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 ‘청소년 문제’로 국한했던 일본의 실패에서 배워야”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02 12:05
  • 호수 175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이은애 사단법인 씨즈 이사장 “팬데믹이 불안정 고용으로 연명하던 청년 취약층 강타”

이은애 사단법인 씨즈 이사장은 고립·은둔 청년들이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누가 됐든 의미 있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센터를 세워놓고 도움을 요청하기를 기다리는 방식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 적극적인 발굴만이 청년 고립의 장기화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씨즈는 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기관으로, 온라인 플랫폼 ‘두더지땅굴’을 통해 고립·은둔 청년이 상담과 지원을 받도록 돕고 있다.

이은애 사단법인 씨즈 이사장 ⓒ시사저널 이종현

씨즈가 고립·은둔 청년들을 돕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씨즈는 2010년 사회적 경제 지원 기관이나 청년 관련 단체들이 모여 ‘사회 혁신의 세대 계승이 안 되면 한국 사회에 미래가 없다’는 고민을 나누면서 시작됐다. 초반 10여 년간 청년 사업가와 이들이 운영하는 벤처기업을 돕는 일에 주력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이들 기업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됐고 실직 등으로 잠적하는 청년이 많아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팬데믹이 각 나라의 가장 취약한 곳을 건드렸는데, 미국에서는 이민자와 유색인종 등 저급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피해를 보았고, 한국은 소상공인과 소상공인 아래서 불안정 고용돼 연명하고 있던 청년들이 직격타를 맞았다. 이 청년들이 일자리나 주거 빈곤 외에도 사회정서적인 빈곤, 즉 다차원 빈곤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됐다. 이들을 발굴하고 도울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년들이 겪는 다차원 빈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이전에는 고립·은둔 청년들을 심리·정서적 문제나 가정 양육의 태도 문제, 학교폭력 피해 문제 등 개별화해 다뤄왔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훨씬 복합적인 요인들이 청년들의 빈곤 문제와 닿아있다. 가구 소득이 높아도 관계의 빈곤을 겪는 청년들이 있고, 1인 가구로 살면서 주거·위생·영양 외에 사회정서적인 부분까지 다차원적으로 빈곤을 경험하는 청년이 많다.” 

그들을 돕기 위해 어떤 사업을 하고 있나. 

“가장 차별화된 것은 그들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두더지땅굴’을 만든 것이다. 고립·은둔 청년 몇백 명을 접해 보니 고립 상태에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은 인생의 성공을 경험하는데 나는 ‘루저’로서 그들의 인생을 훔쳐만 본다’고 느끼며 좌절감이 더 깊어진다고 한다. 또 상당수 남자 청년은 일베 사이트에 들어가 극단적인 원망을 품은 경험이 있다고 얘기했다. 방 밖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온라인을 통해 비슷한 사람들끼리 연결되고 지지망을 구축해 응원할 수 있도록 했다. 월세가 밀리면서 집주인이나 고시원 총무와 마주칠까 봐 숨어 살던 청년들이 긴급 생계비 지원이나 상담 신청 등 SOS를 칠 수 있는 플랫폼이 작동하게 된 것이다.”

오프라인 만남도 자주 가지나.

“고립·은둔 청년들이 나와서 머무를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빌딩을 개조한 공간은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있어 단독주택 2층 공간에 이들이 머무를 공간 ‘두더집’을 만들었다. 목공, 요리, 바느질 등 취미활동을 함께 하거나 일상성을 찾을 수 있는 집밥 모임으로 외출을 유도한다. ‘몇 달 동안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청년들이 와서 책을 읽거나 넷플릭스를 보거나 누워있다가 가는 공간이다.”    

 

“일본과 달리 한국 고립 청년은 1인 가구 많아”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청년들은 어떻게 찾나.

“‘청년발굴단’을 만들어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청년단체에서 활동한 분들을 재교육시켜 고시촌과 원룸촌을 찾아다니며 물색한다. 원룸 주인과 고시원 총무들에게 고립·은둔 청년들의 특징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의외로 동네에서 고립·은둔 청년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편의점 알바생이다. 공공기관뿐 아니라 편의점과 배달서비스 업체 등으로 협력망을 넓히려 한다.”

일본의 히키코모리와 한국 고립·은둔 청년 간에 차이점이 있나. 

“일본이 한국 고립·은둔 청년들을 보고 가장 놀라는 점은 1인 가구가 많다는 것이다. 굶어죽는 청년이 많지 않냐고 묻기도 했다. 실제로 쓰레기집에 살거나 심각한 영양 문제를 겪고 있는 청년이 많다. 일본은 고립·은둔 청년들이 부모와 사는 경우가 많아 가족이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 사례에서 배울 점이 있나.

“일본이 이제 와서 후회하는 점은 히키코모리 현상을 청소년 문제로 국한해 다룬 것이다. 이지메(왕따)로 인한 등교 거부를 교육 차원의 문제로 봤기 때문에 제도 교육이 끝나면서 손을 놔버렸다. 이들이 집 안으로 숨어들어 중·장년 고립으로 장기화하면서 다시 사회문제가 됐다. 적극적인 발굴이 중요한 이유다.” 

현 정책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복지부에서 씨즈를 방문해 의견 수렴을 했고 올 하반기에는 시범사업을 함께 해보자고 해서 기대감을 갖고 있다. 일본에 히키코모리 센터가 89개 있는데도 아직까지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찾아오도록 하는 ‘소극 행정’이었기 때문이다. 복지관 세팅으로 도움을 요청하길 기다리는 방식으로는 해결하기 힘들 것이다.” 

☞ ‘은둔형 외톨이’ 특집 연관기사
“내 의지로는 방에서 나갈 수가 없어요” 청년들이 ‘고립’되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 고립 경험, 자살 시도 최대 17배 늘린다”
“히키코모리를 ‘청소년 문제’로 국한했던 일본의 실패에서 배워야”
日 ‘히키코모리의 고령화’ 문제,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