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길은 페미니즘이 연다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01 17:00
  • 호수 160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시한 페미니즘' 연재를 마무리하며

이 지면에 첫 글을 쓸 때만 해도 페미니즘의 한국적 전개는 전망이 밝아 보였다. 대통령이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지칭했다. 각료 수의 30%를 여성으로 임명하던 시절이다. 그러나 그 뒤로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사건·사고가 벌어졌다. 성폭력 공개 고발 ‘미투 운동’의 파장은 깊고 길었다. 지금도 계속되는 중이다. 웹하드 카르텔에서 ‘n번방’ 사건, 심지어 유례없이 악독한 웰컴투비디오 주동자들과 그들에게 어이없는 솜방망이 처벌을 해 준 한국 사법부의 민낯에 이르기까지, 열거만 해도 이 지면이 모자랄 판이다. 그래서 눈앞이 캄캄한가.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다. 갈등이 없는 상태는 고인 물과 같아서, 썩는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갈등은 외부 세계, 사회적인 것에서 내면적인 것으로 증폭되며 이동해 왔다. 여성들은 세상을 고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오랜 가부장제가 여성이라고 정의 내린 것들을 의심하고 탈출하려는 노력까지를 굉장히 빠른 속도로 수행해 왔다. 여성들이 스스로도 그것을 바라는지 알 수 없는 채로 일으켜버린 갈등은 징후적이다.

ⓒfreepik
ⓒfreepik

페미니즘은 ‘모든 생명’으로 향한다

예컨대 스포츠 분야에서 “나라의 이름을 빛낸 딸들”이 알고 보니 성폭력에 시달려왔다는 것을 폭로할 때 단지 그 가해자들을 척결하는 것을 넘어 국가체육 자체를 검토하자는 목소리도 따라 나온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2018년 온통 남성인 더불어민주당 광역자체단체장 후보 명단을 보고 여성들은 이건 틀렸다고 말했다. 단지 여성 수가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뒤편을 흐르는 남근주의적 발상을 탓했다. 그 결과가 무려 세 명이나 되는 단체장의 ‘성 비위’로 인한 낙마다. 그중 한 분은, 안타깝게도 스스로 세상을 버렸다. 이 사실들에서 사건 하나하나의 다름을 넘어 공통적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지금의 세상은 끝났다”라는 것이다.

‘낡은 시대는 끝났는데 새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말은 최근 가장 많이 사용된 문구다. 하지만 새것은 이미 와 있고 낡은 것은 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어서 새것이 못 들어오는 상황이라 해야 마땅하지 않겠나. 시인 이상의 노래처럼, 안에 생활이, 진정성이, 실존이 결핍되어 문이 안 열리는 그런 상황.

시대는 정말 오래 걸려 변한다. 프랑스 대혁명이 1789년 한 해가 아니라 1799년까지 무려 10년에 걸친 혁명이었고 혁명의 이상이 어느 정도 정착되기까지는 무려 75년이라는 투쟁을 겪어야 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강타하는, 때로는 격렬한 반동이 일어나는 이 변화는 내가 이 지면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듯 제2 계몽주의 혁명이다. 휴머니즘을 우리는 인본주의라 번역하지만 그 인(人)이 오로지 남성만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필연적으로 “여자도 사람이다” 운동이 오는 것이다.(웰컴투비디오 사건을 보면 어떤 성인 남자들은 아이들이, 심지어 유아들이 사람이라는 것도 모르는 듯하다.)

반인권적·반인도적 휴먼들에 맞서서 휴먼의 범주와 의미를 넒히고 바로잡는 운동이기에 페미니즘을 여성주의라 번역하는 것은 맞지 않다. 페미니즘은 인간 완성 운동이고, 더 확장하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운동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남자만 사람이다’에서 ‘모든 생명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소중하다’로 이르는 길은, 길 자체는 여러 갈래일지라도 모든 길은 하나다. 한 사람이 각성한 개인으로 우뚝 서서 세상 모든 존재와 손잡는 그 길.

※ 노혜경 시인의 ‘시시한 페미니즘’이 이번 주 150회로 마무리됩니다. 그동안 ‘시시한 페미니즘’을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