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은 에너지 안보의 첨병”
  • 대담=전영기 편집인, 정리=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6 14:05
  • 호수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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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국제 에너지 수송로, 안보적으로 취약해"
“재생에너지만으론 탄소중립 달성 불가능…에너지 민주주의는 엉터리”

“한국이 원자력 기술 개발을 시작한 것은 큰 혜안이었다. ‘탈원전’은 에너지 안보를 위태롭게 했다.”

한국 최대 발전회사로서 국내 전기 생산량의 30%를 책임지는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의 수장인 황주호 사장의 말이다. 한수원의 주요 발전설비는 원자력발전소다. 전체 전력 생산량 중 80%가 한수원이 운영 중인 24기의 원전에서 나온다. 원자력을 확대하는 게 곧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는 것이란 게 황 사장의 인식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수급 불안 문제가 대두된 만큼, 자체 기술로 생산하는 원자력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취지다.

시사저널은 5월23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수원 방사선보건원에서 황주호 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전영기 시사저널 편집인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황 사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2022년 8월 취임했다. 황 사장은 이번 정부의 ‘원전 드라이브’ 기조에 발맞춰 국내 원전산업 부활을 위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국 원전산업을 최전선에서 지휘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황 사장이 받아든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전임 정부에서 ‘탈원전’이 추진되는 동안 움츠러들었던 원전산업을 복구해야 하는 동시에, 다시 고개를 들게 된 사용후 핵연료 문제도 풀어나가야 한다. 한수원의 적자 규모가 늘어나고 있는 상태다. 원전산업 활성화와 안전성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셈이다. 황주호 사장 체제 한수원의 청사진은 무엇일까.

5월23일 오전 서울 중구 충정로의 한국수력원자력 방사선보건원 사무실에서 만난 황주호 한수원 사장이 “원자력은 한국 에너지 안보의 첨병”이라고 말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5월23일 오전 서울 중구 충정로의 한국수력원자력 방사선보건원 사무실에서 만난 황주호 한수원 사장이 “원자력은 한국 에너지 안보의 첨병”이라고 말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탈원전은 무지라기보다 이념적 저항”

윤석열 정부가 탈원전을 공식 폐기한 후 취임한 첫 사장이다. 정부의 ‘원전 드라이브’ 기조는 확실하지만, 일각에선 여전히 원전의 안전성에 의문을 품고 있는데.

“탈원전은 무지(無知)라기보다 이념적 저항이었다고 본다. 재생에너지 100%가 가능하다는 주장에 간단한 질문을 하고 싶다. 2020년 여름 50일 동안 장마가 왔다. 당시 재생에너지 이용률은 한 자리 숫자도 안 됐다. 14세기 중반엔 유럽에 150일 동안 장마가 있었는데, 이후 흑사병이 돌았다. 지금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부족한 재생에너지를 무엇으로 메꿔야 하겠나. 자연은 자비롭지 않다. 자비로워야 할 이유도 없다. 핵심은 밀도 높은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에너지 민주주의’ 차원에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시선도 많은 게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정치철학이고, 에너지는 삶과 기술의 문제다. 두 개념은 양립하기 어렵다. 엉터리 개념이다. 에너지 민주주의라고 하면, 마치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에너지를 쓰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러나 국내 100kW 이상 태양광발전소 등록 사업자 수가 13만이다. 이들이 전기를 팔아서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주겠나. 오히려 에너지 기본권을 보장하려면, 한수원 같은 공기업이 원자력의 발전 효율을 높여 값싸게 전기를 공급해야 한다. 이런 게 에너지 민주주의다.”

