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도시'로 가는 황의조, 유럽 취하게 할까?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20 14: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랑스 리그1 지롱댕 보르도와 4년 계약…A대표팀 공격진, 유럽파로 재편

보르도는 프랑스 남서부의 항구도시다. 파리, 마르세유 같은 대도시는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정치, 철학, 무역의 중심지였고 중세 건축물이 잘 보존된 영향력 있는 문화도시다. 국내에는 부르고뉴와 더불어 프랑스산 와인을 상징하는 대표 지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풍요로운 도시에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축구클럽 지롱댕 보르도가 있다. 1881년 설립된 구단으로 올해로 138년의 역사를 맞는다. 1980년대에 세 차례 리그 우승과 두 차례 컵대회 우승으로 전성기를 누린 보르도는 프랑스 최고의 축구 스타인 지네딘 지단이 이탈리아 유벤투스로 이적하기 전 마지막으로 몸담은 자국 클럽으로도 유명하다.

이 팀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간판 공격수 황의조가 입성한다. 프랑스 언론들은 7월15일 보르도가 황의조와 4년 계약을 체결했다고 알렸다. J리그의 감바 오사카에 바이아웃 금액인 200만 유로(약 27억원)를 지불하는 조건이다. 연봉은 기본급과 수당 포함해 총 180만 유로(약 24억원)다. 미국에서 진행되는 보르도의 프리시즌 훈련에 합류해 새 시즌 준비에 돌입한다.

가대표팀 공격수 황의조(사진)가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1에 진출했다. ⓒ 연합뉴스
가대표팀 공격수 황의조(사진)가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1에 진출했다. ⓒ 연합뉴스

황의조에게 유럽 진출 자신감 준 손흥민

황의조의 유럽 진출은 작년 여름부터 논의됐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의 주역이 되며 재평가에 성공했고,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이하 A대표팀)에서도 부동의 스트라이커로 올라섰다. 이전과 달리 A매치에서도 우루과이, 호주, 이란 등을 상대로 득점 행진을 이어가며 경쟁력을 확실히 선보였다. 병역 문제까지 해결한 터라 걸림돌도 없앤 상태였다.

2018년 J리그에서 21골을 기록하며 득점 3위에 오른 황의조에겐 새로운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그에게 자극이 된 것은 동갑내기인 손흥민(토트넘)의 맹활약이었다. 아시안게임과 아시안컵에서 파트너로 함께 뛰는 동안 황의조의 활약은 손흥민 못지않았다. 유럽에서 정상급 공격수로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한 손흥민은 황의조에게 유럽 진출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는 동시에 도전의식도 불러일으켰다.

아시안컵 이후 황의조는 에이전트에게 해외 이적을 적극 요청했고, 목적지는 유럽으로 못 박았다. 이미 지난해부터 중동, 중국 등 아시아권의 갑부 구단과 북미 메이저리그사커(MLS) 팀들의 제안이 왔지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유럽으로 갈 경우 연봉을 비롯한 개인 대우 면에서 더 손해라며 높은 이적료와 연봉을 보장하는 이적을 권유하는 주변 이야기도 단칼에 잘랐다. 최근 유럽파의 주 목적지로 떠오르고 있는 독일 분데스리가를 비롯한 유럽 클럽과 접촉이 시작됐다.

프랑스 리그1은 낯선 무대는 아니다. 1997년 서정원(스트라스부르)을 시작으로 이상윤(로리앙), 안정환(메스), 박주영(모나코), 정조국(오세르), 남태희(발랑시엔) 등 다수의 한국 선수가 활동했다. 지난 시즌에는 권창훈(디종), 석현준(랭스)이 누볐다. 분데스리가와 더불어 취업비자 장벽과 비유럽 선수 보유 제한이 없는 유럽 주요 리그 중 한 곳이어서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선수가 꾸준히 진출했다. 박주영, 권창훈은 성공적 이정표도 남기며 프랑스 클럽들의 한국 선수에 대한 스카우팅을 이어가게 만들었다.

