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 동지도 불분명한 중동의 ‘대혼란 전쟁’
  •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0.28 10:05
  • 호수 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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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국가, 친미와 하마스 지원 사이서 갈팡질팡
진실보다 진영논리 앞서는 미디어 전쟁에 민·군 뒤섞인 ‘대분란’ 양상까지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기존의 어떤 전쟁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신종 전쟁’ 형태의 전시장이 되고 있다. 적과 동지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얽히고설킨 중동의 국제·지역 정세, 프로파간다와 가짜뉴스가 판치는 미디어전, 민간인·비정규 전투원이 뒤섞인 ‘대분란(COIN·Counter-insurgency)전’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남부 스데로트에서 10월23일(현지시간) 촬영한 가자지구 북부의 모습. 이스라엘군 공습 이후 연기가 치솟고 파편이 날리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이 이어지면서 양측에서 6500명 이상이 숨졌다. ⓒAFP 연합

복잡하게 얽힌 중동 정세

복잡한 국제정세와 관련해 이번 사태로 가장 주목받는 나라는 이란이다.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관심 대상이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지속적으로 미국·서방·이스라엘에 적대적으로 맞서면서 하마스를 줄기차게 지원해 왔다. 이번에도 하마스의 뒷배를 자처하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인 하마스는 시아파인 이란과 종파는 다르지만 반이스라엘·반미라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끼며 서로 협력해 왔다. 일부에선 하마스를 이란의 대리인으로 부르기도 한다.

서방이 이란의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이란이 중동 지역 ‘시아파 벨트’의 맹주이기 때문이다. 이란은 이라크의 시아파 정부,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 레바논의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 내전 중인 예멘의 후티반군 등 시아파 세력을 아우르며 지역 내 라이벌이자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 및 서방 세력과 대리전을 벌여왔다. 시리아 내전은 사실상 이란과 사우디의 대리전으로 보기도 한다.

인구의 90% 이상인 이란은 중동의 ‘시아파 벨트’에서 힘을 쓰고 있다. 레바논·시리아는 이스라엘과 국경이 맞닿아있고, 예멘에선 최근 장거리 탄도미사일이 이스라엘을 향해 날아가다 미 해군에 의해 요격됐다. 후티반군은 이란에서 지원받은 걸로 추정되는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사우디 수도 리야드 등으로 발사해 왔다. 하지만 지리적·경제적·군사적·정치적 상황으로 볼 때 하마스를 위해 기꺼이 총대를 메줄 나라는 보이지 않는다. 석유를 감산해 서방에 타격을 안길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이번 전쟁이 중동전으로 확산되거나 석유파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야기다. 그저 말로만 가장 강력한 혐오발언을 이스라엘과 미국에 쏟아붓는 게 전부다. 엄연한 국제사회의 현실이다.

이번 사태로 새롭게 주목받는 세력이 하마스의 숨은 지원자인 카타르와 튀르키예, 그리고 리비아의 하프타르 군벌이다. 튀르키예는 나토 회원국이자 이스라엘의 수교국인데도 민간군사기업(PMC)을 통해 하마스 무장대원을 훈련시켜 왔다는 의심을 받는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대놓고 하마스를 지지하며 공개적으로 “하마스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고 발언한다.

카타르에는 중동 주둔 미국 공군의 본부가 있다. 미 공군은 카타르 수도 도하 인근의 우데이드 기지에서 B-1B 초음속 전략폭격기와 B-52 아음속 전략폭격기, 공중급유기·대형수송기·정찰기·전자전기 등을 운용한다. 카다르의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국왕은 그런데도 하마스를 지원한다. 서방 정보기관이 파악한 하마스의 최대 돈줄은 카타르다. 무기는 공급하지 않고 수도·전기·학교 등 인도주의적 지원에만 자금을 제공해 왔지만, 하마스가 이 자금을 무기 구입으로 돌리지 않았으리란 보장은 없다.

