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세상에 소시민의 화끈한 펀치 날린 영화 《용감한 시민》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0.28 15:05
  • 호수 177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쁜 놈 때려잡는 여성 기간제 교사판 《범죄도시》

‘소시민(小市民)’은 애환 가득한 단어다. 생업과 일상 사이를 오가며 매일을 버티듯, 하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 인생에서 대단한 횡재를 기대하기보다는 무탈한 하루를 염원하는 편이 더 낫다는 걸 이미 경험으로 알아버린 존재들. 어쩌면 소시민적 지혜란 나와 가족의 안위를 위해 때로 사회적 불의를 꾹 참고 넘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사회악이 도처에서 상식선을 가파르게 무너뜨리는 세상 앞에서는, 작은 물줄기를 모아 거센 파도를 만드는 극적인 반전을 소망하기도 한다. 신작 《용감한 시민》은 이름마저 ‘소시민’인 주인공을 필두로 속 시원한 한 방을 목격하게 하는 영화다. 답답한 세상에 날리는 유머 섞인 화끈한 펀치가 꽤 얼얼한 매력이 있다.

무영고등학교 기간제 교사 소시민(신혜선)은 학교의 ‘스타’다. 드높은 인기를 말해 주는 별명인가 싶지만, 안타깝게도 ‘스페어타이어’의 줄임말이다. 언제든 교체 가능한 그의 처지를 빗댄 것이다. 태권도 3단, 합기도 3단, 복싱 금메달 유망주였던 무술 실력자라는 과거를 뒤로한 그는 정교사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다행히 싹싹한 성격과 야무진 일머리 덕분에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이대로만 버티면 정교사 자리는 따놓은 당상이다.

ⓒ㈜마인드마크 제공

현실 세계와 맞닿은 어둠, 화끈한 응징

문제는 무영고등학교가 품은 골칫거리에 있다. 학교폭력 근절 우수학교 지정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교내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중심에는 한수강(이준영)이 있다. 고등학생 신분이지만 2년을 유급당한 그는 학교의 실세이자 악마 같은 존재. 무자비한 학교폭력의 가해자인 수강은 법을 가지고 노는 힘 있는 집안의 자식이고, 학생부터 교사까지 모두 그의 발아래 있다. 학교의 모든 이가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 사이에 수강 일당의 악행은 날로 더해 간다.

정교사만을 꿈꾸며 불의에 애써 눈감던 시민은 피해 학생 진형(박정우)의 “살려 달라”는 애원을 모른 척할 수가 없다. 결국 시민은 자신만의 방식대로 수강을 무릎 꿇릴 방도를 찾는다.

원작은 2014~16년 포털사이트에 연재된 김정현 작가의 동명 웹툰이다. 적나라한 학교폭력과 통쾌한 응징을 다룬 원작의 줄기는 변형 없는 토대다. 영화에서 달라진 점이라면 인물들의 배경이다. 시민에게는 복싱 선수였던 과거의 사연을 더하는 반면, 가해자 수강의 캐릭터를 둘러싼 속사정은 완전히 배제됐다. 악인을 이해할 만한 여지를 조금이라도 남기지 않기 위한 선택이다. 영화 속 수강은 오로지 자신의 재미를 위해 극악한 폭력을 저지르는 안하무인, 절대 악의 존재로 나온다.

분명 만화적 상상력에서만 비롯된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현실 밀착형 풍경이기에 서늘하다. 도를 넘어선 학교폭력, 학부모 ‘갑질’과 교권 추락 문제는 현실 세계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마주하게 되는 그늘이다. 관련한 사회적 문제가 연이어 터져 나온 시점이기에, 폭력과 비도덕에 신음하는 영화 속 학교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개봉 시기가 공교롭게 여겨질 정도다. 지독하리만큼 이어지는 피해 학생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 역시 쉽지 않다.

하지만 영화가 가진 좋은 기능 중 하나는,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만 같은 현실을 위로한다는 점이다. 비록 비현실에 가까울지라도 《용감한 시민》은 영화가 목표한 그 길을 뚜벅뚜벅 간다. 상식이 승리하는 세상의 손을 기꺼이 들어주기 위해 에두르지 않고 직선으로 뻗는 권선징악의 이야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평온한 삶을 위한 시민의 신조였지만, 이내 상식적이고 정의롭게 살기 위한 각오로 변모한다.

