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지로는 방에서 나갈 수가 없어요” 청년들이 ‘고립’되고 있다 
  • 박나영·이원석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02 10:05
  • 호수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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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기 고립 경험은 전 생애에 흉터…“사회가 선제적 개입 필요” 목소리 높아
전문가 “고립 방치하면 우울증이 자살과 사회공동체 위기로 이어질 수도”

“가족이 아닌 사람과 대화하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요.” 인적이 드문 서울 사당동의 한 놀이터에서 기자와 만난 장영수씨(가명·28)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늦은 시간, 놀이터를 약속 장소로 정한 것도 장씨였다. 사람이 많은 곳에선 만나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장씨는 내내 경계하듯 주변을 살폈다. 사람이 지나가면 말을 멈추고, 고개를 푹 숙이기도 했다. 

장씨는 5년쯤 전부터 스스로를 방 안에 가뒀다. 밥 먹을 때와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곤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지인들과의 관계도 대부분 끊었다. 집 밖을 나서는 건 두세 달에 한 번 이발을 하거나 꼭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갈 때뿐이다. 주로 게임을 하거나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보면서 하루를 보낸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도 내내 화면에 갇혀 있다가 아침이 되면 잠자리에 든다. 오후 늦게 일어나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똑같은 하루를 반복한다. 가족과도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다. 밥도 가족을 피해 홀로 차려 먹는다. 몇 년째 명절에도 집에 홀로 남았다. 

ⓒ시사저널 이종현

“저도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걸 알아요”

20대 초반까지 장씨는 평범했고 활달했다. 중·고등학교 때 성적도 상위권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주로 분위기를 리드하는 편이었고, 대학에서는 학생회 임원을 맡기도 했다. 입대를 약간 늦게 하긴 했으나 군에서도 선·후임들의 신임을 두루 받았다. 그런데 군에서 제대한 후부터 약간의 우울감이 생겨났다. 취업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군대를 일찍 다녀온 동기들과 후배들의 취업 소식은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특히 “반드시 좋은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는 가족과 친척들의 말들이 늘 귓가에 맴돌았다. 졸업을 앞두고 여러 회사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졸업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점점 자신의 처지를 사람들에게 말하는 게 힘겨워졌고, 지인들의 연락을 피하기 시작했다. 자신감은 갈수록 더 떨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취업에 대한 의지도 사라졌다. 걱정을 잊게 해주는 게임과 동영상에 빠졌다. 게임이 질릴 때쯤엔 어느새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좁은 방 안에 갇혔다. “처음엔 그저 회피였고, 조금 지나니 편해졌고, 나중엔 고통스러웠지만 그땐 이미 너무 늦어버렸죠. 더 이상 제 의지로는 방에서 나갈 수 없었어요.”   

벗어나려는 노력을 아예 안 했던 건 아니었다. 고통스럽게 지켜보던 가족의 애원에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몇 년의 공백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다시 방으로 숨어들었다. 장씨는 그러한 시선이 원망스럽진 않다고 했다. “제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알죠. 누굴 탓하겠어요. 가족에게도 미안할 따름이에요. 절 지켜보면서 많이 힘들어하고, 죄책감만 남겨줬죠.” 어느새 장씨 눈가는 촉촉해져 있었다.

‘지금도 젊다’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 ‘당신은 할 수 있다’는 기자의 위로에 장씨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걸 알아요. 나이가 젊은 것도 맞죠. 요즘 부쩍 일을 다시 하고 싶다, 여자친구도 사귀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정상인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요. 하지만 모르겠어요. 저라는 사람은 5년 전에 멈춰있는데, 세상은 끊임없이 변해 왔잖아요. 정말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질문이 아니라 ‘하고 싶다’는 애원처럼 들렸다.

ⓒ시사저널 이종현

청년 100명당 5명 ‘고립·은둔’…BBC도 한국 상황에 주목

장씨는 TV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한 인물이 아니다. 바로 우리 옆집에 살고 있거나 친척 또는 지인 중에 존재하는 청년이다. 한국의 청년 53만8000명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방 안에 머무르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이 상태를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고립·은둔’ 청년이 더 늘어나고 이 상태가 장기화할 경우 중·장년 고립으로 이어져 개인의 위기는 물론 공동체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히키코모리’ 문제를 청소년 문제로 국한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일본의 실패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는 조언이다.    

