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것 같은 공포 ‘공황장애’에 연 20만 명이 고통받는다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7 12:05
  • 호수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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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발작이 한 달 이상 반복되면 정신과 찾아야…방치하면 우울증 겹치면서 치료 어려워

22세 대학생 이아무개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등굣길에 지하철을 탔다. 평소보다 사람이 조금 많았으나 지하철을 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5분 후 갑자기 식은땀이 났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심호흡하면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숨을 쉬려고 할수록 더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점점 어지러워 쓰러져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왔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내린 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변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웅성거리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렸다. 30분 정도 지난 후 걸을 수 있었으나 지하철을 다시 타지 못하고 지하철역 밖으로 나왔다. 

이 사례는 전형적인 공황장애 증상이다. 여러 연예인이 이 병을 앓고 있다고 밝히면서 일반에 많이 알려졌고 그동안 비슷한 증상을 겪었던 사람들이 병원을 찾는 경우가 늘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1년 기준 20만540명이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10년 전인 2012년(7만9997명)에 비해 2.5배로 급증한 셈이다.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40대는 4만6924명으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비율(23%)을 차지했다. 40대 다음은 50대(3만8519명)였다. 40·50대가 전체의 절반에 육박한다. 유소영 서울시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 병원의 공황장애 클리닉만 보더라도 의외로 많은 환자가 찾아온다. 공황장애의 주요 증상인 공황발작은 인구 중 상당수가 일생에 한 번 정도는 경험할 정도로 흔하다. 공황장애는 대체로 20·30대에게 발생하나 대부분 병원을 찾지 않고 버티다가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가 된 40대 이후에 병원을 찾는다”고 말했다. 

주요 특징은 공황발작과 예기불안

공황장애는 특별한 이유 없이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극단적인 불안 증상이다. 공황장애의 주요 특징은 공황발작과 예기불안이다. 공황발작이란 △갑작스럽게 겪는 죽을 것 같은 공포감 △가슴의 답답함 △심장이 터질 듯한 두근거림 △식은땀 △어지러운 증세 △손발이 마비되는 느낌 △곧 쓰러질 것 같은 느낌 등 여러 가지 신체 증상과 불안이 동반되는 것을 말한다. 빈맥(빠른 맥박)·심계항진(두근거림)·호흡곤란·발한 같은 신체 증상이 나타나는데 보통 10분 안에 증상 정도가 최고조에 도달하고 20~30분 이내에 사라지며 1시간을 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공황발작이 시작되면 죽을 것 같은 공포감에 119에 신고하거나 응급실을 찾지만 정작 응급실에 도착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공황발작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수일 또는 수개월 후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공황장애다. 

죽을 것 같은 극도의 공황발작을 한 번 경험하고 나면 또 언제 갑자기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이것이 예기불안이다. 공황발작을 겪었던 상황이나 장소를 피하게 되고, 그런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예를 들어 지하철이나 버스 등 사람이 많은 대중교통 이용을 주저하거나, 쇼핑몰·영화관 등 사람이 많거나 바로 빠져나오기 어려운 장소는 가지 않는다. 

ⓒ시사저널 사진자료
ⓒ시사저널 사진자료

스트레스·뇌 기능 이상 등 복합적 원인

이처럼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공황장애의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스트레스다. 공황장애 환자 중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학생은 학업, 청년은 취업, 중년은 직장과 자녀 문제 등에 시달리기 일쑤다. 특히 공황장애 환자가 가장 많은 40·50대는 직장에서 위 세대와 아래 세대 사이에 끼어있고, 가정에서는 자녀가 입시 공부를 시작하는 시기이므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우울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불안 요소가 없는데도 갑자기 공황장애가 찾아오기도 한다. 즉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이나 신체적 피로도가 높은 상태 등에서 공황발작이 일어날 수는 있으나 그것만으로 공황장애의 원인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최근에는 뇌 기능 이상도 공황장애의 한 가지 원인으로 확인됐다. 

