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폭풍, 어디까지 몰아칠까
  • 김회권·김세희 기자 ()
  • 승인 2011.02.2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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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에서 요르단까지 반정부 시위로 몸살…대통령 물러난 튀니지·이집트에서도 후유증 앓아

 

▲ 지난 2월22일 리비아의 토부르크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카다피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며 승리의 V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The New York Times 연합

혁명은 들불처럼 번졌다. 아랍권 전체가 대변혁의 열기에 휩싸여 있다. 그만큼 반동의 힘도 거세다. 밀고 밀리는 일진일퇴 형국이 곳곳에서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축은 이미 기울었다. 형태는 약간 다르지만 민중들은 이미 민주화라는 하늘을 보았다. 높은 파도가 일렁이는 대양을 항해 중인 아랍 국가들은 현재 어떤 상황에 있을까.


1. 리비아

 

 

  
 반정부 시위대의 기세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수도 트리폴리의 인근 도시를 시위대가 장악했다. 리비아 반정부 시위대는 현재까지 제2의 도시 벵가지를 비롯해 동부 지역을 장악했고, 여세를 몰아 제3의 도시 미스라타에 이어 즈와라 등 서부 일부 지역까지 손에 넣었다. 미스라타의 일부 주민들은 카다피 이전 왕정 시대의 국기를 흔들며 기뻐했다.

 2월25일 반정부 시위대는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마지막 보루인 수도 트리폴리에서 조직적인 대규모 시위를 열었다. AP통신은 시위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24일부터 이틀 동안 트리폴리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일 것이라는 내용을 전달했다”라고 전했다. 이런 전개라면 카다피를 지키는 이와 맞서는 이는 결국 트리폴리에서 만나게 될 전망이다.

 리비아는 지리상으로 튀니지와 이집트 사이에 있다. 인접한 두 국가가 혁명으로 들끓고 있는 와중에도 리비아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카다피가 42년 동안 철권통치를 이어온 데다 1인당 GDP가 1만5천 달러에 달해 상대적으로 부유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또한 리비아의 막대한 석유 자원과 부족 간의 갈등, 철통 보안군을 고려할 때 혁명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리비아도 ‘민주화 도미노’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자살 공격’을 감행할 정도로 분노한 리비아 시위대들의 기세는 이제 물리적으로도 꺾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리비아 정부는 사망자 수를 3백명 정도로 추산했지만, 리비아와 밀접한 이탈리아의 프라티니 외무장관은 1천명이 넘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반정부 인사에 대해 카다피는 ‘숙청’을 언급하며 항전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전황 자체를 뒤흔들 생각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중동 지역 담당자인 로버트 바엘은 “카다피가 주변 인사들에게, 다시 권력을 찾지 못할 수 있지만 리비아를 소말리아처럼 만들어 후회하게 해주겠다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석유를 둘러싸고 최대 1백50개 부족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게 될 경우 리비아는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럴 경우 돈과 군사력을 지닌 카다피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카다피는 물러서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시위대의 저항은 거세고 군 통제력이 떨어지고 있으며, 국제 사회의 압박도 심해지면서 운신의 폭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미친 개’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카다피의 운명에 전세계의 눈이 쏠려 있다.

 

▲ 이집트 카이로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한 시위자가 ‘신이 말하길 잘못을 행하는 모든 자는 멸망한다’라고 쓰인 천을 들고 있다. ⓒEPA


2. 이집트

 




  민주화 혁명에 성공한 이집트는 이후 빠르게 일상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은행과 관광지 등이 정상화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고, 정부는 군을 주축으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여전히 파업과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2백여 만명이 모여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퇴진을 자축하는 ‘승리의 행진’을 개최한 지난 2월18일, 군부는 성명을 통해 “국가 경제와 안보를 혼란에 빠뜨리는 불법 파업과 시위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퇴진으로 승리의 일단락을 맺은 이집트의 시위 물결이 또다시 번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월13일에는 카이로 국영 기관과 알렉산드리아 항구에서 일하는 공공 근로자들이 파업에 나섰고, 경찰관 수백 명도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튿날에는 이집트국민은행(NBE) 본점 직원들이 근로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현 정부에 대한 불신을 담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23일 타흐리르 광장에는 4천여 명의 시민이 모여들었다. 아흐메드 샤피크 총리가 이끄는 현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시위대는 국가안전부의 해산과 정치범 석방을 강력히 요구했다. 같은 날 카이로에서는 경찰 간부들이 내무부 청사 난입을 시도했다. 복직을 요구하며 난입을 시도한 그들은 군에 의해 저지당하자 청사에 불을 지르고 차량을 불태우며 저항했다. 농산물개발회사에서는 1천8백여 명의 노동자가 파업을 했고, 국립철도청 직원 3백여 명은 재취업을 요구하다 군에 저지당했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퇴진하고 현 정부가 다양한 유화책으로 민심을 끌어안으려 하고 있지만 ‘코샤리 혁명’은 아직 진행형이다.