왕가는 무슬림형제단이나 하마스를 지원해 왔는데 이 때문에 사우디와 관계가 악화된 적도 있다. 2017~21년 사우디와 단교하고 심지어 일부 봉쇄까지 당하는 외교 위기의 원인을 여기에서 찾는 분석가도 있다. 알사니 국왕이 이슬람주의자 조직을 지원하는 명분은 겉으로는 박애주의지만 속으로는 아랍 세계에서 정치적 보험 성격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의 알사니 왕실은 1996년 글로벌 아랍어 방송인 알자지라를 설립했으며, 2006년에는 24시간 글로벌 영어방송인 알자지라 잉글리시를 세웠다.

서방 정보기관은 하마스에 대한 무기 공급을 주로 이란이 맡아온 것으로 파악한다. 이란은 일단 예멘의 후티반군 장악 지역으로 무기를 옮긴 후 이를 홍해 건너의 수단으로 다시 이동시킨다. 무기는 수단에서 트럭에 실려 이집트로 옮겨져 이집트와 가자지구 사이를 잇는 비밀터널을 통해 하마스 수중에 들어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운송로는 리비아 군벌인 할리파 하프타르가 장악한 리비아 동부에서 이집트 국경을 넘은 후 가자지구로 이어지는 길이다.

아랍권의 주요 이스라엘 수교국으로 대표적인 친미 국가인 이집트와 요르단은 내부 문제로 하마스를 비난도 하지 못하고, 가자지구 난민을 수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요르단은 전체 인구 1100만 명의 약 20%가 팔레스타인계다. 요르단 국적자가 아닌 팔레스타인 난민도 65만 명이나 된다. 압둘라 2세 국왕의 부인인 라니아 왕비도 팔레스타인계다. 요르단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밀려온 팔레스타인 난민에게 국적을 주고 국민으로 받아들인 유일한 국가다.

이집트의 시시 대통령 정부는 하마스에 거부감이 심하다. 하마스가 무슬림형제단에서 비롯된 가자지구 이슬람주의자 조직이기 때문이다. 무슬림형제단은 2011년 아랍의 봄 이듬해에 열린 대선에서 이슬람주의자인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하지만 시시는 2013년 쿠데타를 일으켜 그런 무르시를 밀어낸 후 집권했다. 하마스를 경계하고 가자지구 난민 유입을 꺼리는 이유의 하나다.

 

프로파간다 판치는 미디어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미디어전’은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전 세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물론 글로벌 매체까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대결장이 되고 있어서다. 균형 잡힌 보도로 명성을 얻어왔던 영국 공영방송 BBC는 십자포화를 맞았다. 데일리텔레그래프에 따르면 하마스를 미국·캐나다·영국·유럽연합(EU)·이스라엘이 규정한 대로 ‘테러리스트’로 불렀다가 친팔레스타인 시위대의 페인트 공격을 받았다. 반대로 하마스를 ‘무장단체’로만 불렀다가 영국 정부와 친이스라엘 진영의 항의에 직면했다. 이츠하크 헤어초크 이스라엘 대통령이 리시 수낵 영국 총리에게 직접 이를 항의하기도 했다. 결국 BBC는 하마스를 보도할 때 ‘영국 정부 및 기타 국가에 의해 테러조직으로 분류된 조직’으로 설명하기로 했다.

EU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된 이후 SNS 플랫폼인 엑스(X·옛 트위터)의 테러리즘과 자극적인 폭력 콘텐츠, 혐오 표현, 조작사진 등 허위정보와 관련해 조사에 들어갔다고 BBC가 보도했다. EU는 SNS인 메타(옛 페이스북)와 중국계 글로벌 숏폼 비디오 플랫폼인 틱톡에 대해선 허위정보를 막을 조치를 충분히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고 처분을 내렸다.

