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자니 환율 폭등, 올리자니 이자 폭탄…기준금리 ‘고차방정식’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3.10.0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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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긴축 장기화’ 전망에 셈법 복잡해진 한국은행
힘 얻는 ‘기준금리 인상’ 주장 속 ‘가계부채’ 변수

4분기에 돌입한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끼었다. ‘상저하고’를 기대하던 정부 전망과 달리, 고유가‧고환율‧고물가 등 3고(高) 악재에 한국 경제는 좀처럼 반등할 기회를 찾지 못하는 실정이다.

시장 안정의 키를 쥔 금융 당국으로선 고민이 깊어졌다. 경기 반등을 꾀하려면 기준금리를 낮춰 시장에 돈을 풀어야하지만, 미국과 금리 격차가 벌어질 대로 벌어진 상황이라 쉽지 않다. 반대로 금리를 올리자니, 가계와 기업의 부채 상환 부담이 문제다. 당국은 이 같은 대내외 불확실성을 모니터링하며 필요시 시장안정화 조치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오는 19일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가 열린다. ⓒ 연합뉴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오는 19일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가 열린다. ⓒ연합뉴스

미국發 ‘고금리 쇼크’ 일파만파

5일 한은에 따르면, 오는 19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가 열린다. 앞서 한은은 지난 1월 기준금리를 연 3.25%에서 연 3.5%로 올린 뒤 8월까지 다섯 차례 연속 동결했다. 시장에선 한 때 연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기대했지만, 일단 한은은 “인하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이 때문에 이번 금통위 회의에선 기준금리 동결이나 소폭 인상 안이 거론될 전망이다.

연내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꺾인 것은 미국의 긴축 장기화 가능성 때문이다. 최근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간부들을 중심으로 “수차례 금리 인상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양적 완화를 선호하는 비둘기파 인사들조차 금리 인상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시장 전망의 무게 추는 연말 기준금리 인상으로 옮겨진 상태다. 일각에선 현 5.25~5.50%인 기준금리가 7%대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하면, 현재 2%포인트로 역대 최대인 한‧미 금리 차는 재차 벌어지게 된다. 한국 금리가 미국보다 낮으면 같은 것을 사도 원화로는 더 비싼 값을 주고 사게 되는 셈이라, 매력을 못 느낀 외국인 투자자금은 빠져나간다. 이미 지난달 외국인 증권(주식+채권) 투자 자금은 17억 달러 순유출됐다. 여기에 고금리 장기화 전망에 달러화 가치가 폭등하면서 원-달러 환율은 더 크게 오르고 있다. 전날 기준 원-달러 환율은 장중 1360원을 넘어 연고점을 갈아치웠다.

미국 긴축 장기화 우려로 코스피가 2% 이상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연고점을 경신한 4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 긴축 장기화 우려로 코스피가 2% 이상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연고점을 경신한 지난 4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韓 기준금리 동결이냐 인상이냐…“일단 관망”

이 때문에 시장에선 기준금리 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8월 말 기준 1075조원 규모로 불어난 가계부채 규모를 고려하면 쉬운 일은 아니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시장 금리는 자연스레 상승하기 때문에 이른바 ‘영끌족’들의 이자 상환 부담을 키울 수 있다. 버는 것보다 이자로 내는 돈이 많아지면 소비는 위축되고 경기는 침체될 수 있다.

기업의 부채 위험성도 가계 빚 못지않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 부채는 2021년 기준 113.7%로, 외환위기 당시 108.6%를 넘었다. 이 같은 상황에 금리와 환율이 모두 치솟는다면 기업 입장에선 더 많은 비용으로 외화 빚을 갚아야 한다. 또 국내 부채의 대부분은 부동산 시장에 쏠려 있어, 못 갚는 빚이 늘어나면 도미노 부실을 불러와 실물경제 전방위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금융당국으로선 금리를 내리기도 올리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인 셈이다.

일단 금융당국은 당분간 대내외 불확실성을 모니터링하며 고금리 상황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시장 일각에선 한은이 이번 금통위 회의에선 일단 금리를 동결한 뒤 시장을 관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1월 초 예고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에 따라 한은도 기준금리 인상 등 후속 대응에 나설 것이란 예상이다.

유상대 한은 부총재는 전날 시장상황 점검회의에서 “최근 미 연준의 고금리 기조 장기화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채권금리가 상당폭 상승하고 있는 데다 국제유가도 높은 수준을 지속하는 등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라며 “각별한 경계감을 갖고 국내 가격변수 및 자본유출입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필요시 시장안정화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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