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 경영 닻 올린 한세그룹 자질 논란에 ‘설왕설래’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0.07.16 10:00
  • 호수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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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도서 유통·차남 의류 제조·삼녀 패션사업 경영…실적 동반하락에 김동녕 회장 고민도 커질 듯

김동녕 한세예스24홀딩스(한세그룹) 회장은 한국 경제사의 산증인으로 꼽힌다. 1982년 의류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 업체인 한세실업으로 시작해 매출 3조원에 육박하는 중견그룹을 일궜기 때문이다.

한세실업은 현재 나이키, 갭 등 글로벌 브랜드의 OEM 생산을 맡고 있다. ‘미국인 3명 중 1명이 한세실업의 옷을 입는다’는 광고 문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매출은 1조9224억원, 영업이익은 590억원을 기록했다. 1997년 터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이 회사는 견실한 성장을 이어왔다.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찍부터 해외 생산공장을 개척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2003년 온라인 서점인 예스24도 인수했다. 이후 예스24는 그룹의 또 다른 성장동력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매출은 5330억원, 영업이익은 63억원을 기록했다. 김 회장은 과거 한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이전까지는 의류업체 M&A(인수합병)만 생각하다가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업체를 인수하게 됐다. B2B(기업 간 거래) 업체가 주력이다 보니 고객들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체득할 수 없어 예스24 인수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예스24는 2008년 코스닥에 상장됐고, 현재는 국내 최대 인터넷 서점으로 자리매김했다. 김 회장은 2016년 패션업체인 엠케이트렌드(현 한세엠케이)마저 계열사에 편입시켰다. 단순 의류 수출업체에서 도서 유통과 출판, 패션 등을 아우르는 중견그룹으로 성장한 것이다.

ⓒ시사저널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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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출판·유통 아우르는 중견그룹 성장

눈에 띄는 사실은 이들 회사의 경영을 사실상 김 회장의 장남과 차남, 장녀가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경영에 뛰어든 인사는 차남인 김익환 한세실업 대표(부회장)다. 그는 고려대 졸업 이후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의류업체인 아베프롬비와 LG유통 등에서 경력을 쌓다가 2004년 한세그룹에 입사했다. 그동안 해외지원부서와 베트남VN법인 등 R&D와 품질관리, 해외 생산법인 관리 등의 부서를 두루 거쳤다. 2017년 한세실업 대표에 취임했고, 올해 1월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장남인 김석환 예스24 대표(부회장)는 2007년 예스24에 입사했다. 그는 그동안 엔터사업  부문을 총괄하면서 경영수업을 받다가 2017년 예스24 대표에 취임했다. 올해 4월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12월 막내딸인 김지원 전무까지 한세엠케이 대표에 오르면서 2세 경영 구도가 마침내 완성됐다.

우연의 일치일까. 2세들이 대표에 취임한 이후부터 회사 경영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실제로 한세엠케이가 한세그룹에 인수될 때만 해도 그룹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김지원 대표 취임 전후로 회사 실적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3075억원으로 최근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영업이익 -239억원, 당기순이익 -455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일각에서는 김지원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빅베스’로 해석하기도 한다. 빅베스란 누적된 손실을 회계장부에 최대한 반영해 경영상 과오를 전임 CEO에게 넘기고 신임 CEO에게는 힘을 실어주는 전략이다. 한세엠케이는 지난해 4분기 재고평가손실액 150억원을 장부에 반영해 적자가 급증했는데, 오너 3세를 위한 포석이 아니겠느냐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빅베스’로 평가하기엔 여러 의문이 남는다. 지난 2016년 100억원대에 달하던 영업이익이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올 1분기에도 한세엠케이는 48억원의 영업손실과 4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이런 흐름을 감안할 때 2020년에도 이 회사의 영업적자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증권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당장 이 회사의 주가가 요동을 치고 있다. 7월8일 기준으로 한세엠케이 주가는 5930원에서 2660원으로 전년 대비 55.1%나 떨어졌다. 그나마 지난해 실적이 공개된 직후인 3월18일 장중 1880원까지 하락했다가 반등한 것이 이 정도였다.

한세엠케이의 모회사로 오빠인 김익환 부회장이 대표를 맡고 있는 한세실업도 덩달아 피해를 입었다. 최근 10년간 한세실업의 성장률은 매년 10%를 오르내렸다. 2009년 8200억원 수준이던 매출은 지난해 1조9224억원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 2012년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돌파한 후에도 매년 1000억원 안팎의 외형 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2017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매출이 감소하는 역성장을 경험했다. 이후 소폭이나마 매출은 늘고 있지만 영업이익은 전성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때 9~10%대에 이르던 영업이익률은 현재 3% 전후를 오르내리고 있다. 그나마 2018년과 2019년에는 각각 498억원과 17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바로 김익환 부회장이 대표로 취임한 해부터 회사 실적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생이 운영하는 회사의 실적 부진까지 겹치면서 김 부회장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주가도 힘을 못 쓰고 있다. 최근 1년간 한세실업의 주가는 50% 가까이 하락했다. 주요 증권사들은 한세실업의 목표 주가를 잇달아 하향 조정했다. 박현진 DB금융투자 연구원은 “OEM 부문의 성장세는 꾸준하지만 자회사인 한세엠케이 실적 부진으로 모회사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3년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 김동녕 회장(오른쪽)이 한세베트남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 김동녕 회장(오른쪽)이 한세베트남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2세들 취임하자마자 실적 내리막길

장남인 김석환 부회장이 대표를 맡고 있는 예스24가 그나마 선전하고 있지만, 합격점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해 예스24 매출은 5330억원, 영업이익은 6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5.3% 늘어났고, 영업이익 역시 흑자로 전환했다. 하지만 영업이익률이 여전히 1%대에 머무르고 있다. 그나마 김 부회장 취임 이후 2년간 영업이익이 적자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예스24는 지난해 3월 한국거래소로부터 투자주의 환기 종목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김동녕 회장의 판단 미스를 지적한다.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2세들을 대표이사에 앉혀 실적이 동반 하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회사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한 관계자는 “김동녕 회장의 경우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신중한 경영 스타일로 유명하다”면서 “그럼에도 CEO 대신 자녀들에게 핵심 계열사의 경영권을 맡겼다. 특히 김지원 대표의 경우 전무로 승진한 지 불과 10개월 만에 대표이사에 앉히면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세엠케이 주주인 네비스탁은 지난 3월 주총을 앞두고 의결권 대리행사를 권유하며 주주행동에 나섰다. 한세엠케이의 최근 실적 하락 책임이 이사회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김동녕 회장 등 오너 일가를 겨냥한 일침이었다. 한세실업과 예스24를 통해 성공신화를 써온 김 회장과 2세들이 이 위기를 어떻게 이겨낼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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