ⓒ㈜마인드마크 제공
영화 《용감한 시민》의 한 장면 ⓒ㈜마인드마크 제공

상식이 승리하기 힘든 현실, 판타지의 힘을 빌리다

《용감한 시민》은 정체를 감추는 고양이 가면을 쓰고 수강에게 주먹을 날리기로 결심한 시민의 액션 행적을 따라간다. 교사가 학생을 폭행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의 입장에서는 “참교육”이다. 교내 폭력을 같은 폭력으로 받아치는 모습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 가면을 쓴 채 활약하는 자경단으로 시민을 묘사한 것은 이야기의 좋은 알리바이 중 하나다. 유급으로 학교를 다시 다니게 된 수강의 나이가 더는 10대가 아닌 성인이라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평화를 위해 어떻게든 불의를 참고 넘겨보려던 시민의 변화는 꽤 설득력 있게 펼쳐진다. 얌전한 시민의 코털을 건드리는 건 비단 수강뿐만이 아니다. 시민에게 날마다 끈적한 시선을 날리는 교감, 길에서 부딪쳤다는 이유로 시민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도 모자라 뺨을 내려치는 취객까지 가세하며 시민의 뚜껑은 서서히 열린다. 눈감을 수 없는 불의가 도처에 있는 세상. 젊은 여성, 그것도 기간제 교사인 ‘약자’의 일격은 통쾌하다. 매 장면 타격감 넘치는 시원시원한 액션 묘사는 악을 응징하는 데 결코 주저함이 없다.

물론 불의를 참지 못하고 직접 처단에 나서는 선한 주인공의 모습은 판타지에 가까울 것이다. 어디까지나 악의 뿌리를 뽑는 것이 아니라 대리 복수자의 승리일 뿐이라는 한계도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분명 꿈꿔볼 수 있는 긍정이기도 하다. 혼자만의 싸움처럼 보이던 시민의 여정은 정의로운 시민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나서는 아버지 소영택(박혁권)의 지지, 결정적인 순간마다 물심양면으로 시민을 돕는 학생들 덕에 결코 외롭지 않다. “현실과 타협하고 살던 소시민이 작은 외침을 만들고, 여러 사람의 외침이 모여 커다란 함성이 되는 과정”을 담고 싶었다던 박진표 감독의 바람대로, ‘소시민’은 그렇게 상식선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들 모두의 이름이 된다.

지난 5월 개봉한 《범죄도시3》는 올해 공개된 영화 중 유일하게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 수치는 무엇을 의미할까. 시리즈 자체가 쌓아온 캐릭터의 매력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슈퍼 히어로에 가까운 주인공의 활약과 ‘나쁜 놈은 그냥 잡는’ 단순하고 속 시원한 일갈이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쾌감이라는 확실한 증거처럼 보이기도 한다. 언뜻 ‘여성 기간제 교사 버전 《범죄도시》’처럼 읽히기도 하는 《용감한 시민》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판타지에 기대야 할 만큼 상식선이 승리하기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다는 씁쓸한 실감이 남지만 말이다.

 

용감한 코믹 액션, 신혜선

시민을 연기한 신혜선은 TV 드라마 《학교 2013》(2012~13, KBS2)으로 데뷔해 《오 나의 귀신님》(2015, tvN)과 《황금빛 내 인생》(2017~18, KBS2), 《철인왕후》(2020~21, tvN) 등 드라마를 통해 특유의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동시에 드라마 《비밀의 숲》(2017, tvN), 영화 《결백》(2020) 등과 같이 서늘한 스릴러에도 위화감 없이 녹아드는 배우이기도 하다. 《용감한 시민》에서는 한순간에 장르를 넘나드는 장기에 더해 다부진 액션 역시 선보인다. 합기도에 권투와 격투기까지 섞은 시원시원한 동작, 긴 다리를 활용한 ‘180도 하이킥’은 이번 영화의 전매특허. 배우가 털어놓은 반전 아닌 반전은 ‘완전 몸치’라는 점이다. 엄청난 연습량을 가늠케 해주는 액션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