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 오르는 전세제도 어떻게 바뀔까
  • 길해성 시사저널e. 기자 (gil@sisjajournal-e.com)
  • 승인 2023.05.30 07:35
  • 호수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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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임대차 3법 개정 통해 점진적 변화 예고
전문가들 “임대차 시장 한 축 차지, 폐지는 어려워”

전세제도 향방에 부동산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가 전세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전세사기 사태와 역전세난 우려가 커지자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칼을 빼든 것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최근 “전세는 수명을 다했다”고 언급한 이후 시장에선 ‘전세 폐지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전세제도가 오랜 기간 주택 임대차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해온 만큼 정부가 통제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연합뉴스
전세사기깡통전세피해자전국대책위 등이 주최한 전세사기ㆍ깡통전세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이 5월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임대차 3법 순기능 고려해 폐지 대신 조정

우선 주목되는 게 정부의 행보다. 국토부는 올 하반기 전세제도 전반에 대한 손질에 나설 계획이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깡통전세와 역전세가 속출하자 전세제도 자체를 손봐 추가 피해를 막겠다는 것이다. 원 장관은 5월16일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제대로 예방할 판을 본격적으로 만들어야 할 시점이 왔다”면서 “앞으로 예상되는 임대차 시장의 문제를 분석하고 복기해서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당장 임대차 3법(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신고제) 개정을 통해 점진적인 개선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전세와 관련된 각종 부작용이 과도한 가격·계약 규제에서 비롯됐다는 판단에서다. 임대차법은 2020년 7월부터 시행됐다. 세입자가 원하면 전·월세 계약을 연장해 최대 4년 거주를 보장하고 임대료 상승률을 5% 이내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임대차 3법은 당초 임차인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마련됐지만 전셋값 폭등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집주인들은 새 임차인과 계약 시 시세보다 훨씬 비싸게 전세를 내놨다. 4년간 보증금을 올리지 못할 것을 우려해서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때인 2017년 5월부터 임대차 3법 시행 직전인 2020년 7월까지 전국 전셋값은 평균 10.5% 올랐다. 반면 임대차 3법 시행 이후인 2020년 8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의 전국 전셋값 상승률은 27.3%에 달했다. 전셋값이 2021년 말 고점을 찍은 만큼 계약만기가 도래하는 올해 말 보증금 미반환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임대차 3법에 순기능이 존재하는 만큼 폐지 대신 전·월세 임대료 인상률을 올리는 방향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직전 계약 대비 5% 이하로 제한한 내용을 10% 안팎 또는 주변 전셋값의 일정 수준 안에서 협의할 수 있도록 조정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원 장관 역시 “임대차 3법을 크게 보면 가격 제한, 기간 연장, 신고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가격과 기간을 억지로 끼워맞추는 건 없애야 한다”면서도 “다만 임대차법 자체를 폐지하는 건 정답이 아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전세보증금을 제3기관에 맡기는 에스크로 도입도 거론된다. 전세 거래 시 금융회사에 전세보증금을 맡겨 안전 결제를 보장하자는 제도다.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를 방지하고 전세보증금이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로 흘러가는 부작용도 차단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다만 보증금을 이미 일종의 무이자 대출로 인식하고 있는 집주인 입장에선 적잖은 반발이 예상된다. 시장에서 자동적으로 반전세, 월세 비중이 높아져 결국 주거비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일각에선 전세 폐지론도 나오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시선이 지배적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체 주거 형태 중 전세 비중은 15.5%를 차지한다. 하루아침에 제도를 없애면 집주인이 일시에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곳곳에서 터져나오며 임대차 시장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부동산 전문가들 역시 정부가 전세 시장을 통제하는 건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이은형 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기 피해자들은 피해 금액을 되돌려받는 것이 최선의 결과다. 하지만 전세가 사인 간 계약이다 보니 정부가 나서서 피해금을 물어주는 방법 등은 쉽지 않다”며 “정부 대책이 재발 방지에 집중되더라도 민간 시장의 사기 사건을 완벽하게 차단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미 국토부에서 제시했던 전세사기 재발 방지 방안부터 시행하고 실행 과정에서 제기되는 추가 문제를 보완·수정하는 것이 최선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전세는 상급지 아파트를 사서 이주하기 어렵거나 월세에 부담을 느끼는 실수요자에겐 여전히 필요한 제도다”면서 “전세가율이 낮은 아파트의 경우 전세 수요가 꾸준한 만큼 전세제도 전면 개편에 따른 여론의 반발이 거셀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원희룡 “에스크로 도입 고려하지 않는다”

정부도 이런 여론을 의식한 듯 점진적 제도 개편을 시사하며 무제한 갭투자를 금지 또는 제어하는 방안의 전세제도 개편 방향을 밝혔다. 원 장관은 5월24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진행된 국토부 출장기자단 간담회에서 “전세가 해온 역할을 한꺼번에 무시하거나, 전세를 제거하려는 접근은 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 이어 “다만 전세대출을 끼고 갭투자를 하고 경매에 넘기는 것 빼곤 보증금을 돌려줄 방법이 없는데도 천연덕스럽게 재테크 수단인 것처럼 얘기되는 부분은 손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원 장관은 선순위나 기존에 채무가 있을 경우 전액 보증금 제도를 제한하는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 보증금이라는 전세의 기능은 그대로 놔두고 담보가치가 남아있는 일정 비율만 반전세로 하는 방식도 검토 중이다. 다만 에스크로 도입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원 장관은 “가장 극단적으로 에스크로까지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뜻으로 당시(취임 1주년 간담회) 언급한 것이다”며 “넘겨받은 보증금을 전액 금융기관에 맡기고 쓰지 말라고 하면 전세를 하지 말라는 얘기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최종 정책 판단은 에스크로 같은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을 반영해 내려야 한다”며 “공론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것이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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