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 연포탕’ 끓이려는 김기현, 통합 행보 먹힐까 막힐까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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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민주당 혼란 틈타 ‘중도 확장’ 가속도
최고위원 리스크‧비윤계 포용‧당정 관계 등 걸림돌 여전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오른쪽)가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함께 추도식 영상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오른쪽)가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함께 추도식 영상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당 위기를 한 차례 넘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내친김에 외연을 확장하는 통합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김남국 사태’에 빠져 있고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세인 지금, 모처럼 찾아온 유리한 정치 상황을 한껏 누리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기현 대표는 ‘김재원‧태영호 사태’로 당이 ‘극우 논란’에 휩싸이자 지난달부터 부쩍 통합 행보에 공을 들였다. 지난달 16일엔 세월호 참사 9주기 기억식에 윤재옥 원내대표와 함께 참석했으며, 지난 18일 국민의힘 의원 전원을 이끌고 광주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찾았다. 23일엔 경남으로 향해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와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식에 방문하며 그간 여당이 거리를 둬 왔던 곳에 연이어 모습을 비치고 있다.

김 대표는 자리마다 외연 확장을 꾀하는 메시지도 빼놓지 않았다. 지난 18일 광주에서 호남 청년들과 오찬을 가지며 “아버지 때부터 반(反)군사정권 운동을 했고 저도 학교에 다니며 데모를 했다”며 동질감을 강조했다. 또 “호남을 잘 살게 해야 한다”며 지역의 핵심 현안인 ‘광주 복합 쇼핑몰 유치’를 고민하겠다고도 약속했다.

23일 봉하마을에선 “전직 대통령에 대한 흑역사가 반복돼선 안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며 “생각과 철학이 다르더라도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으로서 예우하고 존중의 뜻을 표하는 게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의 이런 행보엔 크게 두 가지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먼저 총선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만큼 ‘집토끼(보수층)’를 넘어 이젠 ‘산토끼(중도‧무당층)’ 공략에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조급함’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최근 청년‧중도 민심이 민주당을 크게 이탈하면서 맞물리면서 국민의힘에 기회가 왔다는 ‘자신감’이 더해졌단 분석이다.

 

당내 ‘연포탕’은 아직 불도 못 올렸는데

하지만 김 대표의 국민통합 행보에 제동을 가할 걸림돌이 여전히 곳곳에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김기현 지도부를 가장 큰 위기로 빠트렸던 ‘최고위원 리스크’가 100%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장 ‘당원권 정지 1년’ 중징계를 받은 김재원 최고위원이 징계 2주도 안 돼 방송 출연을 재개하는 등 기지개를 펴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징계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면서도 “찬반 논란이 있는 문제에 대한 발언이었는데 징계를 내렸다”며 넌지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 최고위원의 활동 재개가 당내에선 반갑지 않은 기색이다. 간신히 사태를 수습하고 민주당을 향한 공세에 힘을 쏟고 있는 지금, 괜히 이슈가 분산될까 하는 우려에서다.

김재원 최고위원와 엮여 김기현 대표를 골치 아프게 했던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역시 잠재된 리스크로 꼽힌다. 전 목사는 최근 국민의힘과 거리를 두고 별도의 세력 구축에 나서고 있지만, 총선이 다가오면 다시 국민의힘에 ‘정치적 거래’를 시도할 수 있다는 전망이 파다하다. 여기에 조수진 최고위원이 ‘인턴 비서 부당 해고’ 문제로 당 윤리위에 제소돼 있는 점도 김기현 지도부의 시한폭탄으로 꼽히고 있다.

김 대표가 국민 통합 행보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당내 ‘연포탕(연대‧포용‧탕평)’을 잘 끓여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꾸준하다. 이준석계 ‘천아용인’을 비롯한 비윤계와 접촉면을 넓히지 않고 있으며, 지도부 또한 여전히 ‘친윤 일색’이다.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지난 17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김기현 지도부의 부족한 다양성을 채워줄 만한 새로운 관점의 인물을 채우는 것이 중요한데, (김 대표는) 자신의 리더십을 더 보완해 줄 만한 사람을 찾고 있다”며 “잘못된 현실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용산 대통령실과의 ‘수직적 관계’도 김 대표가 자체적으로 통합 행보를 이어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윤 대통령과 거대 야당 사이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려면, 당 지도부가 대통령실을 주도하거나 대통령과 차별화된 행보를 보여야 하는데 둘 다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노조와의 전쟁’을 중도층 확보 전략으로 삼고 여기에 김 대표가 적극 힘을 싣고 있는 것도, 김 대표가 이어 온 통합 행보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선 김 대표의 통합 행보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다만 그 효과에 대해선 한계가 있을 거란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한 원외 인사는 “애초에 김기현 대표에게 국민과 당원이 기대했던 건 대통령을 잘 뒷받침하라는 것이었지, 독보적인 리더십을 발휘해 대국민 통합을 이뤄내라는 게 아니었잖나”라며 “당내 위기를 겪으며 더욱 낮아진 기대감 속에서 나름대로 방향을 잘 잡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김 대표가 5‧18을 챙긴다고 곧장 국민의힘이 호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진 못하겠지만, 이런 행보가 쌓여 수도권과 젊은 중도‧무당층엔 직간접적으로 궁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어 “이런 행보가 조금이나마 당 지지율 상승을 이끈다면 조기 비대위설도 자연히 누그러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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