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서풍, ‘평양의 봄’도 열까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1.02.28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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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구조 등 달라 영향 미미할 듯…‘생계형 저항’이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있어

북한은 지금 김일성에서 김정일,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3대 세습을 진행하고 있다. 김일성 일가의 통치 기간을 합치면 무려 66년이다.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런 북한에도 ‘아랍 혁명’의 바람이 불 것인가.

 중동의 민주화 바람은 독재 국가인 북한에게도 위협이 될 수 있다. 여러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진 뒤 내부 단속에 나섰다고 한다. 주민들에 대한 사상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외부 정보가 북한 내부로 유입되지 않도록 적극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NK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월 초에 김정일의 지시로 인민보안부(경찰청) 산하에 폭동 진압용 특수기동대를 조직했다고 전했다. 내부 소요 사태를 대비한 조치라고 보고 있다.

▲ 지난 1월11일 중국 지린 성 도문 시에 있는 도문대교에서 바라본 북한 남양역의 모습. ⓒ시사저널 윤성호

북한에 이동·통신의 자유 없는 것도 변수

 그렇다고 북한이 당장 ‘제2의 이집트’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국내외 전문가들도 북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중동발 민주화 바람이 북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는 보이나 ‘정권 붕괴’로 치닫는 상황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렇게 보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북한이 가진 특수성이다. 북한은 체제 이데올로기와 정권의 구조가 여타 중동 국가들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또 북한의 뒤에는 중국이라는 큰 변수가 버티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북한의 정권 엘리트들은 위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반 주민들이 (중동의) 영향을 받아서 실질적인 저항 세력을 결성해 저항 행동으로 갈 가능성은 아주 작다. 북한에서 이런 것이 가능하려면 김정일에 맞설 지도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다”라고 말했다. 양교수는 또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에는 세 가지 징후가 있는데, 북한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움직임이 없다. 군부의 움직임이 없고, 북한의 대외 관계에 변화가 없으며, 평양 시민들에게서도 특별한 동향이 관찰되지 않고 있다. 이런 것을 종합해 보았을 때 이번 중동의 민주화 바람은 북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의견이 조금 달랐다. 그는 “지금 당장은 가시적인 변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동 시민 혁명의 파장이 인접국인 중국에도 부분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외부 세계와 접하고 있는 북한 사람들에게는 충격이 될 것이다. 북한 체제가 인민들의 기대나 욕구 등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그것이 언젠가는 저항 운동의 계기가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이집트의 민주화는 흔히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혁명’이라고 부른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시시각각으로 이집트 내부 소식이 외부로 전달되었다. 혁명의 발단이 된 카이로 타흐리르(해방) 광장에서 대규모 시위를 열자는 주장도 페이스북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시위대는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전파했고, SNS를 매개체로 삼아 시위대를 조직하기도 했다. 이집트의 전체 인구 가운데 약 25%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으며, 휴대전화 보급률은 70%에 이른다. 이집트 민주화의 ‘일등 공신’이 바로 SNS였던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상황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이동과 통신의 자유가 없다. 외부 세계와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군과 국가보위부가 주민들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북한의 휴대전화 보급률도 전체 인구의 1.2%인 약 31만명에 불과하다.

 외국인과 주민들의 통신망을 달리해 외부와의 접촉을 아예 막고 있다. 중국 접경 지역에서 중국 휴대전화를 몰래 쓰는 주민들이 1만여 명 정도 있으나 북한의 민중 봉기를 이끌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지금의 북한은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통한 ‘SNS 혁명’을 기대하기 힘든 구조이다.

 양무진 교수는 “휴대전화를 이용해서 저항 행동을 하려면 거주 이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등이 있어야 한다. 북한에서는 통신 감청 등이 상당히 강화되어 있다. 때문에 휴대전화를 이용해 바깥 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휴대전화 이용자끼리 저항 세력을 형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히려 잘못 통화해서 정권의 탄압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통해 저항 운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최근 부분적 저항 운동 잇달아 발생

▲ 지난해 10월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65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열린 대규모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삼남인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오른쪽). ⓒ연합뉴스

 이에 대해 군 출신의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에 위성전화나 중국의 휴대전화를 대량으로 들여보내 이들을 각 지역의 정보 거점으로 활용하고 무장 세력으로 키워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북한 전역에 위성전화나 중국 휴대전화를 들여보내 정보 거점을 구축해야 한다. 도별로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정보 거점을 점조직으로 구축하고, 우리 정부가 이들에게 무기를 공급해서 지하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 유사시 중국 개입을 막고, 이들을 이용해 북한 내부에서 봉기를 일으켜 정권을 붕괴시키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북한 주민들의 의식 수준도 저항 운동으로 가기에는 낮다는 지적도 있다. 통일부장관 출신인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북한 주민들은 산업 사회, 민주 사회를 경험하지 못했다. ‘주권재민’이나 ‘시민권’ 개념도 사회 전체에 없다. 권력 승계는 당연히 받아들이지만 ‘왜 3남이냐’ 하는 왕조 국가의 신민 의식이 일반 주민들에게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 왕조에서 잠시 일제 식민지를 거친 후 다시 김씨 왕조로 넘어간 역사가 남긴 후유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평양의 봄’은 쉽게 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북한에서 저항 운동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초에 함북 청진시 수남 구역에서는 전직 보안서장(경찰서장)이 주민들이 던진 돌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그는 수십 명의 북한 주민을 교화소로 보냈고, 주민들이 여기에 복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함경북도 연사군에서는 주민이 땔감을 모두 회수한 산림감독대의 감독원 세 명을 살해했고, 북한의 장교들이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작업 명령을 집단으로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무진 교수는 “북한에서 봉기가 있다면 ‘먹는 문제’가 격한 감정으로 표출되면서 하나의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보았다. 즉 ‘생계형 저항’이 ‘체제 저항’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북한에서의 혁명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배고픔을 참지 못한 인민들이 욕구를 분출하는 ‘헝그리 혁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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