저널 단독보도로 공개됐다.

시사저널은 10억원 수수 사건, 이정근 노트 등에 연루된 ‘공인’의 실명을 단독 공개해 왔다. 여기에 취업청탁 의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합치면 모두 28명에 이른다(표 <‘이정근 게이트’ 등장인물> 참조).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에서 ‘돈 받은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 이정근 게이트에 연루된 인물이 얼마나 늘어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들은 서로 밀고 당기며 그들만의 ‘이너 서클(inner circle)’을 형성했다. 영화 《내부자들》의 현실판이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정근씨는 민주당에서 핵심 인물이 아니다. 단 한 번도 배지를 단(국회의원에 당선된) 적도 없다”면서 “이런 인물이 입을 연 것만으로 걷잡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 당(민주당)의 민낯인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윤관석 무소속 국회의원, 이성만 무소속 국회의원, 강래구 전 한국수자원공사 감사(왼쪽부터) ⓒ
윤관석 무소속 국회의원, 이성만 무소속 국회의원, 강래구 전 한국수자원공사 감사(왼쪽부터) ⓒ시사저널 박은숙·시사저널 임준선·뉴시스

▒ 이정근 10억원 수수 사건

‘이정근 게이트’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다.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은 각종 청탁의 대가로 사업가 박우식씨로부터 10억여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9월 구속기소됐다. 결국 이 전 사무부총장은 4월12일 1심에서 징역 4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 밖에 9억8000여만원이 추징되고 박씨에게서 받은 명품도 몰수됐다. 현재 이 전 사무부총장은 물론 검찰 역시 1심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2022년 10월21일자 <[단독]이정근 10억원 수수 사건, ‘친문 게이트’로 비화…노영민·박영선·성윤모·이성만·류영진>, 10월28일자 <[단독]10억원 수수 이정근發 ‘친문 게이트’, 공기업·지자체·경찰도 얽혔다> 기사 참조)

이 사건을 살펴보면 권력층의 청탁·로비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알 수 있다. ‘로비스트’가 ‘정치적 동지들’을 내세우며 전화 한 통화에 수천만~수억원을 받아 챙겼고, 동지인 ‘권력자’ 역시 거리낌 없이 로비스트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다음은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에 대한 구속영장청구서·공소장·판결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판결문│이정근 “나는 지금도 로비스트야. ‘나는 역시 로비스트가 맞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요?”

구속영장청구서·공소장│이정근 “이성만 국회의원이나 한국수자원공사 강래구 상임감사위원이나 다 정치적인 동지들이어서 (내가 청탁한 것을) 앞장서서 해 줄 것”

판결문│이정근 “나한테 한 달이나 두 달쯤 시간 좀 줘. 내가 비서실장님(노영민)하고 ‘비즈니스 관계’로 전환을 해야 하니까”

판결문│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제가 우리 이정근 위원장(민주당 서초갑 지역위원장)하고 옛날 인연은 있어 가지고 아주 각별하게 지내는 사이인데, 회장님(박우식)께서 또 많이 도와주신다 그래 가지고, 앞으로 많이 도와주세요”

이 밖에 노웅래 의원은 박우식씨로부터 2020년 2~12월 발전소 납품 사업 편의 제공, 물류센터 인허가 알선, 태양광발전 사업 편의 제공, 인사 알선, 각종 선거자금 등 명목으로 5차례에 걸쳐 6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다. 5월19일 첫 재판에 나온 노 의원은 “뇌물을 받은 사실이 없으며 저에 대한 검찰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면서 “(검찰이 확보했다는 현장 녹취가) 악의적인, 고의적인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 김영철)는 “녹취파일 편집은 없다. 원본이라 통화 하나하나가 명확하다”고 반박했다.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관련 의혹을 받고 있는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왼쪽 사진)와 이정근 노트에 중심 인물로 등장한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

▒ 취업청탁·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반부패수사2부는 CJ대한통운 자회사인 한국복합물류에 대한 취업 청탁 의혹으로 노영민 전 비서실장과 이학영 민주당 의원을 수사하고 있다. 특히, 노 전 비서실장은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을 한국복합물류 상근 고문으로 채용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지난해 말 출국 금지된 상태다.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은 수사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검찰은 돈을 받은 현역 국회의원 여럿을 특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9400만원의 돈봉투가 현역의원, 지역본부장, 지역상황실장 등 3개 그룹으로 나뉘어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사건으로 민주당을 탈당한 이성만·윤관석 무소속 의원과 강래구 전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이 피의자로 입건됐고, 이 중 강 전 감사는 구속됐다. 강 전 감사는 검찰 조사에서 윤 의원을 책임자로 지목한 것으로 전해졌다.