5월14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발표한 ‘고립·은둔 청년 현황과 지원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9∼34세 청년 177만6000명 가운데 고립 청년은 53만8000명(5.0%)에 이른다. 청년 100명당 5명꼴이다. 보사연 연구진이 통계청 사회조사 원자료를 분석한 수치로, ‘동거하는 가족 및 업무상 접촉 이외 타인과의 유의미한 교류가 없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지지 체계가 없는 경우’를 ‘고립’ 상태로 보고 있다. 

고립·은둔 상태의 청년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크게 늘어났다. 보사연의 직전 조사인 2019년 고립·은둔 청년의 비율은 3.1%였다. 불과 3년 만에 20만4000명가량 증가한 것이다. 고립·은둔 청년의 삶의 만족도가 전반적으로 낮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이들 중 삶에 ‘매우 불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은 17.2%로, 비고립 청년(4.7%)보다 3배 이상 많았다. 주관적 소득 수준에 대해서도 ‘매우 부족하다’고 답한 고립 청년(32.8%)의 비율이 비고립 청년 응답률(16.9%)보다 두 배나 높았다. 

세계도 한국의 이 같은 현상에 주목했다. 영국의 BBC방송은 세계 최저의 출산율, 생산성 저하와 싸우고 있는 한국에서 고립·은둔 청년들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BBC는 고립·은둔 청년들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한국에서 점점 더 많은 젊은이가 사회의 높은 기대치에 압박받아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길을 택한다고 분석했다. 사회나 가족의 성공 기준에 부응하지 못하고, 통상의 진로를 따르지 않는 경우 사회 부적응자 취급을 받는 것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일본은 평균 고립 기간 12년9개월…한국은 ‘1~4년’이 가장 많아

고립·은둔은 관계가 단절되면서 시작된다. 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사단법인 씨즈가 246명의 고립·은둔 청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례 조사를 들여다보면 이들 대부분이 ‘관계’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집 밖으로 나가야 할 일(의식주 해결을 위한 외출, 병원 등)이 있으면 선택적으로 집 밖으로 나간다. 나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보다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더 어려움을 느낀다. 

이들이 고립 상태에서 겪는 심리는 씨즈가 분석한 상담일지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씨즈 상담에 응한 청년들의 정상회기 및 조기종결 상담일지를 과거·현재·미래로 분류해 분석한 결과, 과거에 ‘무기력·우울·고립’ 등의 경험이 있는 이가 많았으며 이로 인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현재를 나타내는 주요 단어는 ‘고립·우울·도움(필요)·변화(필요)’ 등이었으며 미래와 관련해서는 ‘압박·불안·두려움’ 등을 표현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이들의 고립·은둔 상태가 장기화하는 것이다. ‘히키코모리’ 역사가 40년 가까이 되는 일본의 경우 이들의 평균 고립 생활 기간이 12년9개월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씨즈 조사 결과 한국의 고립·은둔 청년(246명 중 223명 답변) 중에는 1~4년 고립 기간을 경험했다는 이들이 47.5%(117명)로 가장 많았다. 코로나19 유행과 겹치는 기간이다. 다음은 5~9년 19.5%(48명), 1년 미만 13%(32명), 10년 이상 10.6%(26명) 순이었다. ‘모르겠다’고 답변한 23명 중에는 ‘고립감을 느낀 지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 오랜 기간’이라고 답변한 이도 있었다. 

