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암흑으로 작품성·시장성·대중성 거머쥐다 
  • 반이정 미술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0.08 13:05
  • 호수 1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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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쉬 카푸어 개인전 《Anish Kapoor》 국내에서 열려…‘반타블랙’ 독점적 사용권 사들여 논란 되기도

작품성 vs 시장성. 예술을 바라보는 양강 구도다. 여기에 대중성을 더해 삼각 구도로 예술의 성향을 풀이하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일반적인 사유 방식은 작품성과 시장성, 대중성이 각기 다른 차원임을 전제한 분류법이다. 예술계에서 이런 구분은 많은 경우 사실이지만 각 성질이 중첩되는 작품도 있으므로 잘라 말하긴 어렵다.

필자는 외부 강연에서 주류 현대미술은 대중적이기 어렵기 때문에, 난해함만 탓할 게 아니며 현대미술의 역사를 대중이 차근차근 공부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당부한다. 이 조언에 서운함과 불만을 감추지 않는 이들도 있다. 현대미술의 기본 문법에 익숙한 이들에게나 다가올 작품성과 투자에 최적화돼 환금성이 높은 시장성이나 미술과 거리를 두고 사는 일반인에게도 호소력을 갖는 대중성을 두루 갖춘 예술을 만나기란 극히 어렵다. 작품성과 시장성, 대중성은 한 작품에서 운 좋게 겹칠 순 있어도 엄연히 각기 다른 성질과 지향을 띠기 때문이다.

서울 소격동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위시해 주류 갤러리들이 모여 있고, 인접한 삼청동과 나란히 ‘핫플’이라서 유동인구도 많다. 그런 이유가 컸겠지만 대중이 선호하는 블록버스터 전시가 아님에도 평일 오후 방문한 국제갤러리의 아니쉬 카푸어 개인전 《Anish Kapoor》(8월30일~10월22일)에는 적지 않은 사람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 제공
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 제공

미술가로 영국 부호 순위 876위에 올라

선데이 타임스가 영국에서 가장 잘사는 부호 1000명을 발표하는 연례 ‘부자 목록’의 2019년 보도에는 미술과 연관된 부자로 세계 최고의 미술품 수집가들이 올랐는데, 이 매체는 부자 목록에 예외적으로 극소수 미술가가 포함됐다고 소개했다. 그중에는 2008년 갤러리를 통하지 않고 단독으로 소더비 경매에 작품 218점을 출품해 한 번에 1억1100만 파운드(약 1939억원)의 수익을 올린 바 있는 데미안 허스트가 405위에 올라있었다.

또 다른 미술가로 아니쉬 카푸어가 재산 1억3500만 파운드(약 2217억원)로 876위에 올랐다. 아니쉬 카푸어는 인도 태생이지만 대영제국 훈장(CBE)까지 받은 영국 미술가로, 생존하는 영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영국 왕립미술원에서 전시를 열어 27만5000명의 관객을 불러들였고,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으로 전시가 연장되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현대미술 전시장으로 지명도가 높은 곳 말고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과 영국 호턴 홀 & 가든스 노퍽처럼 전근대기에 지어진 예스러운 궁전과 건축에 미묘하게 어울리는 현대적인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미술의 역사를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하자면 일루전과 물성을 들 수 있다. 일루전이란 2차원 평면 위에 3차원 입체감의 착시를 만드는 것으로 미술사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줄곧 이어진 미술의 본질이다. 물성은 현대미술이 출현한 20세기 중반께 주목받은 개념이다. 실제 대상을 허구로 재현하는 일루전이라는 미술의 본질을 버리고, 미술을 구성하는 캔버스, 물감 그리고 작가의 행위에 집중한 개념이 물성이다.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은 화면 위를 단색조 붓질로 가득 채운 추상회화를 떠올리면 된다. 아니쉬 카푸어는 대상을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일루전의 공식을 뒤집어, 대상을 다른 무엇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일루전을 구사해 왔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원형 조형물은 굴곡진 반사면이나 착시 현상 때문에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정한 색채의 독점권을 사들여 논란이 된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빛을 99.96% 흡수하는 물질인 ‘반타블랙’의 독점적 사용권을 아니쉬 카푸어가 사들여 다른 미술가들은 이 색을 쓸 수 없게 됐다. 반타블랙을 쓴 작품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흰 바탕에 검은색 원형을 그린 평평한 그림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작품을 측면에서 보면 단순한 2차원 원형이 아니라 앞으로 길게 돌출된 3차원 입체 조형물인 게 확인된다. 모든 빛을 흡수하다 보니 정면에서 보면 조형물의 양감을 지각하지 못해 벌어진 착시다. 착시는 사람을 홀리는 미술만의 전매특허인데, 아니쉬 카푸어는 자신만의 일루전을 독점적 브랜드로 만들어 작품성, 시장성, 대중성을 거머쥔 경우다.