전 세계 다수의 미디어는 10월17일 가자지구의 알아흘리 병원이 이스라엘의 폭격을 받아 500명이 사망했다는 가자지구 보건부의 발표를 확인 없이 보도했다.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통치하고 있어 ‘가자지구 보건부’라면 하마스의 하부 조직일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무장단체인 이슬라믹 지하드가 발사한 로켓이 병원이 아닌 주차장에 잘못 떨어졌으며 사망자도 보도된 숫자의 10분의 1이라고 해명했다. 폭격일 경우 대부분 건물이 손상되거나 폭탄 투하 지점이 움푹 파이는데 해당 병원 건물도 멀쩡하고 주차장에 파인 곳이 없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부 서방 매체는 ‘확인 없이 보도했다’고 독자와 시청자에게 사과했지만 이미 전 세계의 분노를 일으킨 후였다. 뉴스를 전쟁에 활용하는 프로파간다 보도에 전 세계 미디어의 신뢰가 손상되는 ‘부수적인 피해’를 본 셈이다.

이스라엘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병원 폭격 소식으로 아랍권이 격앙되면서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압둘라 2세 국왕과 시시 이집트 대통령과의 면담 약속이 취소되기도 했다. 일부에선 이 보도의 발단이 알자지라 기자라고 주장한 X 이용자였는데 알자지라에 해당 성명의 직원이 없다는 것과 텔레그램에 등장한 가자지구 어린이 희생자 동영상이 알고 보니 인형을 찍은 것이었다는 폭로도 나왔다. 글로벌 미디어는 이번 전쟁으로 ‘잃은 것은 신뢰이고 얻은 것은 항의와 비난’이라는 상황을 겪고 있다.

ⓒEPA 연합
10월25일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건물이 무너지자 팔레스타인 남성이 절규하고 있다. ⓒEPA 연합

민간인·비정규 전투원 뒤섞인 싸움

진보적 가치를 따르는 경우가 많은 글로벌 미디어들은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기습을 받아 영·유아와 노인을 포함한 다수의 민간인이 학살된 사건보다 보복 폭격과 점령에 따른 팔레스타인의 피해와 고통을 중점적으로 보도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민간인과 비정규 전투원이 뒤섞인 ‘대분란전’이라는 전쟁의 특성상 전투원만 족집게처럼 제거하기는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애꿎은 민간인들이 ‘부수적 피해’를 보고 있다.

이번 전쟁으로 터전을 잃은 팔레스타인 주민의 비극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유대 지역 거주 팔레스타인인들이 쫓겨나고, 1967년 ‘6일 전쟁’으로 요르단이 관리하던 요르단강 서안 및 동예루살렘과 이집트가 통제하던 가자지구가 이스라엘에 점령당하면서 숱한 토착민들이 고향을 떠났고 남은 사람들은 인도주의적인 재앙을 겪고 있다.

누가 옳은지는 단정 짓기 어렵지만, 지금 미디어가 전쟁터가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미디어는 이번 전쟁에서 피 같은 균형감각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친이스라엘 진영과 친아랍 세력이 치열하게 싸우는 상황에서 진실보다 진영논리가 앞서기 때문이다.

 

■최대 피해자는 사우디 왕세자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가장 크게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의욕적으로 건설하는 네옴시티가 자국과 이스라엘·이집트·요르단에 둘러싸인 아카바만에서 가깝기 때문이다. 2029년에는 네옴시티의 고지대에서 동계아시안게임도 열린다. 이 때문에 앞으로 6년 안에 이 지역의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사우디의 안보와 네옴시티의 안전을 위해선 이스라엘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과의 수교가 필요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속도 조절을 할 수밖에 없어 사우디로선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사우디는 이집트와 사이에 있는 티란해협을 건너는 다리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사우디와 이집트를 연결해 북아프리카의 순례객·관광객의 접근을 쉽게 하려는 의도다. 이 과정에서도 이스라엘의 협조는 불수불가결하다. 이 티란해협은 이스라엘 화물선과 군함이 아카바만의 항구도시 에일라트에서 홍해로 나가는 중요한 수역이기 때문이다. 살만 국왕에 이어 왕위를 물려받을 예정인 빈 살만은 네옴시티 건설과 티란대교 건설 등 업적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왕을 선거로 뽑지는 않지만 왕정을 계속 유지하려면 국민, 특히 젊은 층의 지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으로서 같은 수니파가 대다수인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등을 돌리기도 쉽지 않다. 이는 이란과의 패권 경쟁에서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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