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영풍제지 사태 배후 공씨, 거물 기업사냥꾼들과 ‘한배’ 탔다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3.10.27 10:05
  • 호수 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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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식·배상윤·이종현 등 공씨에 아낌없는 지원사격
배상윤 KH그룹 회장과 박한규 리드 부회장 이름도
영풍제지·대양금속 측 “특별히 언급할 내용은 없다”

영풍제지에서 대규모 주가조작 사태가 벌어졌다. 시세조종 일당이 얻은 부당이익만 약 3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키움증권과 국민연금까지 거액의 손실을 입게 됐다.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로는 영풍제지 최대주주인 대양금속의 실소유주 공아무개씨가 거론된다. 2010년대 중반부터 자본시장에서 기업 사냥을 벌여온 인물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그가 그동안 기업들을 인수하는 과정에 무자본 인수합병(M&A) 업계 거물이 대거 등장한다는 점이다. 원영식 전 초록뱀그룹 회장과 배상윤 KH그룹 회장, 이종현 전 좋은사람들 대표, 박한규 전 리드 부회장 등이 그 장본인이다. 이들 중 검찰의 수배를 피해 해외 도피 중인 배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무자본 인수와 시세조종 등의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영풍제지 인수 때부터 주가조작

10월18일 주식시장 개장과 동시에 영풍제지 주가는 하한가로 직행했다. 이날 주가조작 일당 4명이 체포되면서 이들 세력이 보유 중이던 물량을 급하게 투매한 결과로 해석된다. 검찰은 지난해 말 대양금속이 영풍제지 인수를 추진할 당시부터 주가조작 세력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을 파악하고 수사를 벌여왔다. 그 결과, 주가조작 일당의 신병을 확보한 검찰은 10월20일 주가조작 일당을 구속하고, 23일에는 영풍제지와 대양금속, 대양홀딩스컴퍼니(대양금속 최대주주)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이번 사태의 배후로 대양금속 실소유주인 공아무개씨를 지목하고 있다. 대양홀딩스컴퍼니 최대주주(96%) 이옥순씨의 아들인 공씨는 업계에서 ‘유비(UB)’로 알려진 무자본 M&A 기획자, 사채 브로커 이아무개와 한 몸처럼 움직였다. 이들은 영풍제지 무자본 인수부터 주가조작까지 모든 과정을 주도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대양금속은 지난해 11월 그로쓰제일호투자목적주식회사로부터 영풍제지 지분 50.76%(1131만6730주)를 1289억원에 인수했다. 이를 두고 무자본 M&A라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대양금속은 전체 인수대금 중 861억원을 외부에서 조달했다. 이 중 761억원은 아직 취득하지도 않은 영풍제지 주식을 담보로 차입했다. 나머지 100억원은 단기 차입금으로 마련했다. 여기에는 차입 기간이 일주일에 불과한 초단기 대출도 포함돼 있었다.

대양금속이 자기 자금이라고 밝힌 439억원 대부분도 외부에서 수혈받았다. 전환사채(150억원)와 단기 차입금(230억원)을 제외하면 대양금속이 실제로 1300억원 규모의 영풍제지 인수에 투입한 자금은 60억원에 불과했다. 대양금속은 영풍제지를 품에 안자마자 인수대금 회수에 나섰다. 인수 직후 주식 295만 주를 매각해 현금 306억원을 마련했고, 피인수 기업인 영풍제지를 상대로 17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하기도 했다.

검찰은 주가조작 세력이 대양금속이 영풍제지를 인수할 무렵 주가조작을 시작해 올해 8월까지 2만9000여 회에 걸쳐 시세조종을 벌였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는 매매 양측이 서로 합의한 가격으로 주식을 거래하는 ‘통정매매’와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주문을 넣는 ‘고가 매수’, 대량 매수로 시장에 나온 매도 물량을 모두 사들이는 ‘물량 소진’ 등의 기법이 동원됐다. 시세조종 일당은 소수의 계좌에서 주문이 집중될 경우 범행이 드러날 수 있다고 판단해 100여 개에 달하는 계좌를 동원하기도 했다.

주가 부양에 필요한 자금은 사채 브로커 이씨가 조달했다. 그는 명동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알려진 최아무개씨와 김아무개씨로부터 수백억원대 자금을 확보했다. 특히 사채업자 김아무개씨의 경우 ‘전주(錢主)’에 그치지 않고 400억원 규모의 영풍제지 주식을 직접 매입하기도 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지난해 10월 2000원대이던 영풍제지 주가는 9월7일 종가 기준 4만9550원까지 급등해 시가총액이 2조2000억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시세조종으로 공씨 등 주가조작 세력이 거둔 부당이익은 약 2934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반면, 하한가로 영풍제지 시가총액 6700억원이 증발하면서 발생한 피해는 개미투자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연합뉴스
영풍제지 주가조작 혐의를 받는 윤아무개씨와 이아무개씨 등이 10월20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남부 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라임 사태’ 핵심 인물 지원하기도

공씨가 자본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기는 2016년 태양광 백시트 업체인 에스에프씨를 인수하면서다. 이 과정에서 공씨는 무자본 M&A 업계 대부로 불리는 원영식 전 초록뱀그룹 회장의 지원을 받았다. 초록뱀그룹 계열사인 더블유투자금융이 조성한 제이에스투자조합이 에스에프씨가 발행한 1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인수한 것이다. 이 자금은 에스에프씨 인수자금으로 흘러간 것으로 의심된다.