김성아 보사연 부연구위원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필연적이었던 물리적 거리두기는 지금에 이르러 사회적 관계의 양상을 변화시켰다. 특히 독립된 성인으로서 삶과 사회활동을 시작하는 청년들에게 고립의 경험은 중장년, 노인으로 나이 들어가는 전 생애에 흉터를 남길 수 있다. 고립된 청년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시기를 지속한다면 고립된 장년·중년·노인으로 남은 생애를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 청년기에 선제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5월25일 일본 나가노현 나카노시에서 31세 청년이 흉기와 사냥총으로 여성과 경찰관 등 4명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청년은 전형적인 히키코모리였다. 대학 중퇴 후 부모, 고모와 함께 4명이 살았지만 ‘은둔형 외톨이’가 된 그는 집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최근 국내에서도 종종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5월26일 부산의 한 20대 여성이 과외앱을 통해 처음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여성은 평소 혼자 방 안에서 범죄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하고 컴퓨터로 살인을 검색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중인 경찰은 이 여성이 가족 외에 별다른 사회적 유대관계를 맺지 못했고, 폐쇄적인 성격에 고등학교 졸업 후 특정한 직업도 없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은둔형 외톨이나 조현병 환자들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특히 높다거나 더 위험하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한다. 다만 고립 시기가 길어지고 고립감이 깊어질수록 우울증이 생기면서 자살에 이르거나 공동체를 파괴하는 등 사회문제화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경고하고 있다. 특히 취업난과 경제적 어려움에 내몰린 청년들의 스트레스가 큰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얼마 전 우리 사회를 깜짝 놀라게 했던 아시아나항공기 비상구 출입문 사건 범인인 30대 남성 역시 경찰 조사에서 “실직 등으로 인해 답답함을 느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업난·실직 등으로 스트레스 가중…항공기 사고도 일으켜    

전문가들은 고립·은둔 청년들에게서 상황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확인돼도 그 선택은 반드시 스스로 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런 의미에서 씨즈가 마련한 온라인 가상공간인 ‘두더지땅굴’은 고무적이다. 오프라인으로 운영되는 센터는 고립·은둔 청년의 가족이나 지인이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두더지땅굴은 스스로 상담이나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씨즈 관계자는 “현재까지 상담이나 지원을 요청한 467건 중 76%가 본인이 스스로 요청한 것”이라면서 “서울에 1인 가구 청년이 많은 점,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특성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자체들이 지원사업을 시작했지만 걸음마 단계다. 광주광역시는 2019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해당 조례는 고립·은둔 청년들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지원위원회 설치·운영을 규정하고 구체적인 지원 방안도 적시했다. 시장은 5년마다 ‘광주시 은둔형 외톨이 지원 기본계획’을 세우고 3년마다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 지난 4월에는 서울시도 고립·은둔 청년 지원 종합계획을 발표하는 등 현재까지 전국 16개 지자체·자치구에서 은둔형 외톨이 조례가 제정됐다. 

정부 차원의 지원사업은 아직 한 걸음도 떼지 못한 상황이다. 복지부는 고립·은둔 청년들을 새로운 복지 수요로 명시했다. 우선은 전국 단위 첫 실태조사를 통해 정확한 현황과 고립·은둔 이유 등을 파악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최종균 인구정책실장과 담당자들이 고립·은둔 청년들의 활동공간인 ‘두더집’을 방문해 그들이 겪은 상황과 극복사례 등을 듣고 정책 방향을 정하기 위한 의견을 수렴하기도 했다. 복지부 인구정책총괄과 관계자는 “관련 예산을 신청했고, 예산이 확보되면 시범사업을 하려고 계획 중이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앞서 국정과제로 고립·운둔 청년과 관련한 정책을 제시한 바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청년소통TF 단장직을 맡았던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은 “관련된 지원 예산이나 사업을 만들려면 법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 입법 미비 상태”라며 “최근 청년재단과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이 함께 토론회를 열고 전문가들 의견을 바탕으로 고립·은둔 청년이나 취약계층 청년을 돕는 지원 법안인 청년복지법을 발의했다. 공동발의자에 김기현 당대표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급적 올여름에는 법안이 통과돼야 이에 근거해 내년도 예산안에 고립·은둔 청년 사업이 많이 편성이 될 수 있다. 정치적 쟁점 법안이 아니니 민주당도 관심을 갖고 초당적인 협력을 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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