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권력자는 ‘포노족’, 그들이 미쳐 날뛰게 만들어야”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7.11 14:00
  • 호수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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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포노사피엔스》 쓴 최재붕 성균관대 교수…시스템에서 소비자로 권력 이동

기술혁명의 진화를 살펴본 《포노사피엔스》가 서점가를 강타했다. 올 3월에 출간된 이 책은 출간 4개월 만에 9만 부를 돌파했다. 불황기를 감안하면 빠른 판매고다. 저자는 현재 국회 4차산업혁명특위 자문위원으로 있는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다.

2015년 3월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사피엔스에 빗대어 ‘스마트폰을 쓰는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뜻으로 ‘포노사피엔스’를 만들었다. 포노사피엔스 관점에서 보면, 인류사는 AJ(Anno Jobs)와 BJ(Before Jobs)로 나뉜다. ‘신은 인간을 만들고, 스티브 잡스는 포노사피엔스를 만들었다’(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 시사저널 이종현
ⓒ 시사저널 이종현

스마트폰은 인간의 뇌 구조 바꾼 혁명적 기기

최 교수는 “스마트폰의 등장은 인류사에서 석기·청동기·철기와 같은 수준의 문명적 대사건”이라고 설명했다. 2007년 1월10일 탄생한 스마트폰 ‘아이폰’은 10년 만에 우리 삶을 너무 많이 바꿨다. 인류학자들은 인류가 스마트폰이라는 특정 도구를 삶의 도구로 받아들이는 시간이 가장 빠르다고 말한다. 스마트폰 보급률은 오는 2022년 80%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관련 산업도 급변하고 있다. 125년 역사의 미국 시어스(Sears)백화점이 파산하고 아마존이 세계 유통산업의 기린아로 등장한 것이나, 타임과 같은 전통적인 미디어 매체가 쇠락하고 있는 것, 수많은 금융회사들이 점포 문을 닫는 그 모든 배경에는 '포노족(族)'이 있다.

지금까지의 문명사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었다면, 포노족은 유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다르다. 위키피디아에서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찾는 포노족은 거의 하루 만에 30억 명가량 되는 사람에게 정보를 보낼 수 있다. 인류 역사상 이런 도구가 없었다. 6월26일 만난 최 교수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향후 포노족이 몰고 올 산업 변화를 다각도로 제시했다.

스마트폰을 대체하는 기기가 등장하면 포노사피엔스 개념도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닌가.

“포노사피엔스 시대 제일 중요한 화두를 꼽으라면 ‘인간’이다. 이전까지는 시스템이 모든 권력을 갖고 있었다. 언론도 권력, 법도 권력, 기업도 권력이었다. 그랬던 것이 포노사피엔스 시대에 와서는 언론이 갖고 있던 권력의 50%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갖고 갔다. 소비자를 사로잡는 뭔가가 권력을 잡게 된다는 것인데, 나는 이를 플랫폼이라고 본다. 유튜버들이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권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이들의 특징은 뭔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킬러콘텐츠다. 이는 사용자의 경험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러기 위해선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BTS의 성공이 이를 말해 준다.”

이 책에선 팬덤(Fandom) 문화를 강조하면서 BTS를 설명했다.

“팬덤을 만들어내는 방식 자체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까지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아이돌그룹의 기준을 잘생기고 멋있는 것에만 맞추되 팬들과의 소통은 옛날 방식 그대로였다. 반면 BTS는 ‘분노와 불만’에서부터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가수가 나오려면 지금 방식으론 안 된다고 본 것이다. 팬들과 진정으로 소통해야 하고, 그러려면 음악이 본질이라고 봤다.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중요시했다.”

아미(ARMY)라는 팬덤이 그걸 만든 것인가.

“멤버 선발의 기준도 결국 ‘음악’이었다. 제이홉 같은 멤버는 이미 유튜브에서 ‘춤의 신’이라고 불렸던 인물이다. 7명 멤버가 모두 비(非)서울 출신이다. 그리고 멤버 모두를 노래를 만들 줄 아는 사람들로 채웠다. 노래에 자기 인생을 담은 것이다.”

