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정보 실패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 조경환 가천대 경찰·안보학과 초빙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0.28 12:05
  • 호수 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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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오만과 정보 조정통할 기구 부재가 문제 
한국도 국정원·군·경찰 등 부문 간 협력과 조정 점검해야

하임 바레브 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일찍이 기습의 유형을 시간·장소·방법으로 대별했다. 그의 예지를 약 50년 만에 적이 충실히 따랐다. 아이러니다. 10월7일 유대인의 안식일 오전 6시30분, 이스라엘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침투해 수 시간을 광란했다. 양민 1400명 이상과 무방비 군인이 폭사하고 처참히 살해당했다. 220명 넘게 인질로 잡혔다. 이스라엘판 9·11이자, 홀로코스트 이후 최악의 유대인 학살이다.

10월19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방향으로 로켓이 발사되고 있다. ⓒ연합뉴스

전쟁의 시작, 이스라엘 정보 실패에서 비롯

1500여 명의 하마스 민병은 30여 곳을 동시에 전면 공격했다. 외딴 마을 주민을 몰살했다. 나할 오즈 등 4개 군 전초기지를 점령했다. 가자 봉쇄를 위해 1조3000억원을 들여 2021년 12월 완공한 높이 6m, 길이 65km의 ‘스마트 장벽’은 한낱 불도저에 뚫렸다. 지하 100m까지 내려간 콘크리트 벽과 땅굴 감지 센서는 장벽을 넘어오는 동력 패러글라이더에 무용지물이 됐다. 통신탑들, 레이더·광학정찰·방어 시스템과 침투 시 자동 발사되는 무인기관총을 갖춘 감시탑들은 150여 대 드론의 폭격에 일거에 무력화됐다. 장벽 속에서 가자지구 안쪽을 실시간 살펴보던 AI 기반의 카메라들은 총격에 실명했다. 2011년 3월 실전 배치 이래 2014년 7월과 2021년 5월 하마스의 각각 4000발이 넘는 ‘까삼’ 로켓 90% 이상을 요격했던 ‘아이언돔’은 이번에 6600여 발이 일시에 날아오자 목표를 향하는 900발만을 우선 요격했다. 78%는 성공했고 200발은 놓쳤다.

전쟁의 시작은 정보 실패에서 비롯됐다. 열흘쯤 지나 이스라엘방위군(IDF)의 참모총장 할레비 중장과 군 정보기관장 할리바 소장은 각각 정보 실패의 책임을 자인했다. “가장 깊고 포괄적인 조사가 있을 것이지만, 지금은 보복해서 이기는 것이 유일한 임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에 대한 추적·감시를 주도하는 이스라엘 국내 정보기관인 ‘신베트(Shin Bet)’의 로넨 바 국장도 10월16일 “(하마스) 공격을 좌절시키기에 ‘충분한 경고(a sufficient warning)’를 못 했다”고 밝혔다. 국가 정보를 ‘정책결정자에게 안보와 국익 정보를 제공해 결심하고 결정하게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이스라엘은 정보 실패를 부인할 수 없다.

이상 징후를 사전에 수집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정보기관이 공격 전날 밤에 하마스의 변칙 활동을 탐지했다. IDF 참모총장, 군 정보기관장, 신베트 국장이 협의한 결과, 훈련인지 공격 준비인지를 판단하기엔 추가 정보가 필요해 위기경보는 발령하지 않고, 일단 다음 날 신베트 특공대로 대응하기로 결정했다. 총리에게 보고는 안 했다”는 10월12일자 현지 언론기사가 의미심장하다.

그렇다면 각각 네 차례의 중동전쟁과 가자전쟁, 두 차례의 레바논 전쟁을 치렀고, 상시 팔레스타인과 대치 중인 IDF 및 신베트, 모사드 같은 레전드급 정보기관을 보유한 이스라엘이 왜 정보 실패를 반복했을까? 50년 전인 1973년 10월6일 ‘욤 키푸르(Yom Kippur·속죄일)’ 때 이집트와 시리아에 불의의 일격을 당한 이후 조사위원회까지 꾸려 정보 실패의 원인을 따져보았던 그 이스라엘이 아니던가.

