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이낙연, 7개월 당 대표 되려는 진심 솔직히 말해야”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07.20 14:00
  • 호수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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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대표 출마 선언한 김부겸 전 의원 “지지율 1위 후보가 당 대표까지 하려는 건 비상식”

2차 세계대전 영웅인 미 공군 대령 존 보이드는 자신의 연전연승 비결을 ‘우다(OODA)’라는 한 단어로 요약했다. 종전 이후 군사학이 아닌 경영학계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이 단어는 ‘상대를 관찰(Observe)한 뒤 방향을 설정(Orient)하고, 최종 결정(Decide)을 함과 동시에 행동(Act)에 나선다’를 요약한 말이다.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2016년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초반 약세를 뒤엎고 승리를 거머쥔 것도 이 ‘우다 전략’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우다는 경영학에서 객관적으로 열세에 있는 후발주자가 전세를 뒤집는 개념으로 많이 쓰여 왔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김부겸의 쓰임새는 영남권 교두보 마련”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최근 김부겸 전 의원이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마치 ‘우다 전략’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냉혹한 우리 정치권에서 김 전 의원은 그간 ‘마음씨 좋은 편한 형님’ ‘여야 두루 좋은 평가를 받는 인간성 좋은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주로 받았다. 한마디로 모범생 이미지였다. 3선을 만들어준 경기도 군포를 버리고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고향인 대구로 내려간 것이나, 1980년 신군부에 맞서 서울의 봄을 이끈 ‘투사 이미지’는 살짝 가려져 있었다.

그랬던 그가 당 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한 뒤 과거보다 한결 단단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7월9일 당 대표 출마를 밝힌 자리에서 김 전 의원은 “저 김부겸은 꽃가마 타는 당 대표가 아니라, 땀 흘려 노 젓는 ‘책임 당 대표’가 되겠다”며 경쟁자인 이낙연 의원과의 일전을 공식화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의 대선후보를 김부겸이 저어갈 배에 태워 달라”고 호소했다. 과거 ‘킹메이커의 대명사’로 불린 고(故) 김윤환 의원의 아호 ‘허주(虛舟)’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두 달 만에 다시 만난 김부겸 전 의원의 수사(修辭)는 간단명료해졌다. 지난 5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 때는 ‘왜 그랬느냐’는 질문에 “대구 선거 후유증이 컸고 솔직히 ‘내가 뭘 잘할 수 있을까’를 몰라 조심스러웠다”면서 “하지만 결국 ‘나 김부겸이 우리 당에서 어떤 쓰임새가 있을까를 고민한 뒤 결론을 내렸다”며 출마 배경을 설명했다.

김 전 의원은 이번 선거를 “2년 임기인 당 대표를 뽑는 정기 전당대회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당 대표에 뽑히면 2년 임기를 완주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그러면서 민주당의 취약지(영남)에 당의 기반을 확실히 다지는 것이 자신의 쓰임새라고 설명했다.

 

자칫 호남 후보 한계론으로 들린다.

“호남 후보가 됐든 누가 됐든 간에 다음 대선에서 이기려면 어느 한쪽에서도 밀리지 않는 튼튼한 그물을 짜놓아야 한다. 그건 내가 좀 낫지 않을까.”

출마선언식에서 영남에서 300만 표를 갖고 오겠다고 했는데 방법이 뭔가.

“PK(부산·경남) 지역에 출마한 우리 당 후보들이 평균 40%가량 표를 얻었는데, 정당 지지도는 30%가 채 안 되더라. TK(대구·경북)는 정당 지지율이 20%에 불과하니까, 둘을 대충 합치면 200만 표가 된다. 영남 전체 유권자가 750만 표니까 당 지지율을 40%까지 끌어올리면 300만 표는 가져올 수 있다. 이번 총선을 치러보니까 지역주의를 깨는 게 쉽지만은 않더라.”

경쟁자인 이낙연 의원에 대해 김 전 의원은 비교적 후하게 평가했다. “매사에 꼼꼼하고 정확하다. 내각에서 총리와 장관(행정안전부)으로 손발을 맞춰봤는데 아주 자세한 사항까지 꼼꼼히 챙기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7개월짜리 당 대표와 관련해서는 분명하게 날을 세웠다. 자신이 ‘문재인 정부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앞세우되 대권 도전과 같은 개인의 꿈을 뒤로 미뤘듯 이 의원도 당 대표 출마의 진짜 뜻을 당원들에게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김 전 의원의 말이다. “지금 이 의원의 말로는 7개월짜리 당 대표에 대해 설명이 안 된다. 당을 운영해 본 뒤 대선전에 뛰어들려고 하는 전략이 뻔해 보이는데, 그게 얼마나 편한 생각인가. 그러면 다른 경쟁자는 어떻게 하나. 그들이 납득하겠는가. 이것(7개월짜리 당 대표)은 당의 에너지를 모으는 결정이 아니다. 대권에 나갈 분이 잠시 당권을 거쳐 간다는 것은 명분도 의미도 없다. 대권 지지율 1위 후보가 당 대표로 나온다는 게 좀 비상식적이지 않나.”

실리적인 측면에서도 이는 당의 마이너스 요인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김 전 의원은 “당장 내년 4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다시 뽑는 선거는 ‘미니 대선’으로 정권의 명운이 걸려 있다”면서 “이러한 때 당의 리더십이 흔들려선 안 된다”고 밝혔다. 당권과 대권을 분리한 현재의 당헌·당규가 바로 ‘우리 민주당 정신’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다만 이낙연 대세론에 대해서는 시쳇말로 ‘쿨’하게 인정했다.

