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민주당 돼야 정권 교체 가능”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05.29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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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대표 정치인’ 1위 정동영 의원 인터뷰 / “지금은 한·미 FTA 아니라 남북 FTA 해야 할 때”

ⓒ시사저널 이종현

#장면

지난 5월26일, 이채필 고용노동부장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장.

정동영 의원(이하 정): 후보자는 전태일을 아세요?

이채필 후보자(이하 이): 네.

정: 후보자는 전태일 평전을 읽었습니까?

이: 전태일 평전 전체를 다 읽지는 않았고 내용은 알고 있습니다.

정: 1970년 스물두 살 아름다운 청년, 평화시장의 노동자 전태일 열사가 온몸을 불사르면서 분신으로 항거할 때 외친 주 내용이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정: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이겁니다. 지금 노동계, 노동자들은 걱정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이채필 후보자가 반(反)노동이라는 것이죠. 오죽하면 존경하는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도 후보자의 노동운동을 부정하는 철학을 문제 삼은 바 있습니다. 노동관, 노동 철학이 노동부장관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합니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의 ‘좌향좌’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중도 개혁 성향으로 분류되던 그는 자신을 “진보주의자이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사실 그가 2009년 용산 참사 현장에 처음 얼굴을 비칠 때만 해도 ‘정치적 액션’으로 보는 등 의심 어린 시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그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었다.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이라면 어디든 주저 없이 달려갔고, 서민들의 농성장에서도 함께 구호를 외쳤다. 그의 ‘진보 담금질’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통일부장관과 대통령 후보까지 지낸 3선 의원으로 ‘중량감’ 있는 의정 활동을 할 만도 하다. 하지만 그는 당내에서 초·재선 의원에게나 어울릴 법한 ‘쇄신파’로 불린다. 그만큼 현재의 민주당 노선이 마뜩치 않다는 것이다. 이를 놓고 당내 유력 대선 주자로 부각되고 있는 손학규 대표를 의식한 차별화 전략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지난 4·27 재·보선 이후 손대표는 중도 성향을 흡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정최고위원의 발걸음에서는 ‘민중 속으로’를 뜻하는 ‘브나르도’ 운동이 연상된다. “요즘 ‘복지와 평화’ 두 가지 화두를 고민하고 있다”라는 정최고위원을 5월2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시사저널> 여론조사에서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 1위’로 꼽혔다.

고향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신 것 아닌가. 고마운 일이고, 잘하라는 응원과 격려일 것이다. 호남은 지역이 아니라 정신이다. 5·18 희생이 광주 시민만의 자유·인권·권리를 외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인권, 권리를 외친 희생이었다. 이런 점에서 호남의 정치의식이 앞서 있다고 하는 것이다. 민주당, 김대중 대통령이 호남의 지지를 받은 것은 고향의 아들이라는 점도 있지만, 호남의 가치를 대변했기 때문이다. 보수 인사가 나오더라도 호남의 가치를 대변하지 못한다면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광주의 전국화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우리 민주주의의 한계이다. 정치를 하면서 느낀 소회는 호남이 차별의 상징, 경제적 약자였다는 점이다. 이런 소외와 차별을 받는 사람들을 더 적극적으로 대변하라는 뜻이라고 본다. 

내년 대선 후보 지지도 면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호남에서도 1위로 꼽혔다. 어떻게 보아야 하나?

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것이라는 확신이 아직 충분히 확산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년 4월 총선 후 민심이 정확하게 표현될 것이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 것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1년 전만 해도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되겠느냐’라는 회의가 많았다. 하지만 6·2 지방선거와 4·27 재·보선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나라당으로는 안 되겠다는 민심이 표출되었다. 상황이 변하고 있다. 남은 것은 이제 민주당 하기에 달렸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민주당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 지난 3월8일 국회 환노위 소속 정동영 의원 등이 정리해고 문제로 노사갈등을 겪고 있는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를 방문했다. ⓒ연합뉴스

정체성이다. 한나라당과 판이하게 다른 정체성과 색깔을 가져야 대안이 되지 않겠나. 중도 개혁 주의를 접고 진보적 민주당의 길을 가야 한다. 손학규 대표가 최근 ‘민생 진보’라고 말하는데, 물론 민생 진보는 해야 한다. 하지만 민생 진보와 한·유럽연합(EU) FTA (여야) 합의 처리와는 상충된다. 합의 처리하려는 자체가 민생 진보와 안 맞는다. 결국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날치기 통과시켰지만. 민생 진보는 자영업자들의 골목에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인데, FTA는 이것을 터주는 것이다. 반(反)민생이다. 그 맥락에서 한·미 FTA도 반대하는 것이다.

한·미 FTA 협상을 다시 하자는 것인가?

일차적으로는 FTA 독소 조항을 없애자는 것이다. FTA로 이득을 보는 곳은 대기업 몇 개인데 꼭 그렇게 안 해도 대기업은 이미 경쟁력이 있지 않나. 헛짓을 하는 것이다. 또다른 대표적인 헛짓이 바로 4대강 사업이다.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북한 문제이다. 한·미 FTA가 아니라 남북 FTA를 해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 등록금, 사교육비, 아이들 보육료, 주거 문제, 연금 등 이런 것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내년에 정권을 바꾸어서 대내적으로는 복지 국가, 대외적으로는 남북 FTA를 통해 평화 체제로 가야 한다. 남북 경제공동체로 가야 한다.

야권 연대 혹은 통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야권 통합 단일 정당으로 가야 한다. 6월10일 전에 원탁회의가 만들어져야 한다. 두 가지 깃발을 계속 들고 왔다. 하나는 민주당이 담대한 진보로 가야 하고, 그 결실로 당헌·강령을 바꾸었다. 보편적 복지를 당헌·강령에 새겼다. 또 하나는 여야가 1 대 1로 맞장 뜨는 구도로 가야만 이길 수 있다. 그렇게 가야 내년에 정권이 바뀐다. 정권이 바뀌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다 못했던 복지 국가, 남북 FTA를 하자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야당끼리)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그 차이는 정권을 획득해서 펼칠 미래 비전에 비해 작은 것이 아닌가.

롤 모델로 삼는 복지 국가가 있나?

나는 한국과 스웨덴 의원친선협회 회장이다. 스웨덴에 가보니, 첫째, 국민들 걱정이 없더라. 둘째, 경제가 성장하더라. 국가 부채는 최저이고 노동 시간은 적은데, 노동 생산성은 미국보다 높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유성기업이 농성했던 이유가 ‘잠 좀 자고 일하자’라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가 삶의 질을 얘기해야 한다. 독일 폭스바겐은 1993년부터, 일본 도요타는 1995년부터 밤샘 작업을 안 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우리의 노동 시간이 최장이다. (스웨덴은) 우리보다 훨씬 적게 일하는데도 경제는 성장하고, 국민은 걱정이 없다.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한국형 복지 국가로 가야 한다. 스웨덴에서 배울 것은 딱 하나, 사람을 한 명도 버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2009년) 쌍용자동차 사태 후 (자살과 합병증 등으로) 15명이나 죽었는데 정부는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경제 성장이고 뭐고 다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바로 사람 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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