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만 외쳐도 불법? 긴장감 속 경찰은 캡사이신 훈련까지 포함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05.2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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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야간 문화제 강제해산‧연행
尹 “엄정 대응” 직후 고강도 훈련 시작…격한 충돌 우려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노동단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하 공동투쟁)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려던 야간 문화제를 경찰이 원천봉쇄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노동단체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려던 야간 문화제를 경찰이 원천봉쇄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야간 문화제와 노숙 농성을 ‘불법 집회’로 간주, 강제해산과 연행을 반복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동일한 장소에서 비슷한 성격의 행사가 열렸지만, 경찰이 강제 해산에 나선 적은 없었다. 경찰은 ‘불법 미신고 집회’에 해당하므로 정당한 법 집행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노동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엄정 대응’ 한 마디에 모든 게 달라졌다고 분개하고 있다. 대통령의 주문 직후 경찰은 캡사이신 분사 등 대대적인 집회 해산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야간 문화제를 진행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경찰력에 가로막혔다. 이날 일찍이 펜스를 설치해 문화제를 사전 차단한 경찰은 저녁이 되자 금속노조 차량을 견인하려 시도하며 주최 측과 대치했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 3명이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오후 8시 무렵부터 경찰 펜스 인근에서 문화제를 이어간 참가자들은 ‘폭력 경찰 규탄’을 외쳤고 곧장 경찰은 이들을 향해 불법집회 해산 명령을 내렸다.

문화제 관계자들은 정부와 경찰을 향해 규탄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과 비정규직 노동단체 ‘비정규직 이제 그만 공동투쟁’ 측은 “그동안 경찰과 조율해가며 평화롭게 문화제와 노숙 농성을 진행했는데, 윤석열 대통령 말 한 마디에 모든 게 바뀌었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지난 3년 간 약 20차례 같은 곳에서 같은 ‘비폭력’ 방식으로 문화제와 노숙 농성을 진행해왔으며 그간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된 바는 없었다.

공동투쟁은 “(경찰이) 경찰청장 지시도 있고 대통령 발언도 있어 지난번처럼 조율해서 진행하기 어렵다고 했다”며 “(경찰) 스스로 집회 금지 통보가 경찰청장과 대통령의 집회 시위에 대한 강경 대응 입장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정부와 경찰이 ‘자의적’인 기준으로 문화제에 ‘불법’ 낙인을 찍고 있다는 주장이다.

25일 서울 중구 서울경찰청 기동본부에서 경찰 기동대원들이 불법 집회·시위 해산과 불법 행위자 검거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서울 중구 서울경찰청 기동본부에서 경찰 기동대원들이 불법 집회·시위 해산과 불법 행위자 검거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 ‘코피’ 날 만큼 해산 훈련 몰두…‘자의적’ 잣대 논란 지속

실제 집회에 대한 정부와 경찰의 갑작스런 강경 대응을 두고 ‘기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야권과 시민단체는 법원의 판례와 국제사회 기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경찰이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경찰은 문화제를 목적으로 모였다 하더라도 이들이 단체로 ‘구호’를 반복해 외치는 등 의사표시를 하면 ‘불법 미신고 집회’로 규정해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같은 목표를 갖고 모인 이들이 함께 구호를 외쳤다고 해서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건 어불성설이며, 숱한 범죄자를 발생시킬 수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또 정부는 앞서 ‘불법 전력이 있는 단체’에 대해 집회‧시위는 사전에 제한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이 부분 역시 법원에선 ‘정부가 단체의 전력을 이유로 이들의 집회를 금지해선 안 된다’ 고 일관되게 판단해왔다. 실제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도 경찰이 불법 시위 전력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하자 주의 조처를 내리라고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에도 경찰은 강경 대응 기조를 날로 굳건히 하고 있다. 특히 경찰은 지난 23일 윤 대통령의 ‘엄정 대응’ 주문이 있은 후 곧장 집중 훈련에 돌입해 눈길을 끌었다. 윤 대통령은 당시 국무회의에서 “민노총(민주노총)의 집회 행태는 국민들께서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는 그 어떤 불법 행위도 방치, 외면하거나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서울경찰청 기동본부는 윤 대통령 발언 바로 다음날인 24일부터 대대적인 불법 집회 해산 훈련을 실시했다. 경찰의 이번 집회‧시위 해산 훈련은 6년 만으로, 다음 달 14일까지 3주 간 집중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훈련은 실전처럼 강도 높게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첫날 서울청 시범 훈련에서는 시위대 대역을 한 경찰 기동단원이 진압 방패에 맞아 코피를 흘리는 상황이 연출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시위자들이 해산 명령에 불응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방송장비를 압수하는 훈련과 검거를 하는 훈련 등에 집중했다.

경찰의 이번 훈련 가운데는 ‘캡사이신 분사’ 전술 훈련도 포함된 거로 확인됐다. 나아가 지난 2016년 ‘백남기 농민 사망’ 이후 사용이 중단된 살수차의 재도입까지 제기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살수차 사용 가능성에 대해 경찰은 ‘집회 양상을 종합해 판단하겠다’는 모호한 입장만 밝힌 상태다.

이처럼 경찰이 집회에 대해 강경 대응으로 급선회하고 진압의 수위를 높여가면서 강 대 강 대치에 대한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26일 전국 18개 시‧도청장과 경찰서장이 참석하는 ‘경찰 지휘부 화상 회의’를 열고 “불법 집회에 대해 해산 조치를 적극 검토하라”고 다시 한번 엄정 대응을 주문했다. 이에 노조 측도 끝까지 맞서 투쟁할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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