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반구대암각화 또 ‘물고문’…국보가 사라진다
  • 박치현 부산경남취재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0.07.1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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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반구대 암각화 하단부 침수
낙동강 물관리 용역 ‘물 문제 해결’ 물꼬 관심

국보 제285호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최근 내린 폭우로 또 물에 잠겼다. 한국수자원공사 등에 따르면, 울산 울주군 사연댐의 수위가 14일 오전 10시를 기해 반구대 암각화 침수의 마지노선인 53m를 넘어섰다. 이날 오후 2시 기준 53.07m를 기록했고, 비가 완전히 그치더라도 지류의 빗물이 댐으로 유입돼 사연댐 수위는 계속 올라갈 것으로 예측된다.

최근 내린 폭우로 물에 잠긴 울산 반구대 암각화ⓒ울산시
최근 내린 폭우로 물에 잠긴 울산 반구대 암각화 ⓒ울산시

울산시 관계자는 “지난해 9월 말 발생한 태풍 ‘미탁’으로 물에 잠긴 뒤 8개월여 만”이라며 “다행히 암각화 하단부만 잠겼다”고 말했다. 사연댐의 수위는 50~60m이다. 암각화가 그려져 있는 바위면은 53m일 때 물에 잠기기 시작해 57m가 되면 완전 침수된다.

 

물고문으로 반구대 암각화 표면 23.8% 훼손

반구대 암각화는 1965년 하류에 건설된 사연댐으로 인해 물에 잠겼다가 노출되기를 거듭하면서 풍화작용으로 인한 훼손이 가속되고 있다. 2005년 상류에 대곡댐이 준공되면서 암각화의 침수 기간과 빈도는 다소 줄어들긴 했으나, 2010년 반구대 암각화의 표면 중 23.8%가 훼손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암각화가 그려진 암석은 점토가 굳어 생성된 셰일로 물과 바람에 취약하다. 물에 잠길 때마다 광물이 녹아 구멍이 나거나 그림이 그려진 일부 암석이 떨어져 나간다. 또 물이 빠지면서 암면도 함께 부스러지고 유속에 의해 충격을 받기도 한다. 현재 암각화 상태가 얼마나 훼손됐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물에 잠겼다가 노출되기를 거듭하면서 풍화작용으로 인해 심하게 훼손된 반구대 암각화ⓒ울산 박물관
물에 잠겼다가 노출되기를 거듭하면서 풍화작용으로 인해 심하게 훼손된 반구대 암각화 ⓒ울산 박물관

대곡천 암각화군은 울산 대곡천을 따라 반구대 암각화, 천전리각석(국보 제 147호), 전기 백악기 중대형 공룡 발자국 200여 점이 있는 곳이다. 특히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인들이 고래와 거북, 사슴을 비롯해 다양한 동물과 수렵·어로 모습을 너비 10m, 높이 4m 크기 바위에 새긴 세계 최고의 선사 유적으로 꼽힌다.

 

사연댐 수위조절로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 추진

울산시는 현재 암각화 보존을 위해 지난해 9월 문화재청 및 울주군과의 협약을 통해 문화재청이 고수해온 사연댐 수위조절안을 받아들이되, 울산권 맑은 물 공급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암각화 하류에 위치한 사연댐의 수위를 낮춰 암각화 침수를 막게 되면 지역 주요 식수원인 사연댐 물이 줄어드는 만큼 다른 지역에서 맑은 물을 공급받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정부는 반구대암각화 보전과 맞물려 있는 낙동강통합물관리 방안을 이르면 9월, 늦으면 연말까지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환경부가 만든 ‘낙동강 유역 통합 물관리 방안’에 대한 영남권 지자체의 합의가 관건이다. 정부는 당초 지자체간의 합의를 이끌어 내 낙동강통합물관리 방안을 이달 발표하려 했지만, 대구·경북 지역의 숙의기간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해 연기한 것이다.

낙동강통합물관리 방안이 확정되면 사연댐은 영구적인 수위조절 시설을 하는 대신 청도 운문댐에서 하루 7만 톤의 물을 끌어와 울산의 부족한 식수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영구수위조절은 사연댐 댐체(여수로) 일부를 잘라내 그 자리에 수문을 설치하고 댐수위를 조절하는 방법이다. 홍수나 폭우 등 긴급상황에 신속하게 댐물을 방류해 암각화가 물속에 잠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당권주자인 김부겸 전 의원은 “정부의 낙동강 유역 통합 물관리 방안이 한국판 그린뉴딜 차원에서 추진될 수 있도록 제가 힘을 보태겠다”며 “그래서 울산의 자존심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반구대암각화를 잘 보존하고 울산시민의 식수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국보 제285호 울산 반구대 암각화ⓒ울산시
국보 제285호 울산 반구대 암각화ⓒ울산시

그동안 울산시와 문화재청, 학계 및 시민단체들은 반구대 암각화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지만, 우선 등재목록에도 올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반구대암각화는 물고문을 당해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다.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는 지난 1971년 12월 25일 동국대 문명대 교수에 의해 발견된 이후 49년 동안 해마다 어김없이 물에 잠기는 악몽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제 5호 태풍 다나스(7월), 제 13호 링링(9월), 제 17호 타파(9월), 제18호 미탁(10월) 등으로 인해 침수가 반복됐다.

전호태 울산대학교 교수는 "7000년 이상 보존돼 온 선사인들의 체취가 불과 50여 년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지경"이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등재목록에 등재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루빨리 물속에서 건져내야 한다"고 암각화 훼손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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