5월19일 현역 의원 중 처음으로 검찰에 소환된 이성만 의원은 “돈을 준 적도 받은 적도 없다”면서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사흘 뒤인 5월22일 검찰 조사를 받은 윤관석 의원 역시 “검찰의 짜맞추기 기획 수사에 맞서 결백과 진실을 밝히겠다”는 입장문을 냈다. 그러나 검찰은 윤 의원의 지시로 강래구 전 감사가 6000만원을 마련해 민주당 국회의원 10여 명에게 300만원씩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5월24일 윤 의원은 물론 이 의원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의 최대 수혜자인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에 대한 수사망도 좁혀가고 있다. 반부패수사2부는 최근 송 전 대표의 외곽 조직인 ‘먹고사는문제연구소’의 회계 담당 직원 박아무개씨, 행정업무를 맡던 김아무개씨를 증거인멸 혐의로 입건했다. 송 전 대표가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비서관을 지낸 이아무개씨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돈봉투 의혹으로 최근 민주당을 탈당한 송 전 대표는 5월2일 서울중앙지검에 자진 출석했으나 검찰이 “필요한 시기가 되면 통보하겠다”며 거부해 발길을 돌린 바 있다.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은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의 발단이 된 이른바 ‘이정근 녹음파일’이 검찰 수사팀에서 언론으로 유출됐다고 보고, 반부패수사2부 소속 성명불상 검사와 녹취를 보도한 JTBC 보도국장·기자들을 서초경찰서에 고소했다. 이 전 사무부총장을 변호하는 정철승 법무법인 더펌 대표변호사는 “검찰은 지난해 8월 이씨(이정근) 휴대전화를 압수해 3만 건에 달하는 녹음파일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검찰보다 앞서 3만 건을 다 분류해 놓고 수사에 착수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방송하는 건 불가능하다. 누군가 관련된 내용만 뽑아 JTBC에 줬다는 추정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수사팀 검사의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2부(부장 김선규)가 맡게 됐다.

▒ 이정근 노트

시사저널은 4월21일 <[단독입수]친노·친문·친명 돈줄 적힌 ‘이정근 노트’…판도라 상자 열렸다>를 보도했다. 이정근 노트는 지난해 9월말 구속되기 전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이 구술하고 지인이 육필로 정리한 A4용지 5페이지 분량의 문건이다. 문건엔 친노계, 친문계, 친명계의 자금줄이 대략적으로 정리돼 있다. ‘노무현’ ‘문재인’ ‘재수회(문재인을 재수시켜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모임)’ ‘류영진(문재인 정부 초대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이재명 7인회’ 등의 제목으로 각각 A4용지 1장 분량으로 작성됐다. 현역 국회의원 14명을 비롯해 51명의 실명이 등장한다.

주요 내용은 “노영민 자금책, 홈앤쇼핑·허인회 태양광”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중소기업 대출 알선 등 처리” “류영진 전 식약처장, 문재인의 자금관리자” 등이다.

현역 국회의원에 대한 내용도 있다. 박우식씨가 이원욱 의원을 통해 100억원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를 현금화했고, 설훈·김영진·고용진 의원에게 5000만원 등의 자금을 제공했다고 노트에 적시돼 있다. 박씨가 김병욱 의원에게 텔레그램을 통해 인사 청탁을 했다는 대목도 있다.(<[단독]‘이정근 노트’의 실명 의원들, 이원욱·김병욱·설훈·김영진·고용진> 기사 참조)

검찰 측은 “수사팀(반부패수사2부)이 이정근 노트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반부패수사2부는 이정근 노트에 대해 “수사 단서가 있다면 신빙성을 고려해서 수사 필요성을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수감 중인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에게 편지를 통해 추가 질의를 했으나, 이 전 사무부총장은 5월25일까지 어떤 답변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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