당내 대세론이 있다고 보는가.

“분명히 있지요(웃음). 있는 건 사실이니까요. 아무래도 저쪽(이낙연 캠프)을 지지하는 의원들이 많이 있으니까.”

호남에 기반을 둔 민주당에서 TK 출신, 더군다나 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전신)에서 의원활동을 시작한 김 전 의원이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민주당으로 온 게) 17년 전 이야기다. 더군다나 난 DJ(김대중 전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호남분들이 강한 열정을 갖고 민주당을 지지해 온 것이 맞지만, 그렇다고 이 당이 ‘호남당’이라고 할 순 없다. 지역주의에 맞서 싸우고자 9년 전 대구로 내려간 것 아닌가. 나 나름대로 당에 기여했다.”

 

“내년 4월 미니 대선 앞두고, 당 리더십 혼란”

TK를 벗어난 이상 앞으로 김 전 의원에게 이재명 경기지사와 같은 ‘사이다 발언’을 기대할 수 있을까. 김 전 의원은 “군포라는 따뜻한 곳(지역구)을 버리고 대구로 내려간 것이나, 행안부 장관을 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수능 연기를 결정한 것은 쉬운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둥글둥글한 자신의 기존 이미지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그동안 TK에서 정치를 하다 보니 대한민국 보편적 기준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었으며, 그런 점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시원하게 발언하지 못했다. 당 대표에 나가겠다는 것은 그 틀과 기준을 넘어서겠다는 뜻이다. ‘사이다 발언’까지는 아니어도 앞으로 내 할 말은 또박또박 하겠다”고 밝혔다.

정세균 총리와는 원내대표-원내수석부대표로 손발을 맞춘 것으로 안다. 출마와 관련해 정 총리와 이야기 나눈 적이 있나.

“없다.”

한 번쯤 상의할 법도 한데.

“어떻게 하나. 현직 총리신데. 그러면 그분이 구설에 오른다. 내 눈앞의 이익 때문에 현직 총리를 소환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김 전 의원은 정권 하반기로 돌입한 만큼 당 중심으로 당·청 관계를 이끌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민주당 안팎에선 강성 지지층에 당이 끌려 다닌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가 해법으로 제시한 것은 ‘실용’이다. 김 전 의원은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당을 운영하다 보면 그분들(강성 지지층)도 다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그분들의 목소리도 분명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고 자신했다.

김부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월9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김부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월9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민주당에 제기되는 여러 비판들 중에 가장 우려되는 점은 무엇인가.

“우리 스스로가 실용적인 생각을 못 하는 거 아닐까. 너무 명분론에 집착하는 것 같다. 국민들은 실질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그걸 해결해 주길 바라는데, 우린 보수적 가치냐 진보적 가치냐에 너무 집착한다. 그래서 난 이번에 ‘국민의 삶을 총체적으로 해결해 주는 국회, 그 국가를 책임져주는 당, 그리고 나는 그 당을 책임지는 당 대표가 될 것이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책임윤리(정치적 목표 달성)가 약하다는 지적에 대해선.

“아직까지 내 정치는 아이엔지(~ing·현재진행형) 아닌가. 솔직히 지난번 장관으로 있을 때 이해찬 대표가 ‘당신이 출마한다면 내가 안 나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당시 태풍이 올라오고 있었다. 행안부 장관은 국민 안전이 최우선인데, 내 정치적 안위를 위해 사표를 던지고 나간다? 그렇게 하면 후임자를 뽑는 데 한 달 반에서 두 달이 걸리는데? 공직은 때가 아니면 안 하는 거다.”

이번에 만약 탈락한다면 다음 행보는 어디인가. 대권 도전인가.

“오늘 인터뷰는 당 대표 경선에 대해선만 이야기하자. 박원순 전 시장이 저렇게 되는 거 보니까, 사람의 앞날을 예단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게 없더라.”

김 전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시장에 조롱당하지 않기 위해서도 다주택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은 가급적 빨리 주택을 처분해야 하며, 한·미 워킹그룹의 반대나 유엔 제재가 있더라도 인도적 차원에서 남북관계는 우리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김부겸 “청년이여,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내라”

김부겸 전 의원은 7월1일 청년들과 소주잔을 기울였다. 유튜브 채널 ‘김부겸TV’가 진행한 프로그램 ‘소주톡’에서 김 전 의원은 청년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한 청년이 “586세대의 공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더라도 현 2030세대의 호소와 의견 청취에 소홀한 것 아니냐”고 말하자 김 전 의원은 “의견에 공감한다”면서도 “청와대 청원을 올리고 댓글 몇 개 달면서 한풀이하듯 하지 말고, 진지하고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내라”고 조언했다.

이날 인터뷰에 대해 김 전 의원은 “막연하게 짐작했지만, 의외로 이 친구들(청년)이 너무 개개인이 고립돼 있더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래서 내가 당시 이렇게 말했다. 정치인이나 정부가 해 주기를 바라선 안 된다고 말이다. 아프다는 말은 혼자 하면 적은 소리지만, 여러 명이 하면 사회적 여론이 된다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직원의 정규직화 논란에 대해서도 그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20년 동안 모른 척했다. 그걸 정규직으로 돌리는 건 정상적인 흐름”이라면서 “민간에 요구할 수 없으니 공공기관부터 먼저 하는 거라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최근 2030세대가 이 문제에 공분을 터트리는 것은 우리 당이 기득권이 돼 그들의 희망이 돼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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