황 사장은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탄소중립’을 실천할 수 있다는 시각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황 사장은 직접 국가별 실시간 전기 생산량과 탄소 배출량을 보여주는 앱인 ‘Electricity Map’을 제시하며 “태양광만으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오전 11시 기준 해당 지도에 표시된 1kWh당 탄소 배출량은 프랑스가 24g, 독일이 407g으로 20배 차이였다. 프랑스는 원전 설비를 확충했지만 독일은 탈원전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국가다. 황 사장은 “탄소중립 차원에서 태양광 설비를 늘린 독일의 탄소 배출량이 오히려 많지 않나. 재생에너지가 탄소중립이라는 거짓말 좀 그만하라”고 했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5월23일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실시간으로 1kWh당 탄소 배출량을 표시해 주는 ‘Electricity map’ 앱을 보여주며 유럽의 현황을 설명하는 모습 ⓒ 시사저널 이종현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5월23일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실시간으로 1kWh당 탄소 배출량을 표시해 주는 ‘Electricity map’ 앱을 보여주며 유럽의 현황을 설명하는 모습 ⓒ 시사저널 이종현

재생에너지를 배척하자는 건가.

“그렇지 않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국내에서 생산 가능한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도 상당량 갖고 있어야 한다. 적절한 수준으로 재생에너지가 확대 생산되는 데 찬성한다. 다만 재생에너지도 결국 기술이 핵심이다. 초격차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결국 인건비 싸움에서 중국에 진다.”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은 세계적 트렌드다. RE100이 비현실적이란 말로 들리는데,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RE100을 ‘CF100’으로 현실화하자는 움직임이 한국 주도로 일고 있다. CF100은 무탄소 에너지 100%를 생산하는 데 재생에너지 외에 원자력에너지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국이 주도해 ‘CF100 포럼’을 만들었다. 한국이 CF100의 국제적인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원전 업계의 주장이다.”

CF100에 해외 국가들이 동참하겠나.

“해외 국가들도 CF100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프랑스는 자국을 주축으로 하는 ‘유럽 원자력 동맹’을 만들었다. 처음 11개국에서 현재 16개로 동맹국이 늘었다. 프랑스 측에 한수원이 해당 동맹을 지원할 테니 CF100에 참여할 것을 제안했더니 동의하더라. 프랑스뿐만 아니라 해외 다수 국가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원전산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들 국가도 RE100보다 CF100이 나을 거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5월23일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RE100(재생에너지 100%)’보다 ‘CF100(원자력을 포함한 무탄소 에너지 100%)’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5월23일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RE100(재생에너지 100%)’보다 ‘CF100(원자력을 포함한 무탄소 에너지 100%)’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원전 수주 위해서도 최선 다할 것”

황 사장의 말처럼, 한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은 탈원전 정책을 속속 폐기하고 있다. 프랑스·벨기에·영국 등 유럽 일부 국가는 원전 가동 기한 연장과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밝힌 상태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인프라 투자법 등을 통해 원전 사업자 지원을 확대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자체 기술로 대량의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원자력으로 눈을 돌린 결과다. 원자력이 에너지 안보와 직결된다는 게 원전 업계의 인식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원자력이 에너지 안보 확보의 핵심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국내 에너지 수송 루트를 보면, 전부 안보 취약 지구를 지나간다. 호르무즈해협, 말라카해협, 대만해협을 통해 들어온다. 분쟁의 위험이 큰 지역이다. 그에 비해 원자력은 기술적으로 준국산 에너지인 데다, 핵심 연료인 우라늄은 전 세계에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한국이 원자력 개발을 택했다는 것은 큰 혜안이었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 원전 사업자로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앞으로 국가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 달성,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데이터센터 수요 등 전력 수요 증가를 고려하면 원전의 필요성은 더욱 커질 거다. 그 일환으로 운영 허가 기간이 만료되는 원전에 대한 계속운전을 추진 중이다. 4월8일 정지된 고리 2호기를 비롯해 향후 7년 이내 원전 10기를 10년 계속운전을 하면 약 107조원의 국가 에너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또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신한울 3, 4호기를 10년 내 준공하는 것을 목표로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다.”

국내 원전 건설 재개 외에도 해외 수출을 통해 원전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실적으로 원전 수출을 늘리는 게 가능하겠나.