이후 에스에프씨는 공씨의 상장사 인수 창구로 활용됐다. 주로 경영난을 겪고 있거나 상장폐지 위기에 내몰린 기업들이 타깃이 됐다. 방식에는 매번 큰 차이가 없었다. 사채 등 차입금을 동원해 기업을 인수한 후 지분 일부를 처분하거나, 피인수 기업의 유보금을 유출해 인수자금을 충당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인수한 기업은 새로운 기업 인수 등에 활용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네오디안테크놀로지(현 율호)와 판타지오, 케이제이프리텍, 크로바하이텍 등 다수의 상장사가 공씨의 손을 거쳤다.

에스에프씨는 특히 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박한규 전 리드 부회장의 리드 인수를 돕기도 했다. 박 전 부회장이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아스팩오일의 CB 80억원어치 상당을 인수한 것이다. 이 자금은 상장사인 리드를 무자본 인수하는 데 사용됐다. 이후 리드에서는 800억원대 횡령과 주가조작 등 사건이 벌어졌다. 박 전 부회장은 현재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공씨를 거친 기업들 대다수는 상장폐지 위기에 놓이거나 회생 절차를 밟았다. 에스에프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에스에프씨는 2019년 상장폐지 후보에 올랐다. 외부감사인으로부터 감사범위 제한에 의한 감사의견 거절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후 수년에 걸쳐 분식회계가 이뤄진 사실이 드러나면서 에스에프씨는 2020년 결국 상장폐지가 결정됐다.

에스에프씨의 상장폐지가 확실시된 2019년 말 공씨는 대양금속 인수에 나섰다. 이번에는 시세조종과 횡령 등의 혐의를 받고 해외 도피 중인 배상윤 KH그룹 회장이 등장한다. KH그룹 계열사인 KH건설이 설립한 에프엔디투자조합이 대양금속의 투자 주체로 나선 것이다. 에프엔디투자조합 지분은 대양금속 인수 직전 기업사냥꾼 임아무개씨에게 넘어간다. 그는 상장사를 무자본 인수하고 횡령·배임을 저지른 혐의로 수배 중인 인물이다.

대양금속 인수 당시 공씨는 지엔피파트너스를 통한 재무적 투자자임과 동시에 에프엔디투자조합의 실질적인 운영자이기도 했다. 실제 에프엔디투자조합이 인수한 이후 대양금속 경영진은 그의 측근들로 채워졌다. 특히 에프엔디투자조합은 인수 직후 대양금속 주식의 상당 부분을 매각했다. 이로 인해 ‘최대주주 변경’이라는 호재로 2019년 말 1만8000원대까지 올랐던 대양금속 주가는 이듬해인 2020년 1월말 3000원대까지 급락했다.

그 결과 일반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반면, 공씨는 저가에 대양금속을 품에 안을 수 있게 됐다. 주가가 낮아진 상황에서 대양금속 경영진에 오른 공씨의 측근들이 헐값(주당 1365원)에 대양홀딩스컴퍼니에 대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했기 때문이다. 대양홀딩스컴퍼니가 불과 100억원만을 투입해 대양금속 최대주주(17.31%)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이다.

공씨는 대양금속 인수 과정에서 이종현 전 좋은사람들 대표의 지원사격을 받기도 했다. 좋은사람들이 대양홀딩스컴퍼니에 40억원을 대여한 것이다. 이 자금은 대양홀딩스컴퍼니가 대양금속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데 사용됐다.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차남인 이 전 대표는 라임자산운용 자금으로 좋은사람들을 무자본 인수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영풍제지 주가조작 사건의 배후로 대양금속 실소유주인 공아무개씨가 지목되고 있다. ⓒ
영풍제지 주가조작 사건의 배후로 대양금속 실소유주인 공아무개씨가 지목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대장동 김만배씨 자금 흘러든 정황도

이뿐만이 아니다. 대양금속 인수 과정에 대장동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만배씨의 자금이 흘러든 정황도 포착된다. 김씨는 2019년 박영수 전 특별검사 인척이자 위례·대장동 분양대행사 대표인 이기성씨를 거쳐 토목업자 나석규씨에게 100억원을 전달했다. 나씨는 이 중 30억원을 에프엔디투자조합 지분 매입에 사용했다. 나씨는 에프엔디투자조합이 대양금속 인수를 마무리 지은 직후 지분을 매각해 상당한 차익을 거둔 것으로 전해졌다. KH그룹 관계자는 “KH건설이 에프앤디투자조합을 조성한 건 맞지만 대양금속 인수는 조합 지분 매각 후 벌어진 일”이라며 “배 회장은 공씨는 물론 나석규씨와도 어떤 연관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영풍제지나 대양금속 측은 즉답을 회피하고 있다. 영풍제지 관계자는 “불공정거래 풍문 등에 대한 사실 여부 및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현재까지 확인된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대양금속 관계자도 “대양금속 직원 중에 불공정거래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이번 사안과 관련해 특별히 언급할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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