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낙태죄·야간 옥외집회 금지’ 개정 시한 넘긴 위헌 법률, 국회 논의는 ‘0’
  • 김현지·조해수 기자 (metaxy@sisajournal.com)
  • 승인 2023.10.30 07:35
  • 호수 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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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상임위 회의록 88건 전수 분석
개정 시한 넘긴 법률 4건, 상임위 문턱조차 못 넘었다

국회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내려진 법안에 대한 논의를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는커녕 상임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2021년 3월 ‘일하는 국회법’이 시행됐지만, 21대 국회는 사실상 ‘직무유기’를 한 셈이다. 내년 총선이 5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21대 국회가 통과시킨 법안은 ‘역대 최소’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는 사회적 혼란 등 부작용을 우려해 위헌 법률의 효력을 즉각 없애지 않고 국회에 법 개정 시한을 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다. 현재 국회가 개정하지 않은 헌법불합치 법안은 모두 22건이나 된다. 21대 국회가 내년 총선(2024년 4월10일) 전까지 고쳐야 할 법안은 14개다. 특히 4건은 국회가 법을 고쳐야 할 개정 시한까지 이미 넘겼다. 여성의 낙태죄(형법), 야간 옥외집회 금지(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 재외선거인의 국민투표 제한(국민투표법) 등 모두 국민의 삶과 직결된 법안들이다(10월9일자 <[단독]‘정쟁 국회’가 방치한 ‘위헌’ 법률…내년 총선 전 고쳐야 할 법만 14개> 기사 참조).

ⓒ시사저널 박은숙·최준필
지난 10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낙마와 관련해 야당을 규탄하는 피켓 시위 중인 국민의힘(왼쪽 사진). 더불어민주당(오른쪽 사진)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임명을 규탄했다. ⓒ시사저널 박은숙·최준필

회의록 살펴보니, 단 한 차례 논의도 없어

개정 시한을 넘기면 기존 법의 효력은 없어진다. 이를 대체할 개정 법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입법 공백’이 발생한다. 쉽게 말해 해당 법이 사라지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임신 주수별 낙태 수술 가능 여부 등 낙태죄와 관련한 법안이 개정되지 않아 의료 현장에선 지금도 ‘혼돈’의 연속이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개정 시한을 넘긴 법안 4건과 관련한 개정안이 모두 ‘계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10월25일 기준 △낙태죄와 관련한 형법 개정안 6건 △보안관찰 대상자에게 변동신고 의무화 등 보안관찰법 개정안 2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집시법) 3건 △재외선거인의 국민투표 제한 등과 관련한 국민투표법 개정안 4건 등은 하나같이 해당 상임위원회 소위원회에 멈춰 있다(표 <헌법불합치 관련 개정 시한 경과한 법안 현황과 국회 논의 현황> 참조).

이 가운데 낙태죄와 관련한 입법 공백의 여파는 심각하다. 여성의 자기낙태와 이를 도운 의사를 처벌하는 조항은 개정 시한인 2020년 12월31일을 넘기면서 효력을 상실했다. 하지만 의료 현장은 2년여가 흐른 지금도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낙태 수술이 가능한 임신 주수가 병원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부작용 때문에 허가받지 못한 낙태약이 시중에서 불법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이에 따른 피해는 오롯이 여성에게 돌아가고 있다.

국회는 그동안 헌법불합치와 관련한 개정안 마련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을까. 시사저널은 관련 상임위 회의 88건에 대한 회의록을 모두 살펴봤다.

낙태죄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은 모두 6건이다. 개정 시한을 앞둔 2020년 10~12월 사이 발의된 개정안인데,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한 상황이다. 가장 먼저 발의된 개정안은 무려 2년 동안 논의 테이블에서 멈춰있다. 2020년 10월 법제사법위로 넘어온 후 한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법제사법위 전문위원은 2020년 11월18일 법제사법위 회의에서 “헌재의 결정 취지, 2020년 12월31일로 명시된 입법 시한을 존중하면서 다양한 관점과 법적 쟁점에 대한 논의,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발의됐거나 발의될 예정인 법안들을 종합 검토해 결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낙태죄 관련 6건의 개정안은 2021년 6월21일 법제사법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 올라왔다. 하지만 이들 개정안은 단 한 번도 상정되지 않았다. 심지어 낙태죄 개정안은 회의에서 논의 대상도 아니었다. 2021년 6월22일, 7월15일에도 제1소위가 열렸지만 마찬가지였다. 이후 현재(10월25일 기준)까지 37차례 제1소위가 열렸지만 낙태죄는 한 차례도 논의되지 않았다.

대통령 위한 집시법은 일괄 상정

심야시간 옥외집회 금지와 관련한 집시법은 무려 13년 전에 개정 시한을 넘겼다. 그런데도 개정안 3건(2020년 6·7월, 2023년 6월 발의)은 현재 관련 상임위인 국회 행정안전위 법안심사제2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 가운데 2020년 발의된 두 건은 같은 해 9월 법안심사제2소위에 회부됐다. 올해 6월 발의된 개정안은 9월 제2소위에 직접 회부됐다. 논의 상황은 낙태죄와 마찬가지다. 2020년 9월부터 현재까지 25차례 열린 제2소위에서 한 차례도 논의 대상에 오르지 않았다.

개정 시한을 넘긴 나머지 법안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국민투표법의 개정 시한은 올해로 7년을 넘겼다. 헌법재판소는 국내 주민등록이나 거소가 없는 재외선거인의 국민투표권 행사를 제한하는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국회는 이후 국민투표법을 논의했을까. 이 역시 한 차례의 논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여야 의원들은 관련 개정안 4건(2020년 7·11월, 2022년 5·12월)을 발의했고, 이들 개정안은 2020년 11월, 2022년 11월, 2023년 3월 등 네 차례에 걸쳐 국회 행정안전위 제2법안심사소위에 회부됐다. 이 기간에 모두 21차례의 제2소위가 열렸다. 그렇지만 국민투표법 개정안은 안건으로 올라가지도, 논의되지도 못했다.

보안관찰법 개정안(2021년 7월, 2023년 3월 발의)은 2021년 9월 국회 법제사법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로 넘어갔다. 2건의 개정안은 2023년 6월에야 제1소위에 안건으로 올라왔지만 의결되지는 못했다. 당시 회의록을 살펴보면, 이와 관련한 논의 자체가 없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밖에 헌법재판소가 개정 시한을 정하지 않은 약사법은 개정안이 발의된 적조차 없다. 약사법은 무려 20여 년 전에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법안이다.

반면, 여야는 쟁점이 되거나 권력층을 위한 법안에 대해서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잠자고 있던 국민투표법은 지난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국면에서 쟁점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찰의 수사-기소를 분리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이를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제안하면서다. 법안을 고쳐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빈축을 샀다.

집시법 개정안은 지난해 11월23일 4건이나 행안위 법안심사제2소위에 일괄 상정됐다. 이후 한 건을 제외한 3건은 지난해 12월1일 행안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대통령 집무실이나 전직 대통령 관저 주변의 집회와 시위를 일부 제한하는 내용이다. 전·현직 대통령을 향한 여야의 ‘충성 경쟁’에 제동을 건 것은 헌법재판소였다. 지난해 12월22일 헌법재판소는 집시법 11조의 ‘100m 집회 금지 구역’ 가운데 ‘대통령 관저’ 부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국회 관계자는 “소위원회에 법안이 상정됐어도 논의되지 않는 경우가 상당하다”며 “헌법불합치 법안이라고 해도 여야가 쟁점이 되는 사안을 먼저 논의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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