결국 인문학적 성찰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스마트폰은 오래전부터 인간이 써왔던 석기·청동기·철기와 같은 개념이다. 스마트폰은 인간의 뇌를 바꾼다. 앞으론 검색을 잘하는 사람이 생태계를 지배할 것이다. 새로운 기기가 등장해도 소비자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캐나다 워털루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이 학교는 '스마트폰의 효시’인 블랙베리를 만든 RIM의 창업자도 공부한 곳으로 안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도 이런 세상을 예상했는가.

“대단한 물건이라고는 봤다. 2007년 삼성전자 디자인연구소와 5~10년 후 미래 디자인에 대해 연구했는데, 거기 스마트폰이 들어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 삼성은 굉장히 빠르게 대응했다. 노키아·모토롤라 등 기존 강자들은 모두 사라져가고 있지 않은가. 삼성에게 신의 한수는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손을 잡은 것이다. 인류사는 뇌의 발달과 협력이다. 핸드폰이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이면 스마트폰은 뇌 구조를 바꾼 기기다.”

킬러콘텐츠의 정의를 꼽는다면 뭘까.

“콘텐츠건 제품이건 최고의 상품을 말한다. 휠라의 히트작 레트로(Retro)를 보자. 레트로는 디자인이 유명한 작품인데 거의 망할 뻔했다. 값이 20만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주법인 대표가 본사에 오자마자 ‘이건 중·고생이 좋아할 아이템이다. 값을 6만8000원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6만8000원짜리 고(高)퀄리티 제품이 나오니 중·고생들이 당연히 열광하는 거 아니겠는가. 휠라는 신발업계에서 존재감이 없는 브랜드였는데 작년에는 세계 판매량 4위로 올라섰다. 포노족은 팬덤에 열광한다. 자기들끼리 난리를 만든다.”

공공기관 강의를 많이 다니는데 반응이 어떤가.

“설명을 하면 많이 놀라워한다. 하지만 40대까지 70%인 모바일뱅킹 이용자가 50대 와서는 35%, 60대 이상은 5.5%대로 낮아지는 것을 봐라. 대한민국 입법·사법·행정부 기관장은 60대 이상이지 않나. 이들은 문명의 표준을 너무 모른다.”

우리나라가 포노족 시대에 대응을 잘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되게 똑똑하다. 중국은 굉장히 잘나가지만 정부 영향력이 크다. 미국은 동부, 서부와 중부가 완전히 다른 지역이다. 대한민국은 잘못하고 있지만 잘 가고 있다.”

대한민국이 잘못하고 있는 점은 뭔가.

“세계 100대 벤처가 우리나라에 오면 70%가 불법이다. 우버(UBER)만 해도 어떤가.”

정부가 그걸 용인할 수 있을까.

“미래는 정해져 있다. 방향이 맞다면 고통을 나눠야 한다. 사용자의 행위가 바뀌는 걸 어떻게 하나. 조선조 말 흥선대원군이 했던 걸 봐라. 잘못한 게 있나. 어찌 보면 생태계를 보호한 거다. 혁명에도 막을 수 있는 것과 막을 수 없는 게 있다.”

최재붕 성균관대 교수가 6월1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전경련국제경영원 CEO 조찬경연에서 ‘새로운 문명의 축, 포노사피엔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뉴시스
최재붕 성균관대 교수가 6월14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전경련국제경영원 CEO 조찬경연에서 ‘새로운 문명의 축, 포노사피엔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뉴시스

외국 자본 유입으로 우리 생태계가 타격을 받는 것 아닌가.

“플랫폼은 소비자를 위해 존재하지 않으면 금방 배신당한다. 고객에게 불편함을 주면 플랫폼은 설 땅이 없다.”

플랫폼 비즈니스로 성공할 나라는 미국·중국·인도 등 몇 군데밖에 없지 않나.

