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정에서 김남국까지 ‘도덕적 해이’ 전성시대 [권상집의 논전(論戰)]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6 15:05
  • 호수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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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를 투기로 만들어 대중에게 허탈감 안겨

라덕연의 ‘SG 사태’와 김남국의 ‘코인 게이트’가 우리에게 주는 박탈감은 매우 컸다. 한쪽은 각종 금융 세력과 임창정 등 유명 연예인을 엮어 주식시장을 혼탁한 투기판으로 만들었다. 다른 한쪽은 이러한 시장 질서를 엄중히 감시해야 하는 책무를 저버리고 스스로 투기 세력의 중심이 돼 다수의 시민을 분노케 했다. 시민의식은 온데간데없고 도덕 불감증을 넘어 도덕적 해이가 바야흐로 전성시대를 맞이한 느낌이다.

김남국 의원의 ‘위믹스’ 등 코인 게이트 조사에 나선 국민의힘 코인 게이트 진상조사단장인 김성원 의원과 간사인 윤창현 의원 등이 5월19일 경기도 성남시 위메이드 본사를 방문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임창정과 김남국이 쏘아올린 나비효과

단순 시세 급락으로 믿었던 프랑스계 증권사 SG증권발(發) 폭락 사태의 주역인 라덕연 H투자자문 대표나 주가조작 의혹을 받는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보다 대중을 더욱 화나게 한 이는 바로 가수 및 배우로 활동 중인 임창정이었다. 임창정은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가요계와 영화계에서 활약하며 25년 가까이 잡음 없이 활동해온 인물이다. 특히 임창정은 자신을 향해 아낌없는 지지와 사랑을 보내준 팬들과 항상 호흡하고 소통하며 대중의 신뢰를 중시했다.

주가조작 세력에 임창정이 가담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을 때 그는 강하게 반문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여론 역시 초기에는 임창정의 하소연을 들어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공인 그리고 콘텐츠 사업가로서 언제나 소탈한 행보를 보여온 그가 그랬을 리 없을 것이라는 대중의 믿음 역시 강했다. 그러나 H투자자문의 투자행사에서 적극적으로 투자를 유도해온 그의 모습에 여론은 이내 싸늘하게 돌아섰다.

그사이 피해를 본 투자자는 1500명이 넘었고 피해금액은 1조원에 육박했다. 시가총액 1조원 이상 기업의 주가가 연이어 하락하며 3~4일 만에 8조원이라는 시가총액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주가조작 배후 세력인 라덕연 그리고 키움증권보다 더 많은 비난을 임창정은 현재 받고 있다. 주식 투자에 물음표를 달았던 이들은 라덕연 대표를 믿고 투자한 것이 아니라 임창정의 말 한마디를 믿고 투자했기 때문이다. 공정한 시장 질서를 토대로 기업 가치를 거래해야 할 주식 투자 시장은 이내 투기 시장으로 전락했고, 임창정은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팬들의 믿음을 저버렸다.

서민 반값 변호를 외치며 자신의 국회의원 출마 이유에 관해 개혁 작업을 위한 절박함이라고 강조했던 김남국 의원은 한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그 절박함과 개혁 드라이브를 코인 투자에 집중하는 희대의 아이러니를 보여줬다. 김 의원은 스스로를 무주택자 그리고 구멍 난 운동화를 신고 라면을 먹고 자란 인물로 묘사해 왔다. 그는 사태 초반에 코인 투자가 그토록 잘못된 것이냐고 항변했지만 대중이 그에게 분노를 쏟아낸 건 투자 행위 때문만이 아니다. 이태원 참사 애도 기간에도 그는 코인 투자를 위해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고, 공정한 법질서 확립을 위해 깊이 논의해야 할 법사위 상임위 시간에도 코인 확립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석열 정부의 실책을 덮기 위해 검찰이 의도적으로 해당 이슈를 흘렸다는 김남국 의원의 ‘정치검찰 프레임’이 대중에게 공감받지 못한 이유다. 어렵게 살았기에 100만원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안다는 그는 특정 코인에 수억원을 한 번에 올인하는 등 언(言)과 행(行)의 불일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가 실천한 언행 불일치로 인해 정치검찰 프레임은 김남국 코인 게이트로 대중에게 각인됐다.

주식과 코인. 지난 3년간 대한민국 모든 이를 웃고 울게 만든 주인공이다. 지난 시기, 각종 방송에서도 경제지식을 쌓아야 한다며 주식과 코인 투자 프로그램을 내놓았고 이제는 10대 학생들도 주식과 코인에 투자하며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직장인 커뮤니티에는 망할 회사에 다니며 고생하느니 인생 역전을 꿈꾸겠다며 주식과 코인 투자에 나섰다는 이들의 얘기가 넘쳐난다. 주식과 코인은 대중의 마지막 도피처였다.

주식과 코인이 모든 이의 희망이자 도피처가 되면서 학자들도 주식이나 코인 투자에서 지속적으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관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단순 통계분석에서 최근에는 빅데이터를 토대로 머신러닝 분석,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방법이 총동원돼 연구를 진행했으나 그 결과는 허무하게도 주식과 코인에서 지속적으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게 연구의 보편적 결론이다.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알고리즘으로 주가 추이를 분석한 후에 기술 분석 등 과학적 분석은 실제 주가 흐름과 관련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코인은 화폐가치 기능을 논외로 하더라도 급등과 급락 원인이 논리적이지 않기에 단기간 내 수익을 거둘 수 없다는 게 학자들의 결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수 임창정이 투자를 권유한 것도, 김남국 의원이 10억원을 60억원으로 만들 수 있던 것도 비상식일 뿐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나친 투자 열풍 분위기는 노동의 존엄성을 박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중가수의 본업을 버리고 투자 홍보에 나선 임창정과 의정활동의 본업을 외면하고 수십억원 상당의 코인을 굴리기 위해 펀드매니저보다 더 치열하게 스마트폰을 바라다본 김남국 의원은 노동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지금도 피땀 흘려 노력하는 수많은 이의 가슴에 허탈감을 선사하는 데 공헌(?)했다.

ⓒ연합뉴스
임창정은 최근 SG증권발 폭락 사태에 연루 의혹을 받으면서 곤욕을 치렀다. ⓒ연합뉴스

“정의?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있기는 한가?”

정치인과 연예인은 대중에게 미덕을 보여줘야 할 책임이 있다. 그들이 어떤 언행을 하느냐에 따라 작게는 청소년, 더 크게는 대중 그리고 국민이 시민의식을 함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앞장서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투기에 몰입한다면 시민의식은 갈수록 타락할 수밖에 없다. 특히, 김남국 의원은 내돈내투(내 돈으로 내가 투자)가 무슨 문제냐며 합법적인 거래였음을 줄곧 밝혀 대중의 공분을 샀다.

영화 《내부자들》에서는 “정의? 대한민국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있기는 한가?”라는 대사가 나온다. 8년 전 영화 대사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미래를 점쳤다는 ‘성지글’이 인터넷 게시판에 넘쳐난다. 시민의식과 미덕을 땅에 떨구기는 쉽다. 그러나 이를 다시 회복하려면 수많은 노력과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 도덕 불감증의 문을 연 그들은 지금도 해명뿐이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내부자들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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