보르도는 역대 한국 선수들이 진출한 프랑스 클럽 중 가장 경쟁력 있다. 지난 시즌 20개 팀 중 14위를 기록했지만 이전 두 시즌 동안은 모두 6위를 기록했다. PSG, 마르세유, 리옹을 뒤쫓으며 유로파리그 등 클럽대항전에 나설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강등권 싸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시즌 중 감독 교체, 대대적인 선수 영입 같은 변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아시아에서 온 스트라이커 황의조에겐 유리한 부분이다.

유럽에 진출했던 한국 선수들 중 가장 고전했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다. 페널티박스 안팎에서 신체적으로 우월한 선수들과 부딪히며 득점이라는 절대적 경쟁력을 쌓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정통파 스트라이커로서 프랑스 무대에서 성공을 거둔 박주영은 황의조가 성공을 위해 참고할 롤모델이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모나코에서 뛴 박주영은 첫 시즌에 5골 6도움을 기록하며 적응기를 보낸 뒤 이후 두 시즌 동안 21골을 기록했다. 득점은 많지 않지만 결승골을 일곱 차례 기록하며 순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3년간의 안정적인 활약을 바탕으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아스널로 이적한 과정도, 프랑스를 거쳐 잉글랜드로 향하겠다는 황의조의 목표와 같다.

당시 박주영은 입단 첫해 브라질 출신의 히카르두 고메스 감독의 신임 속에 꾸준한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PSV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의 박지성, 토트넘의 손흥민의 경우처럼 아시아 선수는 입단 후 첫 시즌에 감독의 신뢰를 받느냐가 적응의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황의조의 보르도 이적은 이점이 많다. 현재 팀을 이끄는 파울루 소사 감독이 아시아 축구를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축구 아는 감독…포지션 경쟁자가 변수

포르투갈 출신의 소사 감독은 스완지시티, 바젤, 피오렌티나 등 유럽 클럽을 맡다가 2017년 말 중국의 톈진 취안젠(현 톈진 텐하이) 지휘봉을 잡았다. 톈진에서는 한국 A대표팀 수비수인 권경원(현 전북)을 지도하기도 했다. 1년 남짓이지만 아시아 축구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고, 권경원을 중용하며 한국 선수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권경원은 황의조와 소사 감독의 만남에 대해 “감독님과 딱 맞는 공격수가 의조다. 공격적인 움직임과 좋은 터치, 섬세한 플레이, 팀과 한 몸이 되는 타입 등이 감독님 스타일”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소사 감독은 과거 포르투갈 각급 대표팀에서 파울루 벤투 감독과도 함께 활동한 바 있다. 이번 황의조 영입을 놓고 소사 감독은 벤투 감독에게 연락해 여러 정보와 조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벤투 감독은 취임 후 A대표팀 선수들의 유럽 진출을 물밑에서 돕는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소사 감독과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 축구의 중심 전략인 4-3-3 전형과 빌드업 중심의 공격 전술을 구사하는 등 유사점이 많다. 벤투 감독 취임 후 날개를 단 듯 맹활약한 황의조가 소사 감독의 축구에서도 잘 녹아들 수 있다.

보르도는 현재 정통 스트라이커로 황의조만을 뽑은 상태다. 지난 시즌 각각 10골과 7골을 넣은 프랑수아 카마노, 지미 브리앙은 처진 공격수와 측면을 소화하는 타입이다. 남은 이적 시장 기간에 수비 포지션과 공격형 미드필더 보강을 추진하는 보르도는 황의조를 일찌감치 최전방 공격수로 낙점하며 신뢰를 보내는 중이다. 프랑스 리그1이 피지컬적 능력을 많이 요구하지만 축구 지능이 높고, 템포가 빠른 황의조라면 적응이 어렵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