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알칸타라, 그에게서 린드블럼의 향기가 난다
  • 이상평 야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17 17:00
  • 호수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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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kt 방출 설움 씻고 올 시즌 두산에서 ‘펄펄’…두산의 탁월한 외국인 투수 ‘재활용’ 능력 입증

2019년 우승을 차지했던 두산 베어스는 2020시즌을 맞기 전인 스토브리그 기간 동안 굉장히 어려운 과제를 받아들어야만 했다. 2019시즌 20승으로 골든글러브상과 MVP를 수상했던 에이스 조쉬 린드블럼이 메이저리그로 복귀하면서 그의 공백을 채워야 했던 것이다. 그런 두산이 선택한 선수는 의외로 지난해 kt 위즈에서 방출됐던 라울 알칸타라였다.

kt는 스토브리그 때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이름값이 높은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를 영입하면서 알칸타라를 보류명단에서 제외했고, 두산이 시장에 나온 알칸타라를 선택한 것이다. 특히 두산이 알칸타라를 영입하기 위해 재계약을 포기한 선수가 2018년 KBO에서 18승을 거두며 다승왕과 승률왕에 올랐던 세스 후랭코프였다는 점에서 두산의 선택은 또 하나의 궁금증을 낳았다.

사실 두산은 과거부터 다른 팀에서 외면한 외국인 투수를 데려와 리그 최정상급 에이스로 탈바꿈시키는 ‘재활용’ 능력을 여러 차례 보여줬던 팀으로 유명하다. 2000년대 KIA 타이거즈로부터 외면받은 게리 레스와 다니엘 리오스를 연이어 데려와 연속 대박을 터트렸고, 2018년에는 앞서 언급된 조쉬 린드블럼이 롯데 자이언츠를 떠나자 곧바로 영입해 다시 한번 대박을 터트렸다. 이 세 명의 선수들은 두산 이적 이후 전부 다승왕에 등극했고, 특히 리오스와 린드블럼은 MVP까지 수상하며 리그를 지배하는 최고의 에이스 투수로 탈바꿈했다. 두산 이적 이후 보여준 엄청난 활약을 바탕으로 레스와 리오스는 일본 프로야구 무대로, 린드블럼은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는 기회를 잡았을 정도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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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롯데에서 그저 그랬던 레스·리오스·린드블럼 데려와 ‘대박’

많은 전문가는 두산이 KBO리그에서 가장 크고 넓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한다는 점, 그리고 두산이 전통적으로 탄탄한 수비를 강조해 왔다는 점이 이 선수들의 성공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투수보다는 타자 친화 구장으로 유명했던 광주 무등구장과 부산 사직구장에서 뛰던 해당 선수들이 두산으로 이적하며 구장 변화와 팀 수비력 상승의 효과를 크게 봤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선수들은 이적 이후 구장의 크기가 커지면서 피홈런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두산 특유의 그물망 수비의 도움을 받아 피안타율이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다른 성적들도 향상된 바 있다.

알칸타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2019시즌 홈으로 사용했던 kt 위즈파크 역시 굉장히 작은 규모의 타자 친화구장이라는 점에 주목하며 두산은 알칸타라의 영입에 큰 기대를 걸었다. 또한 알칸타라가 결정구가 부족해 맞혀잡는 유형의 투수라는 점에서 넓은 잠실구장과 두산의 탄탄한 수비 등 시너지 효과가 다른 투수들보다 더욱 클 것으로 예측한 전문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달리 알칸타라는 올 시즌 개막 이후 첫 두 경기에서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여줬다. 두산이 이번에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팬들의 의문이 일었다. 그러나 시즌이 진행되면서 이 두 경기에서의 부진은 알칸타라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시행착오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지난해 알칸타라는 장단점이 매우 뚜렷한 투수였다. 그는 2019시즌 KBO리그에서 가장 빠른 공을 뿌리는 투수 중 하나였는데, 최고 158km/h에 평균 150.5km/h에 이르는 강속구를 주무기로 사용했다. 보통 빠른 볼을 던지는 외국인 선수의 경우 제구에 어려움을 겪어 아시아 무대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은데, 알칸타라는 제구력도 준수한 편에 속했다. 그 덕분에 알칸타라는 지난해 초중반까지만 해도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바 있다.

하지만 kt가 알칸타라와의 재계약을 포기한 이유는 그가 강점만큼 약점도 뚜렷한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알칸타라는 체인지업·슬라이더·커브 등 다양한 변화구를 던지지만, 결정구로 사용하기에는 다소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때문에 빠른 구속을 가지고 있음에도 탈삼진 능력이 부족하다는 게 최대 약점으로 지적받았다. 또한 변화구를 던질 때와 직구를 던질 때의 투구폼이 달라 이에 대한 상대 팀의 분석이 끝난 뒤 공략당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평균자책점이 수직 상승하며 2019시즌을 172.2이닝 11승 11패 ERA 4.01이라는 다소 평범한 성적으로 마무리해야만 했다.

 

강점만큼 확실한 약점 지닌 알칸타라의 절치부심 변신

나쁘지 않은 활약에도 뚜렷한 약점을 노출시킨 탓에 재계약 불발이라는 아픔을 겪은 알칸타라는 두산의 부름을 받고는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선 새로운 팀에 있는 많은 포크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포크볼을 습득했고, 체인지업 비율을 낮추면서 포크볼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포크볼 전도사’라고 불리는 김원형 코치, 현역 시절 명품 포크볼을 던졌던 정재훈 코치와 현재 리그 최고의 포크볼을 던진다고 평가받는 이용찬 등에게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알칸타라는 기존에 슬라이더를 구사할 때 완급조절을 위해 다소 힘을 빼고 던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박세혁·정상호 등 두산 포수진의 조언을 받아 캠프 때부터 슬라이더도 완급조절 없이 강하게 던지면서 변화구와 직구의 투구폼을 일치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포크볼과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크게 상승했고, 직구 위력도 덩달아 배가되는 효과를 얻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러면서 리그 3위에 해당하는 75개의 삼진(7월16일 기준)을 뺏어내며 미국 시절부터 최대 약점으로 지적되던 탈삼진 능력도 크게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보통 외국인 선수들은 굉장히 자존심이 강해 한수 아래로 보는 국내 코치나 동료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싫어한다는 사실은 일반 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알칸타라의 경우는 굉장히 열린 자세로 배우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포크볼과 슬라이더의 사례는 물론이고, 최근 들어서는 이제 갓 1군에 자리 잡기 시작한 신예 박종기에게 커브를 배우려고 물어보는 장면이 경기 중 중계방송에 잡히기도 했을 정도다. 팀 동료들과 코치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는 등 열린 자세를 취한 것이 빠른 팀 적응, 그리고 성공 원인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알칸타라는 벌써 9승(16일 기준)으로 다승 공동 선두에 올라 있고 평균자책점, 이닝, 탈삼진 등 대다수 지표에서 리그 최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이미 알칸타라에게서 레스와 리오스, 그리고 린드블럼의 향기가 나기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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