아니쉬 카푸어의 이번 전시를 지배하는 색은 크게 검은색과 빨간색이다. 시선을 사로잡는 현란한 색채의 성찬이 없다. 이처럼 채색을 한두 개 단색조로 제한했던 화면이 유행한 시절이 미술사에 있다. 20세기 중반 추상미술과 미니멀리즘이 헤게모니를 얻은 때가 그랬으며 당시의 미적 키워드는 물성이었다. 물감 혹은 철판이나 돌 같은 사물 자체를 미의 정수로 봤던 시기다. 어떤 스토리도 담지 않고 물감과 사물의 물성만 앞세운 미적 유행은, 미술의 독자성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직감의 영역에서 발견하게 했다.

아니쉬 카푸어 작품들 ⓒ국제갤러리 제공
아니쉬 카푸어 작품들 ⓒ국제갤러리 제공
아니쉬 카푸어 작품들 ⓒ국제갤러리 제공
아니쉬 카푸어 작품들 ⓒ국제갤러리 제공

현란한 색의 성찬 없어도 눈길 끌어

이번 전시에서 인상에 각인되는 작품을 고르라면 거대한 물감 덩어리 같은 입체 작품을 꼽을 수 있다. 높이와 너비가 3~4m에 달하는 작품들은 그 어떤 것도 재현하지 않는다. 갤러리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고스란히 인용한 여러 언론 기사에서 보듯 “지질학적 조직이자 해부학적 내장의 모양새”로 묘사될 무정형의 외형을 띠곤 있지만, 도륙돼 핏물이 밴 고깃덩어리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거대한 덩어리 작품은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음’에 방점이 있다. 아니쉬 카푸어는 전시장 벽 사이 구석진 곳에 11kg 중량의 붉은 왁스 덩어리를 전시 기간 내내 대포로 연신 쏴대는 《구석에 대포 쏘기》(2009)나, 바닥에 거대한 원형 용기를 만들어 그 안에 담긴 물이 회오리치며 회전하는 《낙하》(2014)라는 설치작품을 통해, 모두가 일상에선 평범한 사물로 간주할 왁스나 물이 전에 없이 압도적인 물성으로 관객에게 체험되게 제시한 바 있다.

아니쉬 카푸어의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단일하게 통일된 거대한 설치물은 형언하기 어려운 형태를 띤다. 그냥 무정형이 맞다. 문학이나 영화, 연극처럼 언어를 중요한 표현으로 삼는 타 장르와 차별화된 미술의 특징으로 물성을 제시한 20세기 중반 미술은 이젠 철 지난 미적 유행으로 간주된다. 아니쉬 카푸어는 선배 세대가 물감과 사물을 이용해 단정한 외형의 작품을 제조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실리콘, 유리섬유, 왁스, 알루미늄, 물감 등 각종 사물을 끌어들여 이렇게 주장하는 것 같다. 우리 안에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미적 감수성이 분명 존재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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