3. 튀니지

 

 

 
  벤 알리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난 직후 모하메드 간누치 총리(69)는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불과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국회의장이 임시 대통령직을 맡도록 한 헌법에 따라 푸아드 메바자 국회의장(77)이 대통령 직무대행을 맡게 되었다. 헌법위원회는 45~60일 내 대통령 선거를 치를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사실상 권력 공백 상태인 튀니지는 혁명 후에도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수도 튀니스를 비롯한 도심에서는 폭도들에 의한 방화와 약탈이 속출하고, 튀니지 동부 모나스티르의 한 교도소에서는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재소자 50여 명이 불에 타 숨지거나 탈옥을 시도했다. 정국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튀니지 전역에는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CNN은, 수도 튀니스 곳곳에 탱크와 무장 군인 등 군 병력이 배치되기 시작했으며 사복 경찰들이 거리에 나온 청년들을 곤봉으로 때리고 발로 짓밟는 등 ‘재스민 혁명’이 과도 정부 출범과 함께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월15일을 기점으로 튀니지 내무부는 야간 통행금지를 해제했다. 독재 정권을 종식시킨 후 한 달여 만이었다. 모하메드 간누치 총리는 여야 통합 과도 정부의 내각을 꾸려 대선과 총선을 준비하는 등 과거 청산 작업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그러나 민심은 여전히 싸늘하다. 국가 비상령이 유지되고 있는 데다가 주요 부처 장관들과 총리 등 독재 정권의 핵심 인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야권 인사 몬세프 마르주키는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 과도 정부는) 겉으로 통합을 외치지만 결국 독재 정당의 인사들로 구성되었다”라고 비판했다.

 시민들은 또다시 거리로 나섰다. 지난 2월20일 3천명의 시위대가 튀니지 정부 청사에서 모하메드 간누치 총리의 사임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튀니지 과도 정부는 경찰을 동원해 시위대에게 경고 사격을 가하는 등 강경책을 쓰면서도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벤 알리 전 정권 치하에서 수감되었던 정치범들을 대거 사면시키는 등 민심 수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에 벤 알리 전 대통령의 송환을 공식 요청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 전역에 민주화 바람을 일으킨 튀니지는 여전히 혁명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4. 바레인

 

 

 

 
  지난 2월17일 시위 도중 사망자가 발생한 바레인은 총리가 물러나고 왕세자가 직접 나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왕세자는 광장의 시민들에게 집회의 자유를 허락하고 반정부 세력에 직접 대화를 제의하는 등 파격적인 양보를 제안했다. 정부는 한 발짝 더 나아가 2월22일 시위대의 요구에 따라 테러 혐의로 구속된 23명의 시아파 정치범을 석방했다. 이들은 파워블로거와 종교 지도자 등으로, 지난해 10월 실시된 바레인 총선 전에 ‘테러’와 ‘정보 조작’ 혐의를 받고 체포되었다.

 정부의 유화책에도 시위대는 치안 책임자인 칼리파 총리의 퇴진과 왕정 타도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다. 왕세자가 제안한 대화는 시작될 조짐조차 없다. 바레인 인권센터의 아부 라자부 대표는 “시아파 정치범은 약 4백명이 더 있다. 시위대의 요구는 이들 23명만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2월22일에 열린 대규모 시위에는 지금까지 최대인 수만 명(집회 주최측 추산)이 참가해 “체제 변화의 때가 왔다”라고 외쳤지만 다음 날 친정부 신문은 참가자를 ‘수천 명이다’라고 보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변수가 등장했다. 이번에 석방된 23명과 함께 테러 혐의를 받아 영국 런던으로 도피했던 시아파 ‘권리 운동’의 지도자인 하산 무샤이마가 페이스북을 통해 귀국을 예고했다. 그에 대한 체포 영장은 지금도 유효한 상태이다.

▲ 튀니지에서는 벤 알리 대통령을 축출한 이후에도 임금 인상 요구 등 각종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EPA


5. 이란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는 지난 2월20일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시위대 한 명이 사망했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보도했다. 치안부대는 위협 사격을 하며 최루탄을 쏘았고 시위대는 돌팔매질로 맞섰다. 반면 같은 날 이란 국영 방송은 “테헤란 시내는 평온하고 시민들은 쇼핑을 즐기고 있다”라고 전하며 시위와 관련된 뉴스는 내보내지 않았다. 현재 이란 정부는 이란 주재 외신의 현장 취재를 금지하고 있고, 국제전화 발신도 가로막고 있다.