 

정보기관이 건강하게 운영되고 군의 정보 유통 체계가 유연해야

정보 실패의 전모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알려지지도 않을 것이다. 정보 실패 현장에서는 모든 게 도미노처럼 붕괴한다. 여러 실패 사례가 합쳐져 하나의 재앙이 된다.

첫째, 이스라엘의 자만이다. 압도적 힘을 가졌고 중동에서 적수가 없다는 오만이다. 과학기술 시스템에 대한 믿음도 과했을 것이다. 상당 규모의 전쟁 준비는 위성사진, 신호정보, 정교한 사이버 안보 기술에 의해 탐지된다. 그러나 그 기술은 공격자 입장에서도 이점이다. 이스라엘이 난공불락으로 확신한 원격 조종의 정찰·방어장벽은 하마스의 원격 조종 드론에 당했다. 분석관의 상상력 결핍과 정보 평가 잘못도 있다. 의도를 숨기기 위해 발신하는 ‘노이즈’로부터 그 진의를 간파할 단서인 ‘시그널’을 가려내기는 매우 어렵다. 하마스의 방첩 성공이다. 지상에서, 사이버상에서 은닉했고 기만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가자지구의 위험성을 낮게 봤고, 서안지구에 치중했다.

둘째, 이스라엘 정보공동체의 특성과 대미(對美) 정보협력 메커니즘에도 맹점은 있다. 이스라엘에는 미 국가정보장(DNI) 같은 정보 조정통할 기구가 없다. 정보기관장들이 협의해 판단한다. 그러다 보니 대세를 거스르는 이견을 내기 어렵다. 또한 미 정보공동체는 이스라엘 정보기관을 너무 신뢰한 나머지 한 몸처럼 여긴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적어도 일주일 전부터 “하마스의 로켓 공격 가능성” 보고서를 냈다고 한다. 번스 CIA 국장은 2023년 1월 서안지구를 방문해 제3차 ‘팔레스타인 반란’을 경고했다. 그런 CIA가 이스라엘의 ‘오판’에 동조한 것은 그 맹신에 가까운 신뢰 때문은 아닐까.

셋째, 이란의 오랜 배후 작용이다. 사이버 능력 전수 및 로켓 등 군수 지원을 유효하게 차단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정부가 1년 이상 고삐를 쥔 가자지구 봉쇄는 누수가 발생했다. 이란의 무기와 자금, 기술과 이념적 지원은 하마스가 궁지에서도 공격하는 원천이 됐다.

정보 실패는 보복 확전으로 귀착된다. 가자 공습에 사망자만 10월23일 현재 5000명을 넘어섰다. 테러 지원국인 북한을 이고 사는 우리로서도 이는 예삿일이 아니다. 10월20일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상화를 내건 것은 그 밀착의 징표다.

전례가 없는 것을 예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북한이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는 한 공격 원점을 드러낼 가능성은 적다. 묘수는 없다. 경보에 삶과 죽음이 갈림을 직시해야 한다. 정보기관이 건강하게 운영되고 군의 정보 유통 체계가 유연하며, 그 종사자가 필수적인 주의사항을 준수한다면 정보 실패의 빈도는 현격히 줄어들 수 있다.

정보의 기능·수단과 정보 협력의 다원화·다층화는 기하되 국정원의 군·경찰 등 부문기관에 대한 정보 통할, 조정 기제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이참에 점검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러시아·이란·테러집단 등과의 불법 무기 커넥션은 실제적 위협이다. 국정원과 군이 공조해 증거를 확보하고 현장에서 선을 끊는 공작을 하나씩 실행해야 한다. 그게 실효적 억지다.

조경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조경환 가천대 경찰·안보학과 초빙교수

 

필자 조경환은

외교부 샌프란시스코 부총영사와 국가정보원 고위 공무원을 지냈다. 행정학 박사다.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과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 등을 거쳐 현재 강원연구원 초빙연구위원 및 가천대 경찰·안보학과 초빙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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