공황발작을 경험한 상당수는 ‘이러다가 내가 미치는 것인가’라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러나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즉 공황장애가 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다. 다만 공황장애는 자연적으로 회복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방치하면 우울증이 겹치면서 치료가 어려워진다.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70~90%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로 증상이 호전된다. 

공황발작이라는 특징적인 증상이 반복될 때가 정신과 전문의를 찾을 시점이다. 또 미국정신의학회가 제시한 공황발작 증상 13가지(별도 표)를 참고해 이들 증상 가운데 4가지 이상에 해당할 때도 병원을 찾아야 한다. 유소영 교수는 “공황발작이 반복되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한 달간 이어지면 공황장애를 의심하고 한 번쯤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공황장애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받기 전에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공황발작을 경험했다고 바로 공황장애 진단을 받는 것은 아니다. 공황발작이 ‘갑작스럽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나타나야 공황장애에 해당한다. 더불어 공황발작 외에 예기불안 등으로 일상생활에서 건강하지 못한 방향으로 행동이 바뀌게 되는 경우에 공황장애 진단을 받는다. 트라우마가 특정 장소에서 과거의 나쁜 기억이 떠오른다면, 공황발작은 특정 장소뿐만 아니라 다른 상황에서도 발생한다. 

또 공황발작은 △갑상선항진증 △부갑상선기능항진증 △심장질환 △전정기관 부전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등 다양한 원인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의사는 심장질환·호흡기질환·뇌질환 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진행해 원인을 찾는다. 의사는 환자에게 공황발작이 나타나기 전에 반복적으로 있었던 사건(커피·술·약물 복용, 흡연, 수면 변화, 식사 변화, 과도한 조명 등)도 물어본다. 공황발작은 흥분, 신체적인 활동, 성행위, 감정적 상처 등에 뒤따라서 생길 수 있으나 특별한 이유 없이 생기는 경우도 흔하다. 만일 특정 약물을 복용한 후에 공황발작이 일어난다면 그 약물을 조절하는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지행동치료·약물치료 병행하면 효과적

예전에는 과거의 경험과 충격에서 공황발작의 원인을 찾았다. 그래서 예전에는 심리치료와 같은 비약물치료에 의존했으나 뇌 기능 이상이 공황발작의 원인으로 밝혀진 후에는 약물치료가 추가됐다. 약물치료에는 항우울제(SSRI 등)와 항불안제(벤조다이아제핀 등)가 사용된다. 항우울제는 효과가 오래 지속되고 공황발작을 예방한다는 장점이 있다. 항불안제는 비교적 효과가 바로 나타나 불안을 빠르게 감소시킨다. 그러나 효과가 수 시간 정도만 지속되는 등의 단점이 있으므로 정신과 전문의의 지도가 필요하다. 약물치료는 약 1년 동안 유지해야 증상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약물치료 기간이 길수록 공황발작 재발률이 낮아진다. 

또 다른 치료법은 인지행동치료다. 이 치료는 공황발작과 예기불안을 최소화해 환자가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하도록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공황발작이 왔을 때 긴장을 이완하는 근육 이완법이나 호흡법도 인지행동치료에 포함된다. 유소영 교수는 “공황장애의 주요 치료법인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는 환자에게 단독으로 적용하기도 하고 병행하기도 한다.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는 편이 각각의 단독 치료에 비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 최근 경향이다. 공황장애는 힘겹고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병이다. 하지만 완치가 불가한 병은 아니다. 예기불안과 맞서는 힘을 길러 나가면서 일상생활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 발짝씩 나가다 보면 공황장애라는 긴 터널에서 어느덧 빠져나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공황장애의 늪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일상생활에서 공황장애를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유소영 교수는 “일단 카페인과 술을 피하는 것이 좋다. 그런 물질은 공황발작과 유사한 신체 증상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음악을 듣거나 산책하는 등 자신에게 맞는 스트레스 해소법을 이용해 스트레스를 그때그때 풀어주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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