“그런 논리라면 BTS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겠는가. 프랑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가 이런 말을 했다. ‘음악 소비의 변화를 보면 세상의 변화가 있다’고. 이는 일본도 못한 일이다. 플랫폼을 가질 수 없다면 대신 팬덤을 만들면 된다. 제조업도 팬덤을 만들어야 한다. 한류가 좋으니 한국 화장품이 좋다는 논리다.”

기업문화의 변화도 필요한 거 같다.

“제조업 세계 5대 강국이 미국·중국·일본·독일, 그리고 한국이다. 명품이라는 게 팬덤을 기반으로 한다면, 그것도 괜찮은 전략이다. 가령 모 출판사가 만든 《상어송》은 빌보드 차트 32위까지 올라갔다. 플랫폼은 쉽지 않지만, 플랫폼에 태울 상품이나 서비스는 우리가 잘 만든다. CEO(최고경영자)부터 데이터로 문명의 표준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트렌드가 너무 빠르다 보니, 투자가 쉽지 않다는 게 기업인들의 고충이다.

“학습을 안 해서 그렇다. 해법이 어느 책에도 없는 이유가 주도권이 시장에 있어서다. 그러니 데이터를 봐야 한다. 그런 분들에게 ‘내 안에 있는 대원군을 몰아내라’고 말하고 싶다. 대원군의 문제는 기준이 틀렸다는 점이다. 반세기 후 조선은 쇄국 때문에 몰락한 거다.”

전통적인 미디어도 고민이다.

“결국 훌륭한 콘텐츠를 많이 가진 기업은 살아남는다. 여기서 말하는 훌륭한 콘텐츠는 포노족이 좋아하는 거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가짜뉴스는 한계가 있다.”

포노족이 좋아하는 콘텐츠의 기준은 뭘까.

“시각은 기본이고 진정성도 중요한 문제다. 형식 자체가 많이 바뀌어야 한다. 스마트폰에서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 미디어도 팬덤이 중요하다. 가령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만 봐라. 제프 베이조스가 사서 적자는 계속되더라도 ‘쓰고 싶은 기사를 계속 쓰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콘텐츠를 만드는 프로세스를 바꾸더니, 전 세계 신문사에 소프트웨어를 팔더라.”

지금의 선행학습을 포노족 시대에 어떻게 봐야 할까.

“교육이 제일 큰 문제다. 미국의 좋은 사립학교는 ICT(정보통신기술)를 기반으로 한다. 이 기기를 다루지 못하면 세계적인 부호가 될 수 없다. 과거 방식으로 성공할 확률이 50%라면 그렇지 못한 아이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방법도 50%다. 미네르바스쿨(구글이 만든 혁신대학)을 봐라. 캠퍼스가 없다. 수업의 50%는 현장에서 인턴십을 받게 한다. 대신 수업은 온라인에서 듣는다. 프랑스 교육혁명으로 불리는 ‘에콜42’는 수업도 없고 교수도 없다. 문제 해결 방법만 알려주고, 나머지는 인터넷 뒤져서 찾는 방식이다. 앞으로의 교육은 ‘암기’가 아니라 ‘검색과 이해’다.”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기에 책을 많이 보라고 하지 않나.

“책을 많이 보라고 강조하는 건 정보에 많이 접근하라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정보를 주는 창구가 많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MIT(매사추세츠공과대)나 스탠퍼드대 유명 교수들의 강의를 듣도록 해 줘야 한다는 말이다. 제일 문제는 스마트폰으로 공부해 본 적 없는 어른들 아닌가.”

정부가 ‘스마트 제조업’을 강조하는데.

“포노족이 좋아하는 제품과 유통망, 서비스를 만든 다음 르네상스를 해야 하는데, 그걸 살지 안 살지 모르는 상태에서 공장만 자동화한다고 해서 될까. 아마존이 성공한 이유가 뭔가. 좋은 물건을 싸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사고와 규제로는 한계가 있다. GM(제너럴모터스) 철수는 절대 안 된다고 하면서, 타다(공유차 서비스)는 막고 있다. 지금은 GM도 제조업이 아니라, 공유차 서비스로 업종을 바꿔가는 세상이다. 조금의 차이라도 고객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낸 사람이 시장에서 이기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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