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돌린 충청권 “야당 찍겠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1.05.29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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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총선에 56.9%가, 대선에 52.9%가 ‘야당 후보 지지’ 선택…‘지역 대표 정치인’ 1위는 이회창

  '충청도'가 돌아앉았다. 이명박 정부를 향한 시선이 냉랭하다 못해 싸늘하다. 세종시 수정안으로 흔들렸던 민심은 최근 불거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유치 문제로 완전히 돌아섰다. 지난 5월16일 대전 신동·둔곡 지구가 과학벨트 거점 지구로 확정되었음에도 현 정부에 대한 충청 지역의 민심은 여전히 냉담했다. 충청 지역에 연고를 두고 있는 한 야당 관계자는 “본래 속내를 알 수 없는 것이 충청도 사람이라지만 이제 대놓고 정부·여당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는 이들이 많다. 요즘은 각종 현안에 대해 충청 지역민들이 전라도식 ‘야성’을 드러내고 있다”라며 심상치 않은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그동안 충청권은 영·호남 지역에 비해 정치적 색깔이 뚜렷하지 않은 지역으로 분류되었다. 지난 2007년 12월 대선에서 37.1%의 지지율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선택했지만, 2002년 대선에서는 51.8%의 지지율로 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선택하기도 했다. 충청 지역의 민심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권력도 함께 이동했기 때문에 충청권은 대선 때마다 ‘캐스팅보트’를 행사해왔다.  

“대통령 국정 운영 잘못” 65.3%

하지만 여론조사에 나타난 충청권의 민심은 한마디로 현 정권으로부터 ‘완전히’ 돌아섰다. <시사저널>이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5월21~22일 충청·강원 지역 주민 5백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이다.

먼저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을 잘 수행하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서 ‘잘못하고 있다’라는 부정 평가가 65.3%로, ‘잘하고 있다’(32.7%)를 두 배가량 앞질렀다. ‘내년 4월에 있을 총선에서 어느 후보를 지지하겠는가’라는 물음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야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라는 응답(56.9%)이 ‘여당 후보를 지지하겠다’(29.5%)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연령별·직업별 조사 결과를 보면 특히 30~40대 연령층에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야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자 가운데에서 30, 40대층이 각각 72.4%와 70.0%를 차지한 반면, 여당 후보 지지자 중의 30, 40대층은 각각 17.1%와 17.9%에 불과했다. 직업별로도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자영업, 학생, 주부 계층 등 무직을 제외한 모든 직군에서 야권 지지가 우세했다.

‘내년 12월 대선에서 어느 후보를 지지하겠는가’라는 질문에서도 마찬가지로 야권의 강세가 이어졌다. ‘야당 후보’를 선택한 응답이 52.9%로 ‘여당 후보’를 선택한 응답(31.1%)보다 훨씬 높았다.

연령별·직업별로는 30~40대, 화이트칼라와 학생층에서 야당이 우세했다. 반면 블루칼라와 무직층에서는 ‘여당 후보 지지’가 ‘야당 후보 지지’를 앞서고 있었다.

이처럼 충청 지역의 민심이 돌아선 데에는 현 정부가 세종시나 과학벨트와 같은 공약을 수차례 뒤엎었던 것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충청 지역에서 활동하는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충청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것이 ‘명분’이다. 현 정권은 처음에는 세종시 수정안과 과학벨트를 맞바꾸려 했다. 나중에는 과학벨트마저 못 주겠다는 식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비록 과학벨트를 충청권에 유치하는 것으로 결론은 났지만, 이미 충청인들의 자존심은 생채기가 날 대로 난 상태이다. 당연히 받을 것을 마치 구걸하듯이 받은 모양새 때문이다. 애초 대선 공약에 있었던 것을 수차례 뒤엎은 현 정부는 어떠한 명분도 챙길 수 없게 되었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충청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서는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가 22%의 지목률로 1위에 올랐다. 그는 지난 5월9일 당 대표에서 물러났지만, 지역에서는 여전히 ‘건재한 정치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자유선진당의 임영호 대변인은 “이 전 대표는 당 차원의 쇄신을 위해 대표직을 사퇴하면서까지 백의종군하고 있다. 그만큼 내년 총선과 대선을 위해 대단한 ‘결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지역민의 기대에 부응해 반드시 충청권의 대단합을 이루어낼 것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 전 대표측은 <시사저널>의 인터뷰 요청에 “대표직에서 물러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어서 모든 언론사의 인터뷰를 사양하고 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선거 최대 이슈로 ‘세종시 문제’ 지목

2위에는 9.1%의 지목률로 심대평 국민중심연합 대표가 올랐다. 이어 염홍철 대전시장(6.8%)이 3위, 안희정 충남도지사(6%)가 4위로 그 뒤를 이었다. 충북 음성 출신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5%의 지목률로 5위에 오른 것도 눈에 띈다. 이들 가운데 특히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인물로 꼽히는 이가 바로 안희정 지사이다. 충청 지역 사람들은 익숙한 인물을 지향하는 일종의 ‘관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충청인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색채가 강한 안희정을 충남도지사로 뽑은 것은 이례적일 수밖에 없었다. 충청 지역 정가 관계자들은 “김종필을 잇는 충청권 인물이 없는 상황에서, 충청 지역 사람들에게는 정당을 떠나서 지역 인물을 키우고 싶은 심리가 있다. 때문에 신예인 안지사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라고 입을 모았다.

‘향후 선거에 가장 영향을 미칠 지역 이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역시 ‘세종시 문제’를 꼽는 이가 35.6%로 가장 많았다. 2위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문제’(26.4%)였다. 이 두 가지 문제로 현 정부에 대한 충청인들의 반감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3위는 ‘4대강 사업문제’(17.3%)였고,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 및 정치인의 통합 여부’(13.4%)를 지목한 주민들도 적지 않았다. 최근 자유선진당과 국민중심연합의 통합을 둘러싸고 충청권 정가가 흔들리는 가운데, 충청권을 대표하는 통합 정당의 출현을 갈망하는 지역민들의 바람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충청 지역의 현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서는 ‘물가 문제’를 꼽은 이가 25.8%로 가장 많았다. ‘실업 문제’(22.9%)와 ‘지역 개발 문제’(13.3%)가 뒤를 이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대전과 충북 지역은 ‘실업 문제’, 충남 지역은 ‘물가 문제’에 대한 불만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 또 충북 지역의 경우 ‘서울·수도권과의 격차 문제’에 대한 불만이 높게 나왔는데, 대전·충남에 비해 더 낙후되었다는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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