“한국이 설계·건설·운영 모든 측면에서 초격차를 갖기 전엔 세계시장을 제대로 확보하긴 쉽지 않다. 원자력 수출은 국제·정치적 영역에 가까워서 한계가 분명히 있다. 원전 생태계를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전략을 잘 짜야 한다. 결국 한미가 협력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은 원전 생태계가 안 좋은 편이지만 원자력을 세일즈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한국은 공급 체계는 강하지만 판매력이 약하다. 양국이 힘을 합쳐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일정에 한수원도 동행한 것으로 안다. 한미의 원자력 협력을 위해 무슨 노력을 했나.

“원자력 생태계에선 농축우라늄 공급 문제가 중요하다. 전 세계 농축우라늄 시장의 반 정도를 러시아가 갖고 있다. 지금까지는 안정적으로 공급받았지만, 러시아 제재 문제가 얼마나 갈지 모르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번 방미 일정에서 미국의 우라늄 농축 회사와 공급계약을 맺었다.”

원전 수출 사업은 어느 정도 진행됐나.

“체코와 폴란드 원천 수출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체코 사업은 지난해 11월말 입찰서를 성공적으로 제출했고, 폴란드와는 일종의 가계약을 맺은 상태다. 이 밖에 핀란드와 네덜란드의 문도 두드리고 있다. 특히 핀란드는 러시아와 원전 계약을 맺은 것을 파기한 상태다. 2기 기준 20조원 규모일 것으로 추산된다. 유럽 시장이 가장 안정적인 시장일 것으로 보고, 원전 수주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수출을 원활히 하려면 재정 상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수원은 지난 1분기 적자 전환했다. 대안이 있나.

“2022년도 평균 원자력발전 단가가 kWh당 52원인데, 올해 한수원이 전력거래소에서 받은 전기요금은 35원이다. 발전 단가보다 20~30원 손해 보면서 팔았다는 얘기다. 지난해 600억원의 적자가 났고, 올해 1분기에만 2500억원 적자다. 값이 싼 발전원을 빼고 비싼 발전원을 돌리는 만큼 전기요금을 올렸어야 한다. 이런 구조하에선 수출을 활성화하기 어렵다. 에너지 민주주의라는 현혹스러운 단어로 한국의 에너지 시스템 자체를 망쳐버린 결과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운영하는 고리원자력본부. 왼쪽부터 고리원전 1·2·3·4호기 ⓒ 한수원 제공
한국수력원자력이 운영하는 고리원자력본부. 왼쪽부터 고리원전 1·2·3·4호기 ⓒ 한수원 제공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 조속히 통과를” 

원전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선 사용후 핵연료(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 해결이 필수적이다. 사용후 핵연료의 국내 임시 저장시설이 10년 내 저장 한계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국내 방사성폐기물(방폐물) 처리장은 2015년부터 가동한 경주 처분장이 유일하다. 그러나 이마저도 작업복이나 장갑 등 방사능 농도가 낮은 폐기물만 처리할 수 있다. 고준위 방폐물을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은 전무하다. 사용후 핵연료의 안전한 관리 방안이 담보되지 않는 한 계속운전, 신규 원전 건설 등 한수원의 계획은 모두 ‘반쪽’에 불과하다.

사용후 핵연료 문제 해결은 원전 수출의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2022년 유럽연합(EU)이 공개한 녹색분류체계 ‘EU택소노미(Taxonomy)’엔 2050년까지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 가동 계획을 마련해야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본다는 조건이 달렸다. 통상 원전을 수주할 때 수십조원의 자금을 외국 은행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종의 국제 표준인 EU택소노미의 전제 조건을 무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원전 업계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에 처리장 확보 시한을 ‘2050년’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 처리 관련 논의는 공전 중이다. 여당에서 2건, 야당에서 1건의 특별법이 발의된 상태지만,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 용량을 두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황 사장은 “원자력은 결국 신뢰가 중요한 산업이다. 신뢰는 법에서 나온다”며 정치권을 향해 “제발 특별법 통과에 힘써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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