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4대천왕 시대 文 정부에서 다시 열리나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0.07.23 14:00
  • 호수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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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우리·하나·KB금융 회장 잇달아…연임 MB 정부 시절 폐해 재현 우려도

이명박 정부 시절 ‘4대천왕’으로 불리는 이들이 있었다.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과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주인공이다. 2013년 7월 어윤대 회장이 물러나면서 금융지주 ‘4대천왕’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이전까지 이들은 MB와의 친분을 등에 업고 연임을 이어가며 제왕적 권력을 휘둘렀다.

그 폐해가 적지 않게 나왔다. ‘회장 세습’이나 ‘셀프 연임’이라는 지적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금융 당국은 금융지주 회장의 ‘황제 경영’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들을 잇달아 쏟아냈다. 금융지주 회장의 책임을 명문화해 문제 발생 때 확실히 문책할 수 있는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안을 2014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금융감독원은 2017년 주요 금융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경영진단을 단행했고, 회장과 사외이사 후보를 관리하고 추천하는 과정에 회장이 참여할 수 없게 했다. 최근에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일부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기도 했다.

주요 금융지주 역시 2018년 전후로 회장후보추천위원회나 사외이사추천위원회에 회장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내부 규정을 바꾸었다. 아울러 회장의 최고 연령을 만 70세로 제한했다. 모두가 금융지주 회장의 ‘셀프 연임’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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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당국 규제에도 장기집권 현실화

그럼에도 4대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집권 추세가 점점 고착화되고 있다. 이미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3년 임기로 연임에 성공한 상태다. 조 회장은 2017년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했다. 2018년 오렌지라이프를 인수하고, 역대 최대 순이익을 기록하며 KB금융지주에 내줬던 금융지주 1위 자리를 되찾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한금융지주는 지난 3월26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안을 통과시켰다. 임기는 2023년 3월까지다.

손 회장 역시 2017년 우리은행장에 취임했다. 지난해 초 우리금융지주가 출범하면서 2년 가까이 우리금융그룹을 이끌어 오고 있다. 비은행 포트폴리오 구성의 한계에도 그룹의 실적이 빠르게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 덕분에 손 회장도 연임에 성공하며 3년의 임기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금감원은 지난 3월  DLF(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손 회장에게 중징계(문책경고) 조치를 내렸다. 금융사 지배구조법에는 ‘금융사 임원으로 금융 당국으로부터 문책경고 조치를 받은 사람은 3년간 금융회사의 임원이 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손 회장은 지난 3월 주총을 앞두고 징계를 취소해 달라는 본안 소송과 본안 판결이 나오기 전에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법원이 손 회장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일단 연임에는 성공했지만, 법원 판결에 따라 결과가 뒤집힐 수도 있는 상황이다. CEO 리스크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조용병 회장도 마찬가지다. 조 회장은 최근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로 곤욕을 치렀다. 라임 사태 피해자들이 주총 당일 주총장 앞까지 몰려와 조 회장의 연임 반대를 외쳤을 정도다. 신한은행장 재임 시절 있었던 채용 비리 관련 재판의 2심도 아직 남아 있다. 조 회장은 앞서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만큼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조 회장과 손 회장은 아직 연임 수준이다. 오는 11월 임기가 끝나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3연임에 도전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윤 회장은 2014년 임영록 전 KB금융회장과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이 내분으로 동반 사퇴하면서 수장에 올랐다. 그해 회장과 은행장을 겸직하며 내부 갈등을 봉합했고, 2017년 KB금융 회장 최초로 연임에 성공했다.

실적도 나쁘지 않다. 2015년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2016년 현대증권(현 KB증권), 올해 푸르덴셜생명을 잇달아 인수하며 사업 다각화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KB금융의 당기순이익은 2014년 1조4151억원에서 2017년 3조3435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찍었다. 2017년 한 해뿐이었지만, 신한은행으로부터 리딩뱅크 자리도 되찾았다. 2018년 초 채용 비리 논란에 연루돼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뚜렷한 경쟁자도 없는 만큼 3연임 역시 무난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전임 김승유 회장이 3연임한 데 이어, 김정태 현 회장 역시 3연임에 성공한 상태다. 

 

“70세 연령 제한은 연임 위한 명분 쌓기”

조용병 회장과 손태승 회장에 이어 윤종규 회장과 김정태 회장까지 연임에 성공할 경우 금융지주 회장의 ‘4대천왕’ 시대가 문재인 정부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하나금융을 시작으로 주요 금융지주는 장기집권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2011년부터 회장의 연령을 70세로 제한했다”면서 “하지만 전 세계 정치나 경제, 금융 지도자 중에는 능력과 전문성을 갖춘 70대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집권을 막기 위한 안전판이 오히려 외부에서 능력 있고 경륜 많은 금융 전문가를 영입하는 데 장벽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본질은 회장의 연령이 아니라 ‘회전문 인사’나 ‘셀프 연임’을 통한 장기집권이라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IMF 총재나 세계은행 총재가 와도 4대 금융사 CEO 후보 1차 서류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금융권에서 나올 정도다.

금융 당국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4대 금융지주 회장들은 50대 중후반에 회장으로 선임됐다. 그들이 70세까지 회장 직책에 머무를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70세 이하로 연령을 제한한 것은 연임을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 연임은 허용해도 3연임은 못 하도록 경영 승계 규정을 고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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