 야권에는 점점 패배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시위 이틀 뒤인 2월22일 야당 지도자인 메르디 카루비 전 국회의장의 측근이 반정부 시위대를 향해 “새로운 지시가 있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라고 페이스북을 통해 전했다. 이로써 사실상 이란의 반정부 시위는 중단되었다. 이란 내부의 목격자는 20일 시위 이후 테헤란 시내 주요 교차로에는 많은 치안 부대원이 배치되었지만 시위대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개혁파’들은 반정부 시위의 중단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정부의 강경 대응과 리비아 사태가 겹쳐지면서 나온 결정이 아니냐는 추측이 유력하다. 리비아의 무력 진압 소식은 이란에서도 매일 보도되고 있다. 현재 야권 지도자들의 신변이 모호한 것도 시위가 중단된 원인이다. 야권의 중요한 축인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는 실종되었고, 몸을 숨긴 카루비 전 국회의장을 찾으려는 치안 당국은 그의 아들을 연행하는 등 지속적인 탄압을 행하며 구심점을 파괴하고 있다.


6. 예멘

 

 

 
 2월 초부터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예멘에서도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에 대한 퇴진 운동과 이를 진압하려는 치안 당국의 움직임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2월16일에는 시위대와 치안 부대의 충돌로 민간인 두 명이 사망했다. 남부에 위치한 아덴에서는 군이 시내로 진입해 최소 20명이 구속되었다. 2월17일 수도 사나에서는 약 2천명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반정부 시위대와 정부 지지자들이 충돌해 최소 25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다음 날인 18일 타이즈에서는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 수백 명 가운데로 수류탄이 떨어져 두 명이 사망했다. 당시 목격자는 “정부의 공식 차량 번호판을 단 차에서 수류탄을 던졌다”라고 주장했다. 아덴에서도 같은 날 치안부대의 발포로 네 명이 사망했다. 수도 사나에서도 구타당한 시위대 4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동안 강경 진압으로 일관하던 살레 대통령은 사망자 발생 이후 여론이 나빠지자 2월24일 갑작스레 성명을 내고 “예멘 정부는 평화적으로 집회를 열 수 있는 시민들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할 것이다”라고 공언했다. 강경 진압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 튀니지와 이집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7. 모로코

 

 

 

  2월20일,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 도심에서는 헌법의 전면적인 개정을 요구하는 시위에 최대 1만명이 모였다. 입헌군주국이지만 어느 정도 민주화가 진행된 모로코를 두고 전문가들은 “반정부 운동이 다시 일어날 여지가 적은 곳이다”라고 분석했지만, 아랍 민주화의 불길은 이처럼 뜨거웠다.

 이날 시위는 이집트처럼 페이스북의 캠페인이 시발점이었다. 그동안 잠재해 있던 정치적 긴장감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파급되었고, 오프라인에서 폭발적으로 드러났다. 시위대는 “독재 정치 반대” “헌법 개정”을 외쳤고 정부의 부패와 국영 TV에 반대하는 구호도 나왔다. 무함마드 모로코 국왕은 1999년 즉위한 이래 개혁적인 조치를 취하며 국민의 지지를 받아왔지만 대다수 왕정이 그렇듯 모든 국가 권력은 국왕과 그의 가신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2월23일 무함마드 국왕은 정치 개혁은 하겠지만 퇴진은 안 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며 불씨를 남겼다.


8. 요르단

 

 

 
요르단은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었다. 1월 말부터 시위대는 수도 암만을 중심으로 ‘물가 상승’과 ‘실업률 증가’ 등을 지적하며 사미르 리파이 총리 퇴진을 요구했었다. 압둘라 국왕은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했고 지난 2월1일 리파이 총리가 사임하면서 반정부 시위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집트와 리비아에서 불어온 바람은 거셌다. 2월18일 이슬람 집단 예배가 끝난 뒤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 2천여 명이 ‘억압이 아닌 개혁을!’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압둘라 국왕이 가진 내각 임명권과 의회에 대한 해산권 등을 제한할 것을 요구했다. 이날 시위에서는 반정부 시위대와 친정부 시위대가 충돌했고 여덟 명이 부상을 당했다. 오히려 요르단의 시위는 더욱 격화되는 모양새이다. 최대 야당인 ‘이슬람행동전선’은 정부의 빠른 개혁 이행을 촉구하며 대규모 시위 계획을 발표하고 나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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