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히키코모리의 고령화’ 문제,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 박대원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6.02 12:05
  • 호수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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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연루 등 복잡한 사회문제로 확대 재생산 
전국 79개 이상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 운영하며 예방에 총력

코로나19 팬데믹으로부터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문제가 재차 주목받고 있다. 히키코모리는 일반적으로 ‘직장·학교 등 가정 밖에서의 사회적 활동을 회피하고 6개월 이상 집 안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로 정의된다. 히키코모리의 패턴은 꽤 다양하다. 6개월 이상 자신의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 경우나 방 밖으로는 나가지만 집 밖으로는 나가지 않는 경우 ‘협의의 히키코모리’로 분류된다. 집 근처 도서관이나 편의점 등 간단한 외출 혹은 취미생활을 위한 외출만을 하는 형태는 ‘광의의 히키코모리’에 해당한다. 정신질환이나 신체적 장애로 인해 히키코모리가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학교나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방 안에 틀어박혀 생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옴니버스 영화 《도쿄!》 중 봉준호 감독이 만든 《흔들리는 도쿄》 한 장면 ⓒ
옴니버스 영화 《도쿄!》 중 봉준호 감독이 만든 《흔들리는 도쿄》 한 장면

80대 부모가 50대 히키코모리 자녀 부양

일본 내각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아동 및 청년층의 의식과 생활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만 15세부터 69세에 해당하는 일본 국민 중 146만 명이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고 있다. 또한 히키코모리의 약 20%가 은둔형 외톨이가 된 주된 이유로 ‘코로나19 유행’을 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로 인한 개인의 수입 감소나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 변화가 히키코모리 현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코로나와 히키코모리의 연관성이 지적되는 가운데 코로나 이후 일상 회복과 관련해 일본 정부와 사회가 히키코모리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재활성화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에서 히키코모리 문제가 다시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히키코모리와 관련된 사회문제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히키코모리의 고령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에서 히키코모리 현상이 처음 주목받았던 1980~90년대에는 10대 청소년들이 이지메(왕따) 등의 이유로 등교를 거부하고 집 안에 틀어박혀 생활하는 것이 히키코모리의 보편적인 형태였다. 그러나 청소년기부터 히키코모리 생활을 해온 사람들이 사회활동 없이 장기간 부모와 함께 거주하면서 연금수령 세대인 부모(80대)가 중장년층이 된 히키코모리 자녀(50대)를 부양하는 이른바 ‘8050 문제’가 또 하나의 사회문제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히키코모리와 관련된 각종 범죄도 증가하고 있다. 2019년 6월에는 농림수산성 사무차관을 지낸 70대 남성이 히키코모리인 40대 아들을 살해해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렸다. 비슷한 사례는 2021년 4월에도 발생했다. 70대 여성이 히키코모리인 40대 아들이 인터넷 쇼핑 등으로 생활비를 탕진하자 아들을 살해한 것이다. 이에 더해 히키코모리 당사자에 의한 범죄도 계속 보고되고 있다.

2019년 5월에는 가와사키에서 50대 히키코모리 남성이 초등학생들을 향해 흉기를 휘두른 후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올해 5월25일에도 나가노현 나카노시의회 의장의 아들로 알려진 히키코모리 남성(31세)이 대낮에 산책 중인 여성 2명을 흉기로 찌른 후 자택으로 도주해 엽총으로 경찰 2명을 살해하는 이른바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수사 관계자에 따르면 용의자는 이전부터 총기에 관심이 많아 취미로 클레이사격을 하는 한편, 유해조수(야생동물) 피해 방지를 위해 자택에 엽총을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취업 지원·치료에서 ‘반주형’ 지원으로 전환 

일본 후생노동성은 점차 복잡·다양하게 변형되는 히키코모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8년 4월까지 전국 47개 도도부현 및 20개 정령지정도시(인구 50만 명 이상)에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를 설치했다. 지난해부터는 기초자치단체까지 지역지원센터를 확충함으로써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가 연계해 상담 지원, 거주 공간 제공, 네트워크 형성을 일괄적으로 지원하는 ‘히키코모리 지원 스테이션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과거의 히키코모리 지원이 ‘직장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와 사회생활을 할 것’이라는 사고방식에 기반한 ‘취업 지원’ 혹은 병원에서의 ‘치료’를 권유하는 방식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실태조사 및 상담을 통해 실제 히키코모리 당사자가 가장 필요로 하는 지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반주형’(伴走型·마라톤에서 경주자에게 힘을 북돋워주기 위해 경주자 옆에서 함께 달리는 행위) 지원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후생노동성은 히키코모리 지원을 위한 홈페이지(히키코모리 Voice station)를 개설해 히키코모리 당사자, 가족 및 지원자가 히키코모리 관련 상담이나 이벤트 관련 정보를 얻고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히키코모리 경험자가 사회에 복귀한 사례를 소개하는 사례집이나, 히키코모리 및 가족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모은 책자도 온라인상에서 확인 가능하다. 5월9일에는 히키코모리 당사자나 가족을 지원하기 위한 매뉴얼을 2024년까지 작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히키코모리 패턴 및 이와 관련된 사회문제가 복잡·다양화되는 가운데, 히키코모리 당사자와 가족의 실질적인 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후생노동성 내에 검토협의회를 설치하고 지방자치체의 상담창구 등을 활용해 지원 매뉴얼을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열린 대한민국 정부 국무회의에서 국무조정실이 보고한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만 19~34세 청년 중 약 24만 명이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하고 있다. 일본 내각부의 실태조사와 같이 만 15세부터 69세까지 조사 대상을 확대하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한국 정부 차원의 지원이 미흡한 실정이며 은둔형 외톨이 지원센터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광주광역시 북구에만 설치돼 있다.

지난해 4월 기준, 일본 전국에서 79개 이상의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가 운영되고 있는 상황과 크게 대비된다. 일본 정부는 ‘8050 문제’가 ‘9060 문제’(90대의 초고령 부모가 60대의 히키코모리 자녀를 부양하게 되는 문제)로 확장되고 히키코모리 관련 범죄가 증가하는 추세를 사회문제로 명확히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청년층에 한정된 실태조사 및 지원사업만 실시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일본의 경험 및 대응 방식은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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